시공사·수요자 모두에 부담… "시장 자율에 맡겨야"
  • ▲ 자료사진. 지난 주말 개관한 '금성백조 동탄역 예미지 3차' 견본주택 내 상담석. ⓒ금성백조
    ▲ 자료사진. 지난 주말 개관한 '금성백조 동탄역 예미지 3차' 견본주택 내 상담석. ⓒ금성백조


    정부가 후분양제 로드맵 발표를 예고하면서 분양시장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지금의 선분양 방식을 바꿔 준공 무렵(공정률 80%)에 분양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 경우 새 아파트 하자 분쟁이나 분양권 투기 등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 정부 주장이다. 업계에서는 10년 전과 같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토교통부는 다음 달 후분양제 로드맵이 담긴 '제2차 장기 주거종합계획(2013~2022년)' 수정안을 확정, 고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거종합계획은 10년마다 중장기 수급 전망과 주택시장 여건을 고려한 주택 공급 정책의 청사진이다. 계획이 수립된 2013년 이후 5년간 변화된 주택시장 환경과 대내·외 경제여건, 인구·가구구조 등을 고려·반영한 수정안에 후분양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큰 윤곽은 이미 나왔다. 지난해 말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에서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주택 부문부터 단계적으로 실시하고, 민간에 대해서는 의무화 대신 자발적인 후분양을 유도하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지원하겠다고 시사한 바 있다.

    인센티브는 후분양제에 나서는 민간기업에 LH 등이 공급하는 공공택지 입찰에 우선권을 제공하거나 주택도시기금 대출이자와 한도, 분양보증 등의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후분양제 도입 논의가 가시화되면서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재 선분양제에서는 공사대금 대부분을 분양자가 먼저 내고 그 돈으로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는 것과 달리, 후분양제는 사업자가 자체자금이나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로 조달해야 하는 만큼 업계로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분양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금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상환 리스크가 커지고, 분양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PF대출 심사도 까다로워질 수 있다.

    대형사들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 이들보다 신용도가 낮은 중견·중소건설사들은 대출을 일으키기 어려워 주택 분양사업이 사실상 막힐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1월 한국주택금융공사(HF) 보고서 '후분양제도와 보증기관 리스크 관리'를 보면 건설업체의 총사업비 대비 차입비율이 선분양일 때는 28.0% 수준이지만, 후분양의 경우 87.2%까지 늘어난다.

    후분양시 사업비 자체가 늘어난다는 분석도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지난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민홍철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주거복지 향상을 위한 주택금융시스템 발전 방안'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에 80% 공정률을 조건으로 후분양을 도입하면 선분양보다 매년 35조~47조원 정도가 더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 보고서는 국토부의 장기주택종합계획에 따라 2022년까지 매년 8만6600가구를 짓는 것을 전제로 했다.

    김대철 한국주택협회 회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후분양을 하면 우량·비우량 회사간 자금조달 능력에 차이가 있어 중견업체들이 충격을 크게 받을 것"이라며 "언젠가 하더라도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분양제에서는 소비자가 계약금과 중도금 대부분을 단기간에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선분양제의 경우 2~3년에 걸쳐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을 나눠 내지만, 후분양제에서는 6개월에서 1년 내에 수억원의 목돈을 마련해야 한다. 강화된 대출규제 탓에 자금력이 있는 사람들만 청약할 수 있는 구조이긴 하지만, 앞으로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이 같은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정봉수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중도금 대출과 같은 금융상품이 제공되지 않을 경우 계약자의 자금 부담이 가중될 수 있으며 분양계약 체결 후 단기간 내에 입주시점이 도래하는 만큼 분양자는 주거계획을 수립하거나 실행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관련 금융상품 개발 등 수분양자를 위한 제도 보완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후분양제는 2004년 참여정부에서 먼저 시도했다. 2007년 분양 허용 공정률을 40%부터 시작해 2년마다 20%p씩 올려 2012년까지 전면 도입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주택공급량이 급감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2008년 2월 계획보다 대폭 축소된 공공택지 후분양 우선공급으로 뚜껑을 열었다. 하지만 건설사들이 거세게 반대했고,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택지를 공급받은 건설업체 다수가 계약을 해지했다. 계약을 유지한 4개사도 후분양과는 거리가 먼 공정률 10% 수준에서 입주자를 모집했다.

    후분양제 논의가 다시 시작된 데에는 지난해 불거진 대규모 아파트 부실 사태의 영향이 컸다. 경기 화성시 동탄2신도시 일부 단지에서 입주 반년 만에 8만8000건의 하자가 발생한 것. 입주민들은 직접 모은 부실공사 실체를 보이면서 화성시와 경기도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조사 결과 이곳은 공사기간이 도내 전체 아파트보다 평균 6개월가량 짧았고, 감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드러났다. 또 시공자가 분양원가 공개항목을 허위로 신고하면서 분양가를 부풀렸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 같은 부실공사, 사업비 부풀리기 등이 선분양의 폐해로 지목되면서 후분양제 논의에 힘이 실린 것이다.

    분양권 투기 근절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선분양제는 현재 부동산시장에 나타난 문제점 대부분을 야기한 것으로 지목된다.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세력을 양산하면서 시장을 투기판으로 만들었고, 가계의 금융대출 증가를 부추겨 전체 가계대출 부실 규모를 키웠다.

    이에 반해 후분양제는 만들어진 집을 사기 때문에 분양권 전매를 없앨 수 있고, 입주시점에 집값이 떨어지는 일도 생기지 않는다. 시세차익을 바라는 가수요가 줄면서 실수요자를 위한 시장을 기대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시장 충격을 줄일 수 있는 보완책을 더하고, 선분양과 후분양을 건설사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가는 상황이라 점진적으로 후분양제로 가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며 "건설금융 등 후분양에 필요한 환경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행정학)는 "후분양이 전면 도입되면 중소사들이 주택사업을 하기 어려워지고 기대보다 소비자 선택 폭도 넓어지지 않을 수 있다"며 "획일적 제도보다는 건설사와 청약자들이 선분양과 후분양 모두를 고려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