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종합화학, 국내 1호 NCC '가동 중단'SK케미칼-롯데케미칼 등 범용 축소 등 사업재편OCI-한화, 태양광 폴리실리콘 '엑시트'… 신성장동력 재구축
  • ▲ SK 울산 CLX. ⓒ성재용 기자
    ▲ SK 울산 CLX. ⓒ성재용 기자

    국내 1호 NCC(나프타분해시설)가 연내 가동을 중단한다. 석유화학산업의 '쌀'인 에틸렌 가격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업황 부진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이면서다. 다른 국내 석유화학업체들 역시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피할 수 없게 됐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동남아시아(SEA) 거래 지난 20일 기준 에틸렌 거래 가격은 전주대비 11.6% 하락한 t당 531달러를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수요 감소로 가격이 하락했고, 관련 다운스트림 제품 시황까지 악화됐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에틸렌 가격이 t당 1000달러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년 만에 반토막이 난 셈이다. 이에 따라 에틸렌을 원료로 생산하는 폴리에틸렌(LDPE),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등의 가격도 잇따라 하락하고 있다.

    이 같은 시황 악화에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최근 SK종합화학이 울산 콤플렉스 내 제1 NCC(나프타분해시설)를 48년 만에 가동 중단키로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NCC에서는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을 생산한다.

    특히 이 설비는 대한석유공사 시절인 1972년 국내 최초로 상업가동한 것으로, 이번 가동 중단 결정의 상징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SK종합화학 측은 "시황에 민감한 범용 제품 비중을 축소하고 시황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고부가 화학소재 분야로의 딥체인지를 추진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공정 개선과 안정적 운영에 노력해왔으나, 안타깝게도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내 석유화학업계에서 NCC 가동 중단을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석유화학단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울산산업단지 내 설비인 만큼 노후화돼 정비할 필요성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최근의 시황 악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업계 한 관계자는 "NCC는 규모의 경제가 실현될수록 수익이 나는 대표적인 사업"이라며 "글로벌 신·증설에 따른 과잉공급이 심화되고 있고, 무엇보다 팔 곳이 줄어드는 수요 부진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SK종합화학은 투자 대신 정리를 선택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석유화학제품의 원료인 원유 가격이 최근 하향세이지만, 정작 수요가 없어 원료 가격 하락에 따른 수익성 제고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여기에 중국이 올해부터 2022년까지 대규모 에틸렌 증설 투자를 추진할 계획이어서 과잉공급에 따른 제품 가격 하락세도 불가피하다.

    교보증권 리서치센터 자료를 보면 중국 페트로차이나, 시노켐, 완화그룹 등 현지 업체 16개사는 올해 1분기부터 2022년 1분기까지 총 1060만t 규모의 에틸렌을 상업 가동할 계획이다. 현재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이 생산하는 연간 에틸렌 생산규모가 모두 1000만t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또한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화학업체들의 재고 수준이 높아진 점도 부담이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3월 2주 기준 중국 국영업체가 보유한 폴리에틸렌(PE)과 폴리프로필렌(PP) 재고는 125만t으로, 전년동기 95만t보다 확연히 많은 수준"이라며 "유럽·미국의 수요 부진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상반기 내 가파른 수요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 ▲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롯데케미칼
    ▲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롯데케미칼

    이에 다른 석유화학업체들도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도 가속화되고 있다.

    SK케미칼은 바이오에너지(바이오디젤, 바이오중유) 사업을 매각하고 미래 소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 13년간의 투자로 바이오에너지 시장점유율 1위라는 성과를 달성했지만, 주력 소재인 PETG(글리콜 변성 PET수지) 및 자동차 경량화 소재 PCT 등에 더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SKC 또한 10년 넘게 가동률 100%를 유지해왔던 프로필렌옥사이드(PO) 등 사업을 분사했다. 대신에 최근 2차 전지 핵심 소재인 동박을 제조하는 KCFT 지분 100%를 인수했으며 블랭크 마스크 등 반도체 소재를 자체 개발하기 위한 장기 계획의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롯데케미칼의 경우 '기초부터 고부가까지' 구축하는 전략을 세웠다. 1월 롯데첨단소재와의 합병을 마무리한 롯데케미칼은 첨단소재 사업부가 주력하던 엔지니어드스톤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범용 제품은 중국 물량이 대거 투입되면서 과잉공급을 초래해 더 이상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진입장벽이 높은 고부가 제품을 위주로 사업을 다변화해 수익을 창출해가고자 하는 전략"이라고 판단했다.

    OCI와 한화솔루션 등 태양광 소재업체들은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백기를 들었다. 태양광 폴리실리콘 사업을 중단하고 고부가 제품 생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OCI는 올해 초 군산공장을 태양광용에서 반도체용 폴리실리콘 생산 공장으로 전환한다. 태양광 폴리실리콘 생산은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맡아 원가를 25% 이상 절감하고 반도체용은 5월부터 생산라인을 가동해 2022년까지 생산량을 5000t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한화솔루션은 친환경 가소제(에코데치), 수첨수지 등 고부가 제품에 주력한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산학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 중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중국의 대규모 에틸렌 프로젝트들의 가동이 연기되거나 취소될 경우 상황이 좀 나아질 수는 있겠지만, 여전히 불안요소가 크다"며 "외형을 늘린 중국업체들 중 소폭 구조조정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향후 1~2년간은 상황을 지켜봐야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사업을 다변화하고 고부가 중심으로 확대해가야 부진을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