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등·달러 강세 … 되풀이된 중동 충격의 경로호르무즈 20% 봉쇄 리스크, 환율 레벨 재조정 가능성유가 80달러대 지속 시 환율 상단 부담 … 확전 여부가 환율의 지속성 담보단기 이벤트 아닌 중기 매크로 변수로 떠오른 중동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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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다시 '전쟁 프리미엄'을 시험대에 올렸다. 미국과 이란 간 무력 충돌 여파로 달러화 가치가 급등하면서 원·달러 환율은 최근 야간 거래에서 장중 한때 1506원선까지 치솟았다.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선 것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외환시장에서는 이번 움직임을 단순한 단기 급등으로 보지 않는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환율에 어떤 경로로 반영되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패턴'이 다시 나타났다는 평가다. 유가가 먼저 움직이고, 달러가 강세를 보이며, 신흥국 통화가 압박을 받는 흐름이다. 전쟁과 충돌의 이름은 달라졌지만, 시장의 기억은 축적돼 있다.2003년 이라크 전쟁은 이런 패턴이 처음 분명히 드러난 사례로 꼽힌다. 전쟁 발발 전부터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며 국제유가는 배럴당 30달러를 넘어섰고, 안전자산 선호가 강해지면서 달러는 강세를 보였다. 원·달러 환율 역시 단기간 변동성이 확대됐다.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지지 않으면서 환율은 안정을 찾았지만, 외환시장은 상당 기간 전쟁 프리미엄을 안고 움직였다.2011년 아랍의 봄은 유가와 환율의 연결 고리를 더욱 분명히 드러낸 사례다. 리비아와 이집트 등 산유·물류국의 정세 불안이 이어지자 브렌트유는 한때 120달러선까지 치솟았다. 글로벌 자금은 위험자산에서 빠져나와 달러로 이동했고, 원화를 포함한 신흥국 통화는 동반 약세 압력을 받았다. 이 시기 외환시장은 유가 상승이 물가 기대를 자극하고, 그 기대가 다시 환율을 끌어올리는 구조를 경험했다.2019년 사우디 아람코 석유시설 피격은 '단기 충격'의 위력을 각인시켰다. 하루 만에 글로벌 원유 공급의 약 5%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유가는 하루 새 15% 이상 급등했다. 환율도 즉각 반응했다. 원·달러 환율은 위험회피 심리 확대로 급등 압력을 받았지만, 사우디의 신속한 복구 발표 이후 충격은 비교적 빠르게 진정됐다. 외환시장이 헤드라인에는 민감하지만, 지속성은 별도로 판단한다는 점이 드러난 사례다.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충돌 역시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초기에는 확전 가능성이 부각되며 달러 강세와 원화 약세가 동시에 나타났지만, 분쟁이 중동 전역으로 번지지 않으면서 충격은 제한적이었다. 시장에서는 이 사례를 통해 '사건의 크기보다 확전 여부가 환율의 방향을 좌우한다'는 인식이 다시 확인됐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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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과거 경험을 토대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외환시장이 그리는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갈래다. 첫째는 충돌이 제한적 수준에 머물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나 주요 산유국으로의 확전이 현실화되지 않는 경우다. 이 경우 환율은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부각되는 초기 국면에서 급등 압력을 받더라도, 이후에는 변동성 장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2019년 사우디 아람코 피격 당시처럼 유가가 단기간 15% 이상 급등한 뒤 안정됐던 패턴이다. 외환시장에서는 이 시나리오를 기본값으로 두고, 유가 헤드라인과 확전 가능성에 따라 단기 포지션 조정이 반복될 것으로 본다.둘째는 충돌이 장기화되되 중동 전역으로 번지지 않는 '관리된 긴장' 시나리오다. 이 경우 유가는 배럴당 80달러 안팎에서 고착되고, 달러 강세도 쉽게 꺾이지 않는다. 원·달러 환율은 급등보다는 상단이 점진적으로 높아지며 박스권이 위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외환시장에서는 유가 상승이 물가 기대를 자극하면서 금리 인하 기대를 후퇴시켜 환율 하방을 제약하는 점을 부담 요인으로 본다.셋째는 확전과 함께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실질적인 공급 차질이 발생하는 경우다.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막힐 경우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할 수 있고, 안전자산 선호는 달러로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외환시장은 단순한 변동성을 넘어 환율 레벨 자체를 재조정하는 국면에 들어갈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선을 시험할 수 있다는 경계론이 나오는 배경이다.외환시장에서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시나리오의 경계에 특히 주목한다. 확전이 없더라도 긴장이 장기화될 경우 환율은 전쟁 뉴스보다 유가 흐름과 인플레이션 기대, 미국 통화정책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달러 강세를 반영하는 달러 인덱스(DXY)도 최근 99선까지 상승하며 안전자산 선호 심리를 반영했다.한 외환시장 전문가는 "중동 리스크는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유가를 통해 물가와 금리 기대를 동시에 자극하는 충격"이라며 "확전이 제한될 경우 환율은 변동성 장세로 흡수되겠지만 긴장이 장기화되면 시장의 기준 환율대 자체가 한 단계 위로 이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