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이어 총수 경영 공백 현실화불확실성 커진 코로나19 상황에 '설상가상'최고의사결정권자 역할 절대적 '미래사업' 추진력 상실4년 간 명맥 끊긴 '빅딜' 추진 또 물건너가나... '민간 외교관' 역할도 기대 못해
  •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상윤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상윤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법정 구속이 결정되면서 우려했던 총수 공백 상황을 다시금 마주하게 된 삼성전자에 어둠이 드리우고 있다. 특히나 시스템반도체, 5G, 인공지능(AI), 전장 등 미래사업을 발굴하고 육성하기에 골든타임으로 꼽히는 올해와 내년,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삼성이 미래사업을 위한 굵직한 의사결정과정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에서 위기가 눈 앞에 닥쳤다는 평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8일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재판에서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국내 최대 기업이자 재계를 이끄는 삼성의 총수 공백 리스크가 재점화됐다.

    3년 전 이 부회장의 1년 가까운 구속으로 이미 총수 공백 사태를 마주했던 바 있는 삼성은 물론이고 코로나19 상황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재계 안팎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더 높아진 상황이다. 재계 뿐만 아니라 삼성과의 협력관계에 있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에게도 이 부회장의 또 한차례 공백 상황은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려감이 큰 부분은 삼성의 미래사업이다. 이미 글로벌 IT업계에서 앞다퉈 미래사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 가운데 3년 전에 이어 삼성이 또 한번 총수 공백 리스크를 짊어지게 되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분야가 신사업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더구나 올해와 내년은 삼성의 주력인 반도체를 중심으로 5G와 AI, 전장, 바이오 등을 미래성장동력을 집중 육성하기 위한 '골든타임'으로 여겨진다. 이미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선 2030년까지 131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실제 투자가 본격화되는 시점인 동시에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선점하는 5G, AI, 전장 등에서 대규모 인수·합병(M&A)이나 지분투자가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메모리 반도체 업황 회복으로 미래사업에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갈 실탄을 마련하는데도 무리가 없었다. 올해도 메모리 시장 활황으로 삼성이 안정적으로 실적을 내는 동시에 미래사업에 필요한 기반을 닦을 수 있는 데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었다.
  • ▲ 법정에 도착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상윤 기자
    ▲ 법정에 도착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상윤 기자
    문제는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미래사업을 추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삼성이 지난해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전문경영인 체제가 완전히 자리잡은 모습을 보여준 것과는 별개로 미래사업을 육성하는데는 이 부회장과 같은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존재는 사실상 절대적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3년 전 경영 공백의 시기에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던 신성장동력 분야에 보다 힘을 실어주고자 반도체, AI, 5G, 바이오 등을 4대 성장사업으로 점 찍고 해당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육성책을 밝혔다. 시스템반도체 2030 비전도 이 부회장의 주도로 전격 발표되며 본격적으로 힘을 받았다.

    이처럼 적게는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투자와 지속적인 인재 육성 전략에는 총수의 뚝심과 의지가 필수적이라는게 재계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이 부회장의 두번째 구속이 삼성에게는 더욱 뼈 아플 수 밖에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삼성이 사법 리스크를 겪어온 지난 4년 동안 미래 먹거리를 위한 빅 딜 시장에 제대로 나서지 못했는데 올해와 내년에도 이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 2017년 삼성이 미래성장동력으로 낙점한 차량용 전장분야에서 '하만'을 약 9조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인수한 이후 삼성은 글로벌 대규모 M&A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만과 같은 대규모 M&A건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총수의 추진력과 의지다. 특히 이 부회장은 선친인 고(故) 이건희 회장과 더불어 미래 전략 육성 사업을 앞서 내다보고 과감하게 투자를 진행하는 경영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다. 삼성이 그동안 글로벌 IT기업들에 뒤지지 않고 M&A 시장에서 활발히 투자를 이어온 것도 이 부회장의 빠른 판단력과 의사결정능력이 반영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선고 이후 취재진에 답변하는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 ⓒ정상윤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선고 이후 취재진에 답변하는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 ⓒ정상윤 기자
    게다가 이 부회장이 국내 뿐만 아니라 글로벌 유수의 정재계 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맡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아쉬움이 크다. 이 부회장은 학업을 마친 일본 뿐만 아니라 향후 IT산업에서 큰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인도와 베트남 등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로, 삼성이 글로벌 경쟁사들에 앞서 해당 시장을 공략하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돼왔다.

    이런 관점에서 외신들도 이 부회장의 이번 구속을 앞다퉈 보도하며 글로벌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부재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삼성과 교류하고 협력하는 기업들의 우려감이 커지고 있고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결정되는 향후 신시장 개척을 위한 투자 결정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삼성의 미래 방향성을 근거리에서 참고했던 국내 기업들도 이 부회장의 법정 구속기간 동안 국내 투자와 경제, 산업계가 침체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와 산업계 흐름 등을 선제적으로 파악하는데 그간 삼성이 가장 앞섰던 것이 사실이고 국내 기업들이 삼성의 미래 전망에 상당부분 동의하고 영향을 받았다"면서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으로 국내 기업들의 미래가 같이 저당잡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