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 부진 속 SOC 감소, 주택경기 위축까지… "돌파구가 없다"대형사 '희망퇴직-유급휴가' 매서운 연말… 중견사, 사업중단국내외 전망 안갯속… "건설투자 감소, 외환위기 이후 20년만에 최대"
  • 자료사진. 중국발 황사가 덮친 인천 송도국제도시 아파트 건설현장. ⓒ연합뉴스
    ▲ 자료사진. 중국발 황사가 덮친 인천 송도국제도시 아파트 건설현장. ⓒ연합뉴스

    건설업계가 인적 구조조정과 인력 재배치에 나서면서 매서운 연말을 보낼 전망이다. 해외수주 부진과 SOC 투자 감소, 주택경기 위축 등에 따라 업황 선행지표로 여겨지는 건설투자가 2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면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인력구조개선작업이라는 이름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해온 삼성물산 건설 부문은 최근에도 만 4년 이상 근무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2015년 7962명에 달했던 직원을 올 상반기 5596명으로 2200여명 줄인데 이어 추가 감원에 나서는 것이다.

    삼성물산의 경우 최근 2년간 주택 부문의 신규수주를 축소하면서 인력을 감축했으며 해외수주 감소로 플랜트 인력의 이탈도 많은 편이다. 때문에 회사 일각에서는 향후 사업을 재개하더라도 인력이 없어 못 할 것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삼성물산 측은 "구체적으로 구조조정 대상 분야나 인원 수 없이 희망자에 한해 신청을 받고 위로금을 지급한다"며 "희망퇴직 신청은 올해로 끝낼 예정이나, 앞으로도 인력 재배치 등 인력구조개선작업은 계속해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물산이 진행 중인 인력구조개선작업에는 희망퇴직 외에도 재충전(리프레시) 휴직, 부서 재배치 등이 포함된다.

    대우건설의 경우 명예퇴직, 희망 퇴직제를 상시 운영하면서 지난해 말 5804명(계약직 포함)이던 인력을 3분기 5410명으로 400명 가까이 감축했다. 해외 플랜트 수주 감소로 현장이 줄어들면서 주로 계약직을 중심으로 인력이 축소됐다.

    여기에 지난 10월부터는 플랜트 부문 위주로 2개월 단위의 유급 휴가제(대기휴직제)도 시행 중이다. 기본급만 받는 조건으로 1000여명의 직원이 두 달씩 돌아가며 휴직에 들어가면서 경비 절감에 나선 것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현장 감소로 발생한 유휴인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영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대림산업은 이달 1일자로 전 부문을 대상으로 무급휴직과 희망퇴직 희망자 신청안내 공고문을 내고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해외수주 부진 등을 이유로 이미 지난해 말 7619명에서 올해 3분기 7225명으로 인력을 축소한 바 있는데, 추가 조정에 나선 것이다.

    지난 3월부터 플랜트 부문을 중심으로 올해 말까지 무급휴직제를 시행 중이며 내년 이후로 휴직 제도를 추가 연장할 지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희망자에 한해 무급휴직을 진행하다보니 반응이 나쁘지 않아 플랜트 부문에서 전 부서 확대 시행하게 됐다"며 "희망퇴직의 경우 희망자가 오히려 1년치 퇴직금을 더 받고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의 경우 공식적으로 "구조조정 또는 인력 재배치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모그룹에서 본부별로 예년보다 많은 수준의 구조조정 할당 인원이 내려왔다는 '감원설'이 돌고 있다.

    이밖에 최근 플랜트사업부 인력을 중심으로 이탈이 많은 SK건설도 연말 인사를 앞두고 희망퇴직 시행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휴인력을 타 부문으로 전환 배치하기도 한다.

    GS건설의 경우 안전스쿨, 품질스쿨 등 사내교육을 통해 일손이 남아도는 해외 플랜트 인력을 최근 현장이 급증한 주택사업 부문으로 순환배치하면서 인력운용 효율성을 도모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상대적으로 부실한 해외플랜트 부문을 구조조정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현재 GS건설은 인위적인 인력 규모 조정은 안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다.

