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최고 아티스트들과의 다양한 협업으로 한국적 현대무용의 진수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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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애순 예술감독 신작 초연작 [이미아직(AlreadyNotYet)] 

     

     

    - 한국 장례문화에 등장하는 ‘꼭두’를 모티프로 삶과 죽음의 경계 탐색 

    - 국내외 최고 아티스트들과의 다양한 협업으로 한국적 현대무용의 진수 선보여 

    - 예기치 않은 재난 등으로 인한 죽음의 응어리를 풀어내고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


    국립현대무용단 안애순 예술감독 안무의 <이미아직(AlreadyNotYet)>이 오는 5월 15일(목)부터 18일(일)까지 나흘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한국 장례문화에서 상여를 장식하는 나무인형인 ‘꼭두’를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은 전통을 바탕으로 한 동시대적 탐구를 지속적인 화두로 삼아온 안애순 예술감독의 신작 초연작이며, 미술 주재환, 음악 이태원, 전통가곡 박민희, 조명 에릭 워츠(Eric Wurtz) 등 국내외 최고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한국적 현대무용의 진수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미아직>은 ‘몸은 이미 죽었으되, 영혼은 아직 떠나지 못한’ 죽음 직후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는 동양적 세계관과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 영혼과 육체, 환상과 실재 등의‘경계성’에 주목한다. 인간과 초현실적 존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변신의 세계, 친근하면서 낯설기도 하고 우화적이면서도 경쾌한 움직임의 세계를 그려간다.


    또한, 안애순 예술감독 특유의 분절적인 움직임의 안무와, 죽은 자의 넋을 받는 종이인형인 ‘넋전’을 비롯한 무대 위의 다양한 오브제 등이 어우러져 소위 ‘판타스틱 리얼리티(Fantastic Reality)’를 구축한다. 여느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것 같은 중간계적 세계가 <이미아직>에서 펼쳐지는데,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실재와도 같은 환상, 환상과도 같은 실재를 경험하게 하는 매개가 될 것이다. 


    이러한 꼭두의 경계성은 극장이라는 공간 속에서 죽음과 삶의 중첩, 가상과 실재의 공존 혹은 상호 전환의 이미지를 창출하며, 죽음이란 끝이 아닌 또 다른 차원의 펼쳐짐으로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 고단한 일상 속에 무뎌진 삶의 황홀한 감각과 날카로운 각성의 힘을 역설적으로 되살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미아직>은 사고와 질병, 또는 예기치 않은 재난 등으로 우리 주위에 만연한‘죽음’의 응어리를 풀어내고 그 절망과 상처를 예술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이 작품의 주요 장면 중 하나인 ‘20분의 남자군무’에서는 무용수들이 한계 상황까지 고조되는 춤을 춘다. 즉, 신체의 고통을 느끼는 동시에 쾌락과 희열이 공존하는 주이상스이다. 신체적으로 체험되는 죽음의 고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존재들의 극한적 상태를 나타낸다. 이것은 마치 샤만이 접신에서 경험하는 엑시터시와 같은 상태이며, 인간의 모든 욕망과 감정상태가 제거된 전이적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잉된 충동이 분출하면서 생성되는 에너지의 덩어리는 삶의 끝, 혹은 그것을 넘어 알 수 없는 시공간과 만나게 된다.


