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손실 걱정으로 양호한 정제마진에도 웃을 수 없어"
  • ▲ 원유 생산현장.ⓒ뉴데일리
    ▲ 원유 생산현장.ⓒ뉴데일리


    산유국인 사우디 아라비아(Saudi Arabia)와 이란(Iran)의 국교단절이 세계 원유(Crude Oil) 거래 가격을 더욱 하락시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 가운데 국내 정유사들은 급락하는 유가로 발생한 재고손실에 대한 걱정으로 양호한 정제마진에도 웃고만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하향 안정세를 지속했던 원유 가격이 올해는 급락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 A는 "지난 1일부터 오늘까지 짧은 시간에 배럴당 6달러 이상 하락한 것은 급락이라고 볼 수 있으며 정유사들이 가장 걱정하는 원유 가격의 급락으로 인한 재고손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또 A는 "아직까지 정제마진이 양호하게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재고손실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다"며 "재고손실과 정제마진 중 뭐가 더 클지 아직은 예상하기 너무 이른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정유4사(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국제유가 하향 안정세로 줄어든 원료비 부담과 석유제품 공급부족으로 형성된 높은 정제마진으로 호실적을 기록했다.

    정유4사는 올해도 실적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배럴당 20달러 선까지 급락한 유가가 사우디·이란의 갈등으로 배럴당 10달러까지 추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급락에 따른 재고손실을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 B는 "낮은 원유 가격, 손익분기점 위에서 형성된 정제마진 등 높은 영업이익을 기록할 수 있는 구조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며 "동절기에 따른 난방유 수요까지 올해 상반기 원유 가격 급락에 따른 재고손실을 정제마진이 상쇄하고 남을 가능성이 있지만 시장 상황의 예측은 사실 쉽지 않다"고 말했다.


  • ▲ 석유제품인 휘발유를 파는 주유소 자료사진.ⓒ뉴데일리
    ▲ 석유제품인 휘발유를 파는 주유소 자료사진.ⓒ뉴데일리


    정제마진이란 원유를 구입해 휘발유, 등유, 경유, 중유, LPG 등의 석유제품을 생산·판매하는 과정에서 원유 구입비용, 물류비용, 공정비용 등을 뺀 금액이다. 정제마진은 정유사 실적 그 자체다.

    정제마진이 높은 것은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는 많지만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기준, 전세계 일일 석유제품 수요는 9208만6000배럴이지만 정유사가 하루에 생산할 수 있는 석유제품은 8867만3000배럴에 그치고 있다.

    업계 관계자 C는 "전세계 수요가 1억배럴을 돌파할 것이라는 예측이 십수년 전부터 나왔지만 배럴당 100달러 수준의 고유가 상황이 지속돼 대체에너지에 관심이 집중됐고 정제설비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정제설비 부족으로 형성된 현재의 높은 정제마진은 향후 2년 이상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 사우디 이란 갈등을 나타낸 자료사진.ⓒ유튜브 화면 캡쳐
    ▲ 사우디 이란 갈등을 나타낸 자료사진.ⓒ유튜브 화면 캡쳐


    사우디 이란의 국교단절이 원유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지난 14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사우디 이란 국교단절에 따른 중동지역 정치경제 리스크 전망 세미나'에 참석한 업계 전문가들은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이 국제유가를 더 하락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아산정책연구원 장지향 중동연구센터장은 "미국의 셰일가스로 시장 점유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동 지역 산유국 중 감산을 시도할 나라는 없다"며 "저유가를 통해 셰일가스에 비해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사우디와 이란과 같은 나라들이 종교적 갈등 정도로 원유 생산량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장 센터장은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은 종교적 갈등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원유 가격 하락에 따른 재정 약화로 위기에 몰린 사우디와 핵 포기를 반대하는 일부 이란 강경파 군부가 대중을 속이기 위한 '외부의 적 찾기'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원유는 셰일가스 출현으로 에너지 시장에서 누리던 독점적 지위를 서서히 잃고 있는 중이다. 셰일가스는 저렴한 LNG(액화천연가스·주성분 '메탄')로 에너지 시장에서 원유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배럴당 100달러에 거래되던 원유가 배럴당 60달러에 거래되는 천연가스와의 경쟁을 위해 가격 하락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두 차례의 오일 쇼크를 계기로 개발되기 시작한 미국의 셰일가스가 지난 2006년부터 상업생산을 시작하면서 액체 탄화수소(원유)를 위협하는 기체 탄화수소(천연가스)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권형 아중동팀장은 "사우디와 이란이 함께 감산에 대한 합의를 할 수 없는 갈등 국면은 공급과잉으로 유가 감산이 필요한 원유 시장에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 원유 시장은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OPEC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非OPEC의 영향력으로 양분돼 있는 상태에서 OPEC만의 위기로 시장 상황을 변화시키기에는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4일 국교단절을 선언했던 두 나라와는 무관하게 중동산 원유들의 기준 가격이 되는 두바이(Dubai) 원유는 배럴당 26달러 선으로 하락하며 최근 12년간 가장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중국의 경제 위기로 수요가 줄어들고 있지만 산유국들이 생산량을 줄이기는 쉽지 않다. 현재 배럴당 20달러대에 거래되고 있는 원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사우디 정부 관계자는 "감산을 통해 가격을 올리기 보다는 점유율을 확보하는 것이 지금은 더 중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사우디가 원유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감산을 하지 못하는 것은 정치적 문제와 연결돼 있다. 
    원유를 통해 벌어들이는 재정 수입이 전체 수입의 87.5%에 달하고 있으며 배럴당 99.5달러를 유지할 경우에만 재정적자가 나지 않는 상황이다. 

    NH투자증권에서 국제유가를 분석하고 있는 신환종 팀장은 "지난 2000년대 중국의 경제 발전으로 원유 수요가 높아지면서 산유국들이 많은 돈을 벌었다"며 "사우디가 왕국을 유지하기 위해 지난 10년간 엄청난 복지를 국민들에게 제공했는데 저유가 상황에서는 더 많은 원유를 생산해야 복지 예산을 감당할 수 있기에 감산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시장경제, 민주주의 국가의 경제 제재에서 받았던 이란도 감산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란은 핵 개발 의혹을 받으며 국제 사회로부터 북한과 같은 경제 제재를 2003년부터 받았다. 

    원유 수출길이 막히면서 재정이 파탄났고 핵을 개발한다고 주장했던 정치권력이 이란 국민들의 지지를 잃으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과 대화를 통해 핵을 포기하고 국제시장에 나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