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금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고, 당국도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자구책을 찾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남은 카드가 현대증권 매각을 통한 자금확보지만 그룹 입장에선 현대증권 만큼은 진심으로 넘기기가 어려울 것이다."

     

    현대증권을 매각해야 하는 현대그룹의 속사정에 대한 증권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해 오릭스PE(프라이빗에쿼티)와 매각이 부러지며 매각 의지와 진정성을 의심받기도 했던 현대증권이 다시 M&A(인수합병)시장에 나오자 마자 곳곳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불이 붙었지만 당사자인 현대증권과 팔아야 하는 현대그룹의 마음은 불편하다.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모든 계열사들이 소중하겠지만 현대증권은 사실상 그룹의 전부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현대증권 외에 주력 계열사 중 한 곳인 현대엘리베이터가 고군분투하며 그룹의 곳간역할을 해왔지만 더 이상의 증자가 어려워 현대그룹의 지원도 어려워졌다. 여기에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 쉰들러가 현대상선을 부당지원하고 있다며 갈등을 빚고 있으며 외교적 문제로까지 키울 생각도 하고 있다.


    그룹의 마지막 '캐시카우'가 현대증권인 셈이다.


    현대증권은 지난해 그룹 내에서 군계일학의 면모를 보였다. 자회사 현대저축은행의 실적개선, 일본 이온쇼핑몰 매각 등 부동산 투자수익에 힘입어 4분기에만 900억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등 선전하며 지난해 총 279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여기에 적극적인 배당정책을 통해서도 위기를 맞은 그룹의 효자노릇을 하겠다는 계획도 세워뒀지만 그룹의 가세가 기우는 상황에서 현대증권은 어쩔 수 없이 지난해에 이어 다시 M&A시장에 떠밀려 나오게 됐다.


    반면 현대증권을 매각해 현대상선과 그룹을 살리더라도 과연 이 효과가 얼마나 갈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버리는 격'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상징이자 돈줄인 현대증권을 쉽게 팔아버릴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현대증권을 지키기 위해 쥐고 있는 마지막 카드가 바로 현대엘리베이터의 우선매수청구권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제3자에 매각되기 전 같은 조건으로 주식을 먼저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우선매수청구권을 갖고 있게 되면 현대증권의 인수전을 통해 경쟁입찰을 거쳐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더라도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증권 지분에 대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현대증권은 현대엘리베이터가 살 수 있다.


    이 경우 현대증권의 대주주가 현대상선에서 현대엘리베이터로 바뀌는 것으로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현대증권을 지킬 수 있다.


    반면 현재 인수 자문단을 꾸리고 본격적으로 인수전에 나선 KB금융이나 한국금융지주를 비롯한 후보들은 들러리가 될 수 밖에 없다. 이 점을 우려해 인수 후보군들은 한목소리로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하라고 압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 현대그룹 측은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의 후순위 채권자인 만큼 배임 문제가 불거질 소지가 있기 때문에라도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우선매수청구권을 쥐고 있어야 가격협상에서도 유리할 뿐 아니라 헐값에 현대증권을 팔아야만 하는 사태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현대증권 지분 전량을 담보로 총 4220억원을 빌린 현대상선은 현대증권의 보유 지분가치를 6900억원으로 보고 있다. 현대증권을 매각해 차입금을 해결하고 자금난 해결에 숨통을 트일 수준의 매각가격을 제시받지 못하면 현대엘리베이터가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높다.


    현대그룹은 이달 말까지 인수의향서를 받아 3월말까지 본계약을 마무리 짓겠다는 계획이다. 속전속결로 매각작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매각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의견과 '다 팔고 껍데기만 남기면 뭐하냐. 현대그룹을 위해서라면 현대증권만은 남겨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현대그룹의 현대증권 매각에 대한 진정성 여부는 인수전 뚜껑이 열리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전에 현대그룹의 뼈와 살을 깎는 작업이 현대증권 매각 외에는 방법이 없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