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존폐위기 처하자 '파산·공적자금' 선택 안하고 '벌어서 해결'로 정면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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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검찰에 소환됐다. ⓒ연합뉴스
    ▲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검찰에 소환됐다. ⓒ연합뉴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9월말 국세청의 탈세 혐의 고발에 이어 급기야
10일 탈세 및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검찰에 소환됐다.


효성의 [조석래號]가 벼랑 끝 위기에 놓였던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1998년 초, 조 회장은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 때
모기업이 존폐 위기에 놓이자
그룹의 운명을 가를 결단(?)을 내려야 했었다.


당시 외환위기와 함께 찾아든 모기업 효성물산의 부도설이
증권가와 금융가에 파다하게 나돌았고,
효성물산에 지급보증을 선 계열사들도
연쇄부도의 위기에 몰렸다.


외환위기 이전에 종합상사들이 그랬듯이,
효성물산도 안팎의 위기 변수들을 파악하지 못한 채
무리한 수출 드라이브로 인한 부실이 누적되고 있었다.


백척간두에 선 그룹을 살리기 위한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조 회장이 꺼낼 수 있었던 카드는 당시로서는
▲ 파산을 하거나 ▲ 공적자금을 받거나 ▲ 벌어서 갚는 것이었다. 


첫 번째 선택인 파산은 그룹의 위기를 막기 위한 [꼬리 자르기]인 셈이고,
임직원들은 보따리를 싸고 정든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의미였다.
파산을 하면 계열사들이 효성물산에 지급 보증한
3,000억 원만 해결하면 되는 일이었다.
허나, 조 회장의 머릿속에는 파산은 검토 대상이 아니었다.
총수로서 졸지에 거리로 내앉게 되는 임직원들의 아픔은 물론 사
회적인 파장을 감내하기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두 번째 방법인 공적자금의 수혈
당시 경영위기에 처한 대부분의 대기업이 선택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조 회장의 생각과 선택은 사뭇 달랐다.
효성물산에 공적자금이 투입되면 누적 부채 등으로
1조원이 훨씬 넘는 규모의 자금이 필요했다.
물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효성은 이 또한 국민의 혈세를 쓸 수 없다는 이유로 단호히 제외했다.


조 회장이 꺼내든 마지막 카드는 [벌어서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경영 정상화를 위한 보다 쉬운 방법이 있었지만,
국가와 임직원의 희생과 어려움을 담보하지 않겠다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이는 모든 기업이 기피하던 방법이었다.


조 회장은 당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고, 피해를 주지 않을 것
이란 강한 믿음을 가졌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정부는 물론 주거래은행을 찾아
“모든 걸 바쳐서라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채권은행에 피해가 안 가도록 하겠다.
합병 후 경영이 제대로 안 되면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
는 이행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 ▲ 효성 사옥 ⓒ연합뉴스
    ▲ 효성 사옥 ⓒ연합뉴스



    당시 재계에선 조 회장의 이 같은 선택을
    무모하고 잘못된 선택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이 창업 이래 지켜온, 임직원과 국가경제를 생각하는
    [효성의 DNA]였다.


    1998년 여름, 조 회장은
    그룹 내에서 자산 덩치가 1~4위이던 효성물산과 효성생활 산업,
    효성중공업, 효성T&C를 전격 통합해
    ㈜효성이란 이름의 통합 회사를 만들었다.
    그는 직접 대표이사를 맡아 책임경영 실현에 나섰다.
    암울한 터널을 빠져나가기 위한 기나긴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먼저 그룹의 계열사 수를 20개에서 11개로 줄였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등 팔 수 있는 건 팔아 2년 동안
    6000억 원을 만들어 금융권에 지고 있던 빚을 갚았다.


    조 회장의 선택이 과녁 중심에 화살이 꽂히듯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룹 주력 4사를 합병한 효성은
    서서히 재무구조 개선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토록 불안했던 임직원들의 고용은 유지됐고,
    누적된 부실을 순차적으로 갚아나갈 수 있었다. 


    국가 경제에 피해를 주지도 않았으며
    지금은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ATM기, 시트벨트 등
    세계 일류제품을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위상을 떨치고 있다.
    지난 11월엔 10여 년간 투자했던 최첨단 고성능 신소재인 폴리케톤이
    효성인의 손에 의해 세계에서 첫선을 보였다.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2020년까지 1조원에 이르고,
    이를 활용한 전후방사업을 포함하면
    최소 10조원의 부가가치가 있다고 추정된다.
    2년 전에는 국내 최초로 독자기술로 고성능 탄소섬유도 개발했다.


    15년 전 사면초가 위기에 놓였던 효성을 파산시켰거나
    공적자금을 수혈 받았다면
    지금의 이 같은 효성의 성과는 없었을 것이다.
    효성이 선택한 [신의 한 手]로 인해 그룹과 국가 경제를 살린 셈이다. 


    조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재계의 아버지]로 불린다.
    전경련 부회장직도 20년가량 맡으면서
    국가경제와 재계를 위해 많은 헌신을 해왔다. 


    효성그룹은 지금 탈세기업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산업입국 건설에 앞섰고,
    경제외교를 앞서 이끄는 등 조 회장의 기나긴 경영 족적은
    쉬운 것 하나 없었다.
    우리의 경영 역사상 쉽게 찾기도 어려운 업적이다.
    재계의 거목들의 경영 경험과 노하우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조 회장은 1935년생으로 노령이고,
    암 수술이후 5년이 지나지 않아 치료중에 있다.
    간도 3분의 1 정도 절제한 상황이고
    뇌에도 혈전이 뭉쳐져 있는 상황이다.
    또한 오랫기간 앓고 있는 [심장 부정맥]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병으로
    심근 경색을 초래하여 돌연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심장 부정맥으로 사망한 유명인들도 많다.
    씨름 백두장사 박영배,
    야구 롯데자이언츠 임수혁,

    세계적 액션스타 이소룡 등...


    이렇게 건강한 젊은이들도
    한순간에 사망으로 이르게 하는 질병이다.
    만약 유죄가 선고돼,
    고령의 조 회장이 수감생활을 하게되면
    건강에 크게 무리가 갈 것으로 우려된다.


    재계의 원로가 탈세사범으로 몰린 상황이 아쉽고 걱정스럽다.
    또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침몰 위기에 놓였던 효성을 [신의 한 手]로 구한
    산수(80세)의 조 회장이 이번 [위기]를 떨치고 경영전면에 다시 나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