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O 2020 초읽기… 시장 선점 막바지 총력체계적 투자 등 韓 정유업계 경쟁력 관심 집중"아시아에서 가장 준비 잘 돼… 장기불황 넘어설수도"
  • ▲ SK 울산 CLX. ⓒ성재용 기자
    ▲ SK 울산 CLX. ⓒ성재용 기자

    "아시아에서 한국 정유사들이 내년부터 전개될 저유황유 시장에 가장 잘 준비돼 있다. 한국의 정유사들은 이미 청정 정유제품 생산량을 극대화하기 위한 개선을 완료했다."

    선박연료유 황 함유량 상한선을 대폭 강화하는 국제해사기구 규제(IMO 2020) 시행을 한 달여 앞두고 한국 정유업계의 선진이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에너지 분야 정보분석업체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글로벌 플라츠'는 최근 보고서 '아시아에서 저유황유 시장을 가장 잘 준비한 한국'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S&P 글로벌 플라츠는 "일본과 중국의 정유업체들은 저유황유 생산을 위한 기존 시설 개선에서 한국에 비해 뒤쳐진다"며 "급증할 저유황유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한국 정유업계가 내년부터 개화할 시장을 선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IMO는 온실가스와 산성비 저감을 위해 내년 1월1일부터 세계 모든 선박이 사용하는 선박연료유의 황 함유량을 3.5%에서 0.5% 이하로 강화하는 규제를 시행한다. 해운사들은 기존 선박유(잔사유)를 저유황유로 변경해야 한다.

    황 배출 기준이 강화되면서 선사들은 유황 제거를 위한 별도의 스크러버 설치 또는 LNG 추진 장치 설치, 저유황유(LSFO)로 교체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저유황유를 도입하면 기존 선박에 별다른 설비 설치 없이 곧바로 적용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스크러버를 설치할 경우 장기적으로 이익일 수는 있지만, 대형 선박이 아닐 경우 한 척에 200만~800만달러에 달하는 설비 투자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고, 장기적으로 저유황유와 다른 연료의 가격차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LNG는 별도의 연료탱크를 갖추기 위해 최대 선박의 20~30%에 달하는 비용이 투입돼야 한다.

    한 때 업계에서는 다수의 선박이 스크러버 설치에 나서면서 저유황유 도입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지만, 저유황유 도입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 조사 결과 올해 9월 기준으로 전 세계 대형 선박 1만1000여척 중 스크러버가 설치된 선박은 약 542척으로 5%에 그쳤다.

    업계 한 관계자는 "IMO 2020이 전면 시행된다고는 하지만, 초기에는 규제 강도의 불확실성 등 여러 변수가 있기 때문에 실제 파급력은 1분기가 지나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규제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2~3년 정도 걸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 ▲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내 VLSFO. ⓒ연합뉴스
    ▲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내 VLSFO. ⓒ연합뉴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4사는 최근 앞 다퉈 저유황유 생산설비 투자를 늘리고 있다. 글로벌 경기 악화 영향으로 인한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저유황유가 모처럼 나온 '새 먹거리'인 만큼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

    에너지 관련 글로벌 리서치 에너지 애스펙츠(Energy Aspects) 분석을 보면 2020년 전 세계 해상연료유 수요 300만배럴 중 저유황유 점유율이 50%를 상회하고 향후 200만B/D 규모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저유황유가 배럴당 80달러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하루 1억6000만달러 규모의 시장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SK에너지는 황 함유량이 각기 다른 정유를 섞어 저유황 연료유를 생산하는 '해상 블렌딩 사업'의 생산량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고유황 연료유의 황 함유량을 낮추는 대규모 탈황설비인 감압잔사유탈황설비(VRDS)를 마련, 내년 3월 가동을 앞두고 있다. 앞서 1조원을 투자해 2017년 11월 건설에 돌입한 이 설비는 내년 1월 공사를 마치고 3월부터 상업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 설비는 기존 벙커C유 등 고유황 중질유를 원료로 써서 저유황 중질유, 선박용 경유 등 저유황유를 생산하게 된다. 내년 3월부터 하루 평균 4만배럴의 저유황유가 나온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달 국내 정유업계 중 가장 먼저 저유황유 생산설비를 만들었다. 이 시설은 국내 최초로 특허를 출원한 초임계 용매(액체와 기체 성질을 동시에 가진 물질) 기술이 적용된 설비로, 하루 최대 5만배럴의 초저유황유 선박유(VLSFO)를 제조할 수 있다.

    최근에는 세계 최초로 친환경 선박연료 브랜드 '현대스타(HYUNDAI STAR)'를 출시하기도 했다.

    현대오일뱅크는 "1988년 국내 최초의 고도화설비 도입 이래 축적해 온 중질유 처리 기술력이 이번 신기술의 기반이 됐다"며 "기존 설비를 적극 활용해 투자비를 최소화하면서 기존 모드와 VLSFO 모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해 공정상 유연성까지 갖췄다"고 설명했다.

    GS칼텍스는 하루 27만4000배럴의 고유황 중질유를 정제할 수 있는 선비를 갖췄다. 2006년부터 6조원을 투입해 1~3기의 고도화 정제설비를 마련하고 증설 중인 4기도 마무리 단계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내 정유사 중 최대 규모의 고도화 설비다.

    또한 기존에 공장 연료로 쓰이던 저유황유를 LNG로 대체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저유황유 판매 확대에 나서고 있다.

    GS칼텍스 측은 "IMO 2020 시행에 맞춰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저유황 선박유 공급량을 늘리는 등 수급에 차질이 없도록 다양한 대응방안을 검토하고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 잔사유 고도화시설(RUC). ⓒ에쓰오일
    ▲ 잔사유 고도화시설(RUC). ⓒ에쓰오일

    에쓰오일은 잔사유에서 황을 제거하는 중질유탈황공정(RHDS)의 처리용량을 증대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잔사유를 RHDS 및 중질유 분해시설(HS-FCC)에 넣어 저유황유를 비롯해 올레핀 다운스트림 제품인 프로필렌옥사이드(PO), 폴리프로필렌(PP)으로 전환한다. 현재 RHDS의 잔사유 처리 규모는 하루당 6만3000배럴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잔사유 고도화설비(RUC)를 완공했다.

    IMO 2020이 특정 회사의 독주가 없는 국내 정유시장 판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저유황유의 경우 표준제조법이 있는 게 아니라 각 사마다 규제 대응, 저유황유 생산 방식 등이 다른 만큼 내년 본격 시행 이후 경쟁 성적에 따라 시장 순위가 바뀔 수 있다고 S&P 글로벌 플라츠는 분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새 규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친환경 기준을 충족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며 마진 개선 등 동력 창출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저유황 선박유는 고유황 선박유에 비해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 고부가가치 시장이자 단일 시장 기준으로는 육지 연료유보다 큰 거대시장"이라며 "IMO 2020 이후 수요가 늘면 가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어 업체들의 정제마진 개선에 큰 도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