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男 최연소 세계랭킹 100위권대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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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일반인과 경쟁하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난다 긴다 하는 선수가 모이는 엘리트 체육에서 동등하게 겨룬다는 것은 도전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포스트 이형택으로 꼽히는 마포고 이덕희(18·현대자동차-KDB산업은행 후원)의 도전은 그래서 아름답다.
테니스 선수인 이덕희는 청각 장애 3급이다. 일곱 살 때 처음 테니스 라켓을 잡았다는 이덕희는 공이 상대방 라켓이나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눈에만 의존한 채 경기에 임해야 하는 불리한 조건에도 그는 국내 정상권 선수로 우뚝 섰다.
이덕희는 지난 7일부터 충남 아산시에서 열리고 있는 제97회 전국체육대회에 참가해 서울마포고가 테니스 남고부 단체전 결승에 오르는 데 힘을 보탰다.
이덕희는 단체전 준결승에서 1복식과 3단식에 각각 출전해 모두 이겼다. 첫 복식경기에선 정영석(16)과 호흡을 맞춰 2-1 승리를 이끌었다. 3단식에선 경북안동고 김주환을 세트스코어 2-0으로 꺾고 결승 진출을 견인했다. 마포고는 12일 경기전곡고와 결승전을 치른다. 마포고는 이덕희 활약에 힘입어 4년 연속 결승에 진출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성인 무대에서 뛰고 있는 이덕희는 세계 무대에서도 꽤 유명한 선수다. 전 세계 랭킹 1위 라파엘 나달은 그의 친구다. 이덕희가 지난 2013년 남자프로테니스(ATP) 선수 중 최연소(14세10개월)로 순위점수를 땄을 때 나달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덕희는 항상 도전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는 글을 올린 일화는 유명하다.
현재 세계랭킹은 157위. 국내 남자 테니스 사상 최연소(만 18세2개월)로 세계랭킹 100위권대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빼어난 실력과 아름다운 도전은 외국 주요 언론사에도 관심의 대상이다. 영국 공영방송사 BBC 등 유수의 언론이 앞다퉈 이덕희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이번 전국체전에서도 뉴욕타임스의 테니스 담당기자 벤 로텐베르그가 이덕희를 밀착 취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2일 열릴 남고부 단체전 결승전까지 취재하며 이덕희를 집중 조명할 예정이다. 로텐베르그 기자는 "이덕희는 현재 150위권 선수로 전도유망하다"며 "청각 장애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 자리까지 와 있는 이덕희가 무척 인상 깊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덕희의 성장을 기대한다"며 "이번 취재를 통해 이덕희가 세계 무대에 더 알려지고 주목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덕희는 "뉴욕타임스에서 나를 취재하려고 지구 반대편까지 찾아왔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지만, 올해 안에 챌린저대회 우승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챌린저는 세계랭킹 100~300위 선수가 참가하는 대회를 말한다.
이덕희는 지난달 25일 대만 가오슝 챌린저에서 세계랭킹 142위인 한국체육대 정현(20)과 결승전에서 만나 세트스코어 0-2로 패했다. 비록 졌지만, 생애 첫 챌린저 준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이덕희는 올 시즌이 마감되는 11월까지 첫 챌린저 우승에 도전한 뒤 월드 투어를 통해 순위를 100위 이내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내년에는 4대 메이저대회(호주 오픈·프랑스 오픈·윔블던·US 오픈) 본선에 진출한다는 야심 찬 목표도 세웠다. 이덕희의 도전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