    한국적 전통에서 죽음의 문화를 상징하는 ‘꼭두’를 호출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죽음’과 ‘죽음을 다루는 방식’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하는 안애순의 제안이다. 안애순이 과거부터 주로 다루어왔던 ‘죽음’은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는 동양의 전통적 관점에서 기인한다. 이는 삶의 연장선에서 죽음을 보는 것으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죽음’을 집어 드는 방식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죽음에 대해 개인의 차원보다는 공동체가 다루어온 방식에 초점을 맞춰 죽음을 둘러싼 공동체의 제의가 어떠한 사회적 유효성이 발휘하는지를 포착하고자 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넋전은 본디 죽은자의 혼을 공동체 안에서 어르고 달래는 역할을 하며, 죽은자의 삶을 살아있는 자들의 몫으로 남기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미 아직>은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소비되는 생명, 관리당하는 생명, 관심을 받지 못하는 죽음 등에 대해 ‘죽음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을 다시금 하게 한다. <이미아직>은 현대 사회에서 재난이나 재해로 인해 갑작스럽게 준비 없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자본에 의해 소비당하며, 아무에게도 관심 받지 못한 채 죽은 망자를 위한 고통의 제의이며,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 대한 제의이기도 하다.  많은 희생자를 낸 세월호 침몰사고로 온 국민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 공연을 통해 치유받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미아직>에서 펼쳐지는 꼭두의 세계는 마치 여느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것 같은 중간계적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인간과 초현실적 존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변신의 세계, 친근하면서도 낯설기도 하고 우화적이고 경쾌한 움직임의 세계가 통상적인 경계 구분을 모호하게 하면서 환상적 실재로 나아간다. 이러한 중간적 영역은 가능성이나 잠재적인 힘으로 가득 차 있고 ‘실험’과 ‘유희’가 넘쳐흐르는 특징이 있다고 이야기된다. 


    죽은 자의 넋을 받는 종이인형인 넋전을 비롯하여 주재환 작가의 한국적 그로테스크의 진수이자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비인비귀(非人非鬼)’의 도깨비 기질, 몽환적이고 사이키델릭한 색채에 힘입어 어떻게 배가되고 확장되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무대가 준비된다. 


    꼭두새벽이라는 말이 있듯이, 꼭두의 시간은 가장 이른 새벽이면서 밤과 낮의 경계이자 도취와 현혹, 고통과 환희가 공존하는 전이의 시간이다. 또한 새로운 기운을 머금은 어두움의 시간이다.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환각을 수반하는 또 다른 실재이며,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그러할지 모른다. 가상과 실재는 서로 넘나들며 우리가 견고하게 믿고 있던 현실은 어느 순간 신기루처럼 흩어져버릴 수 있다. 이 경계적 시간은 ‘시계의 시간’과는 다르며, 무엇인가 일어날 수 있는, 아니 일어나야만 하는 ‘마술적인 시간’이라고 한다. <이미아직>을 본다는 것은 좁고 어두운 통로를 빠져나가는 것 같은 서늘하고 아찔한 죽을 고비의 체험, 고통과 황홀이 공존하는 체험에 다가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접하게 되는 환각과 무지갯빛 섬광의 세계는 용과 도깨비 등 한국의 오랜 판타지적 도상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야심차게 준비한 이미아직 (AlreadyNotYet)의 쇼케이스에서 배우들은 혼신을 다해 그동안 주비한 연기를 보여주며 내내 긴장감을 가지게 해 주었다. 공연이 시작되면 암흑속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는 여자 한명이 얼굴에만 조명을 받으며 등장을 하며, 여러 배우들이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깡총깡총뛰며 무대위를 돌아 다닌다. 대화없이 몸으로 그들의 의사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우리의 전통악기인 대금, 철현금, 해금, 피리, 장구, 가야금이 연주 되며 효과를 극대화 한다. 배우들은 죽음을 다양하게 묘사하며, 함성을 지르기도 하고 스로우 모션으로 다양한 표현을 하기도 한다.  볼링의 핀이 되어 쓰러지며 '죽음'을 암시 하기도 하며, 일제히 한방향으로 뛰어가며 함성을 지르기도 한다. 삶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몸을 버리고 가는 순간을 파노라마처럼 전개하여 관객에게 체험적으로 전달하려는 노력이 옅보였다. 이 공연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재 해석해 보고 현재의 삶을 더 충실하게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이 공연이 한국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전세계의 무대에 올려지며 또다른 쟝르의 한류를 개척해 나가리라 생각해 본다.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뉴데일리 양성길 자문위원(http://intel007.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