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감정원(이하 감정원)과 한국감정평가사협회(이하 감평협) 간 갈등의 골이 깊은 가운데 무게중심을 잡아야 할 국토교통부가 심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정원과는 빈번하게 해외 출장을 함께 다니며 친밀한 관계를 쌓고 있다. 반면 감평협과는 사이가 매끄럽지 못하다. 일부 비상식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감정평가업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장하는 국토부의 이중적인 태도를 고발한다. <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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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가 민간단체인 감평협 회원 전용 온라인 커뮤니티에 임의로 접속해 게시글 들을 살펴온 것으로 드러났다.
소통을 위한 지도·관리나 동향 파악이라는 핑계지만 일각에선 사실상 사찰이 아니냐는 곱지않은 시선도 있다.
감정평가 업계에선 국토부의 갑질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잘못된 관행이 향후에도 재발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우려한다.
31일 감정평가업계와 업계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 국토부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국토부는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감평협이 회원에게 업무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만든 내부 전산망에 자유롭게 접근해 왔다.
해당 전산망은 인터넷을 통해 연결되는 인트라넷으로, 회원전용 공간이다. 협회에서 공지사항 등을 띄워 회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하는 목적으로 운영한다. 여기에는 공용게시판과 토론방 등도 개설돼 있어 회원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감정평가 업계 한 올드보이(OB)는 "회원이 아니면 게시판 등에 들어갈 수 없다"면서 "감정평가 관련 3개 법 시행령과 시행규칙(감정원법) 개정 당시에도 찬반 격론이 벌어졌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감정평가사는 "하루에 보통 6~7개 글이 올라온다. 부감법(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 개정 때처럼 사인이 심각할 땐 십수 개의 글이 올라오고 댓글도 많이 달린다"며 "현재도 (국토부에서 보면) 껄끄러울 내용의 글이 1~2개 남아있다"고 부연했다.
국토부는 적어도 2개 이상의 접속 아이디(ID)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3개월 이상 접속하지 않아 휴면계정 상태인 ID를 포함하면 3~4개로 늘어난다. 감평협이 국토부 산하단체여서 업무 지도·관리를 이유로 ID를 발급받았던 것으로 추정한다. 문제는 공식적인 업무 지도 외에도 국토부가 임의로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해당 인트라넷에 들어가 회원이 올린 글을 제한 없이 열람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식통은 "업계 OB 사이에선 올해 초 논란이 됐던 공시지가 인상처럼 (국토부가) 사회적 관심이 높거나 파장이 큰 이슈가 발생할 때 주로 여론 동태 파악에 나섰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고 귀띔했다. -
이에 대해 한정희 국토부 부동산평가과장은 "감평협 사이트에 들어갈 수 있는 ID는 없다. 금시초문"이라면서 "2017년 12월부터 업무를 봐왔지만, 감평협 사이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A사무관도 "업무상 감평협 누리집에 방문하곤 한다. (업무가 넘어가) 지금은 맡지 않는 업무인데도 아직 다루고 있는 것처럼 잘못 안내되는 내용을 발견하면 수정하도록 지도한다"며 "회원전용 코너에 들어가는 ID는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나 B사무관은 "(회원전용 코너는) 익명 게시판 같은 거일 텐데 예전 초창기에는 (국토부에서) 들어갈 수 있는 ID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업무와 관련해) 국토부 접속 ID를 달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데일리경제가 백방으로 수소문한 결과 적어도 2011년까지는 국토부에서 업무상 필요하다며 받은 ID로 회원전용 게시글 접근이 가능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2012년 이후로 국토부의 휴면계정 ID가 최근 언제까지 활성화됐었는지는 현재로선 확인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한 소식통은 "3개월 이상 로그인하지 않으면 휴면계정이 되는 것으로 안다"며 "이론상으로는 지난 3월까지도 국토부 ID가 활성화돼 있었을 수 있다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감평협은 공시지가 조사 등 국토부의 부동산 관련 사업을 수행하고 산하단체로서 지도·감독을 받지만, 엄연히 민간단체이다. 일각에서 국토부가 회원전용 인트라넷 접속 ID를 보유하고 있었고, 얼마든지 게시글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민간단체 사찰 가능성을 제기하는 배경이다. 국토부 법률자문단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국토부가 감평협 회원전용 사이트에 들어갈 수 있고 게시글 등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라며 "행정기관이 개인적인 영역에 개입할 수 있었다는 얘기여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감정평가 업계 일각에선 국토부의 회원전용 인트라넷 접속이 과거처럼 재연될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우려한다. 회원전용 게시판의 작성자 이름을 실명 또는 가명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다가 무조건 익명 게시판으로 전환한 배경에 이런 불안감이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한 감정평가사는 "누가 뭐래도 감평협은 국토부 눈치를 살필 수밖에 처지"라며 "국토부가 업무상 지도·관리를 위해 필요하니 ID를 달라고 했을 때 과연 어느 집행부가 싫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