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장수명-안정화 등 결과 속속 발표'R&D 매진' 배터리 3사 특허도 4만건 육박
  • ▲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SK이노베이션
    ▲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를 비롯한 2차전지 시장이 확대되면서 활성화된 국내 산·학·연 연구개발의 성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더 오래, 보다 안정적인 배터리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K-배터리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배터리 용량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실리콘 음극 독자기술을 개발해 차세대 배터리 기술로 적용하고 있다.

    SCN(Silicon Carbon Nanocomposite)이라는 이 기술은 '나노화', '복합화'라는 특허 받은 독점기술이 핵심이다. 실리콘을 머리카락 두께 수천분의 1 크기로 나노화해 기존 음극소재인 흑연과 복합화한 것이다.

    특히 기존 실리콘 소재의 문제점으로 지목됐던 배터리 팽창(스웰링) 부작용을 해소해 차세대 배터리 기술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배터리 소재업체들은 성능 향상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음극 소재만큼은 최근까지 '흑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흑연이 화학적, 구조적으로 안정적인 소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전기차용 배터리 등 용량과 출력, 내구성에 대한 수요처의 요구가 늘면서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에 한계가 있는 흑연을 대체할 소재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SDI가 주목한 실리콘의 경우 흑연에 비해 리튬이온을 약 10배 더 담을 수 있고, 이에 따라 용량도 10배 더 늘릴 수 있다.

    문제는 '팽창'이다. 흑연에 비해 30~40배 이상 팽창하기 때문에 배터리 안전성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이를 억제하는 것이 업계 과제였다. 삼성SDI는 SCN 기술을 통해 기존 실리콘 소재의 팽창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SNE리서치 관계자는 "실리콘은 소재 특성상 부피 팽창이 발생해 조직이 빠르게 파괴된다. 이는 2차전지의 빠른 충·방전 수명 감소를 불러온다"며 "업계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리콘을 나노 단위로 쪼개 산화물, 합금, 탄소 등으로 감싸 물리적으로 막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흑연 음극 표면에 안정적인 보호층을 형성할 수 있는 계면제어기술도 개발됐다. 새로운 불연성 전해액을 개발하면서 가능하게 된 것인데, 이를 통해 배터리의 화재위험은 줄이고 충전 속도는 높일 수 있게 됐다.

    송승완 충남대 응용화학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불에 타지 않는 전해액을 사용하면서 충전 속도도 상용제품에 비해 4배 이상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배터리 작동시 전해액이 분해되면서 전극 표면에 형성되는 보호층은 음극과 양극 표면을 전기화학적으로 안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표면보호층 형성과 안정성은 전해액 조성에 의해 제어될 수 있으며 리튬이온전지의 장수명과 안전성 확보를 위한 필수요소다.

    상용 리튬이온전지에는 흑연 음극과 EC(에틸렌 카보네이트)계 전해액이 사용된다. EC계 전해액은 불이 잘 붙는 가연성 물질이며 흑연 음극 표면에는 형성된 표면보호층이 균일하지 않고 높은 저항으로 작용해 충전 속도와 용량을 낮추는 문제를 갖고 있다. 흑연 음극의 이론용량인 372㎃h/g에 도달하려면 20시간 이상 충전해야 했다.

    송승완 교수 연구팀은 불에 타지 않는 PC(프로필렌 카보네이트)계 전해액을 개발했다. 또 계면제어기술을 통해 얇고 안정적이며 낮은 계면저항을 갖는 표면보호층을 흑연 음극 표면에 구축, 기존보다 4배 이상 빠르게 충전하는데 성공했다.

    송 교수는 "배터리 화재위험이 없는 불연 전해액 적용과 표면보호층 제어 및 안정화를 통해 흑연 음극의 용량과 리튬이온 2차전지의 에너지밀도 증가뿐만 아니라 충전속도와 안전성을 동시에 향상시킨 최초의 사례"라고 밝혔다.
  • ▲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LG화학
    ▲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LG화학
    흑연을 대신해 에너지 밀도가 10배 이상 높은 리튬 금속을 음극재로 사용한 리튬금속 전지 관련 기술도 최근 개발됐다.

    이종원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교수, 박민식 경희대 교수, 김정호 호주 울런공대 교수 공동연구팀은 리튬이온전지의 용량 한계를 극복할 전극 설계기술을 개발했다.

    리튬금속전지의 경우 충·방전 과정에서 전극 주변에 생기는 리튬 결정으로 인해 부피가 급격히 변하며 전극 성능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부피 변화를 막기 위해 리튬 저장용 다공성 구조체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는 있지만, 리튬이 기공 내부까지 침투하지 못하고 표면에 증착하는 것이 문제였다.

    연구팀은 전기화학 시뮬레이션을 통해 전국 내부로 갈수록 표면활성이 증가하는 '표면활성 구배형' 구조를 설계, 리튬이 내부까지 균일하게 저장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실험 결과 표면활성 구배형 구조 전극은 거듭된 충·방전에도 수명이 떨어지지 않았고 원래 용량을 유지할 수 있는 성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종원 교수는 "높은 에너지 밀도와 수명을 갖는 차세대 리튬금속 전지 개발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에이씨에스 에너지 레터스(ACS Energy Letters)' 1일자 온라인 판에 실렸다.

    이와 함께 △양극과 음극이 한 전극에 구성된 '야누스 페이스 전극'을 사용해 늘어나는 성질을 지닌 아연-은 2차전지(박수진 포항공대 교수 연구팀) △전고체전지의 고체전해질 재료를 지금보다 90% 이상 저렴한 비용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특수 습식합성법'(박준우 한국전기연구원 차세대전지연구센터 박사팀) 등의 기술도 개발되는 등 연구개발 성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대표 전기차 배터리 3사 역시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LG화학의 경우 배터리 관련 특허를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다. 2만2016건으로, 국내 배터리기업들의 최대 경쟁사인 중국 CATL이 보유한 특허 기술이 2000건 수준인 것과 비교할 때 10배 이상 많다. 앞으로도 1조원 이상의 연구개발비 가운데 30% 이상을 배터리 분야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삼성SDI의 배터리 관련 특허는 상반기 기준 1만5965건으로,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기술에 집중돼 있다. 급속충전 기술을 접목한 고용량 배터리 개발, 고용량 하이니켈 양극 기술, 고용량 실리콘 음극기술 등이다. 상반기 R&D 비용은 4092억원으로 현 추세라면 올해 8000억원을 초과해 연간 기준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 역시 1200건의 특허 등록을 완료했다. 니켈 함량을 90% 이상으로 높인 NCM구반반(9½½)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기술력 향상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상반기 R&D 비용으로 전년대비 30% 증가한 1278억원을 투입하는 등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상위 업체들을 따라잡기 위한 투자로 풀이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어 미래 배터리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현재는 널리 활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 성능 향상이 주효하지만, 몇년 내에 주행거리와 충전시간 등 소비자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가기 위한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서 승부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