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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다루는 곳이 금융기관이고 어느 나라에서나 ‘돈’하면 은행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돈이란 좋은 것만이 아닙니다. 옛글에도 ‘황금은 흑사심’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풀이하자면 ‘돈은 선비의 깨끗하던 마음도 검게 만든다.’는 뜻일 것이니 돈을 다루는 사람들이 각별한 조심을 해야 할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런 중에도 신한은행의 분규는 얼마나 심각한지 도하의 신문들이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그 분쟁의 내용을 잘 모르는데 일전에 착실한 재일동포 실업인 한사람이 ‘신한은행 사태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장문의 글을 쓴 것을 자세히 읽어보고 그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신한은행은 재일동포 실업인 들이 소액을 투자하여 만든 소규모의 은행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참신하고 깨끗하고 친절한 은행으로 소문이나 있었지만 놀랄만한 속도로 성장의 성장을 거듭하여 한국 굴지의 대은행으로 발전 하였다가 오늘의 이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기업이던 급속도로 성장하면 누구나 그 배후를 의심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치나 권력의 도움이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작은 은행이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조흥은행을 흡수, 통합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놀란 것뿐이 아니라 굇심한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렇게 알뜰하던 조흥은행이 부실기업으로 전락했다는 사실도 서글펐지만 조흥의 목을 따고 김교철 행장 같은 모범적 은행인 이 가꾸어온 이 은행이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 서러웠습니다.
그리고 합병된 은행의 이름은 ‘조흥’이라 하지 않고 ‘신한’이라 한 것도 오만불손한 처사라고 느꼈습니다. 아마도 나만이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 신한이 거대한 카드회사인 LG카드를 삼켰다고 들었을 때에는 이 사태의 배후가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순영 회장이 대한생명을 대통령이 “빼앗아”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뱉었다 하여 크게 물의를 일으키고 있고 아마도 요새 이를 “빼앗아 가진” 한화가 비자금 문재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그 “빼앗아”라는 대통령의 발언과 무관한 것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신한은행의 창설에 관여한 순진한 재일교포 주주들을 외면하고, 때로는 무시하고, 오만불손하게 우리사회에 군림한 신한의 라응찬, 신상훈, 이백순 재씨는 은행창설 동지들에게 사과하고 국민 앞에 겸손한 자세로 고개 숙이는 아량과 미덕이 반드시 있어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약자를 업신여기면 하늘이 그런 자들을 그냥 두지 않는다는 것이 역사의 엄숙한 교훈이기 때문입니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