  • 세종시 주상복합 공사 현장. ⓒ연합뉴스
    ▲ 세종시 주상복합 공사 현장. ⓒ연합뉴스

    건설사들이 이처럼 인력 구조조정과 재배치에 나선 것은 수주 감소와 직결돼 있다. 당장 일감 부족도 문제지만, 새로운 일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수익성 악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감행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저유가와 저가수주 지양으로 최근 2~3년간 해외건설 수주가 급감하면서 준공 현장에서 나오는 인력을 돌릴 신규 사업장이 사라졌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13일까지 수주한 해외 신규수주는 267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257억달러에 비해 4.02% 증가했다. 하지만 물리적 여건상 지난 2년 동안과 마찬가지로 300억달러를 밑돌 것으로 보인다. 신규 해외수주액이 3년 연속 300억달러를 하회한 것은 2004~2006년 이후 12년 만이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이란 등 당초 기대했던 중동 시장의 신규수주가 풀리지 않으면서 내년 이후에도 플랜트 수주 확대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유휴인력을 전환 배치하는 등의 방법으로 구조조정을 최소화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로 눈을 돌려봐도 상황은 여의치 않다.

    국내 SOC 투자 감소로 토목 부문의 인력도 남아돈다. 정부와 정치권이 인프라 보유량이 축적돼 더 이상 투자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이상 당장 인력이 부족하더라도 인력을 확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국회가 확정한 SOC예산은 19조7000억원으로, 올해 19조원에 비해 4%가량 늘어났다. 하지만 지난해 22조원 수준에 못 미치는 것은 마찬가지다.

    여기에 그간 상대적으로 호황을 누리면서 실적 버팀목이 됐던 주택·건축 부문의 투자도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주택 부문의 주요 먹거리인 재건축·재개발 등에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면서 사업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는 조합들이 생겨 도시정비사업 수주도 줄어든 상황이다.

    시평 상위 10대 건설사의 정비사업 수주액은 모두 10조2468억원으로, 지난해 수주액 19조2184억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형건설 B사 관계자는 "앞서 해외에서의 손실로 플랜트 부문 기술자들이 해외 침체기에 칼바람을 맞았고, 이어진 토목 수난시대에는 잘 나가던 토목 기술자들이 오지 현장, 심지어 건축지원부서로 발령 나기도 했다"며 "정부가 죽기 살기로 잡으려는 주택·건축 인력이 다음 타깃일 것이라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고 전했다.

    이달 들어서는 중견건설사에도 칼바람이 불고 있다.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부분이 중견사들의 수주 포트폴리오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주택·건설 부문이기 때문이다.

    실제 정성욱 금성백조주택 회장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세 번째 위기가 올 수 있다며 신규 사업을 전면 중단하기도 했다.

    정성욱 회장은 "국내외 통계를 들여다보니 부동산을 비롯한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거품이 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래서 과감히 신규 사업을 전면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정 회장은 외환위기가 닥치기 2년 전인 1995년 회사 몸집을 절반으로 줄이면서 중견사들의 잇단 도산에도 생존할 수 있었으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도 1년간 주택사업에서 완전 철수한 바 있다. 이 때도 주택업계 위기에서 살아남으면서 시장을 '위기관리 CEO'라는 평을 얻게 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은행 조사 결과 3분기 건설투자는 마이너스(-)6.7%로, 외환위기(1998년 1분기 -9.7%) 이후 82분기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건설기업 입장에서는 내년 해외수주 회복 가능성이 낮은 상태에서 최근 3~4년 이어지던 주택 호황마저 꺾이고, 인프라 사업에서도 정부 발주가 없다보니 인력효율화 작업이 불가피하게 됐다"며 "내년에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이런 움직임이 업계 전반으로 퍼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