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포퓰리즘②]선거철마다 선심성 정치금융 몸살금융사 돈으로 표심 얻을 속셈…금융 질서 대혼란대출 원금감면 도마 위…은행 부실 우려 '정권말 수난' 되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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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권에 인기 영합적인 일회성 정책들이 판을 치면서 은행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금융사 돈으로 표심을 사려는 정치금융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의 과도한 금융 개입이 시장질서를 흔들고 자율성에 역기능을 초래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18일 21대 국회의 은행법(은행법, 한국은행법, 상호저축은행법, 한국수출입은행법, 한국산업은행법, 중소기업은행법) 관련 개정법률안을 분석한 결과 현재까지 총 52건이 발의됐다. 이중 더불어민주당 법안이 36개로 71%를 차지했으며, 국민의힘(14개), 정의당(1개), 정부(1개) 순이다. 

    민주당의 주요법안을 살펴보면 △소득이 감소한 사업자에 대한 은행 이자상환유예, 대출원금감면, 상환기간 연장 △공적금융의 해외석탄발전사업 참여 금지 △금융공기업 지방이전 △한국은행법에 고용안정 추가 △상가건물 담보대출 취급 기준 개선, 국내서 근로소득 없는 외국인은 국내은행에서 상가건물 및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 제한 등이다. 

    국민의힘의 주요법안은 △한국은행이 정부로부터 국채를 직접 인수할 수 없도록 규정 △기업은행의 대구광역시 이전 △한국은행의 설립 목적에 ‘고용안정’ 추가 △금융통화위원에 대해 한국은행 총재를 포함한 나머지 6인에 대해서도 국회의 인사청문을 거치도록 함 △불건전영업행위나 위반 행위로 행정처분 대상이 된 경우 영업의 전부정지 명령 또는 인가 취소 가능 등이다. 

    이 중에서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지난 2월 대표 발의한 '은행법 개정안'과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 개정안'은 대표적인 포퓰리즘성 정책으로 꼽힌다. 이 법은 재난 시 정부 방역조치로 소득이 급감한 이들에게 대출 원금을 감면 해준다는 게 핵심이다.

    은행법 개정안에는 '재난으로 인해 영업 제한 또는 영업장 폐쇄 명령을 받거나 경제 여건 악화로 소득이 현격히 감소한 사업자 또는 그 사업자의 임대인은 대통령령에 따라 은행에 대출원금 감면, 상환기간 연장, 이자 상환 유예 등을 신청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위반한 은행에는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금소법 개정안도 동일한 상황에서 금융위원회가 '금융상품판매업자'에게 '금융소비자' 보호방안을 마련하도록 명할 수 있게 했다. 

    즉 이자상환 유예 등의 적용 대상이 은행 외 다른 금융기관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무위원회와 금융위원회, 은행연합회에서는 은행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등 금융시장 전반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정무위 검토보고서에서는 “은행의 대출원금 감면 등을 의무화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 은행의 건전성 저해, 다른 금융소비자로의 비용 전가 등 비판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은행 빚 탕감법은 금융시스템을 무너뜨리는 법안으로 땜질식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주호 경희대 경영대학 교수는 “정치권의 과도한 금융개입은 시장원리에 맞지 않고, 이같은 효과가 얼마나 지속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는 임시처방에 불과해 보인다”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권의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대출’ 법안도 논란거리다. 

    여당을 중심으로 발의가 검토되고 있는 기본대출은 소득ㆍ자산ㆍ신용과 관계없이 국민 누구나 1~2%대의 낮은 이자로 최대 100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게 해주고 이를 정부가 보증하자는 구상이다. 

    신용등급이 높은 자산가와 고소득자들이 누리는 저이율 장기대출을 금융소외계층에도 제공하자는 취지다.

    은행권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은행들은 신용도에 맞춰 한도와 이자를 산정하는 게 금융의 기본원리이고, 기본대출은 이런 원칙에 반하는 상품이라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경기신보가 보증을 선다해도 이자를 연납·후납으로 낸다고 하면, 은행은 이자를 받을 때까지 차주를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이 아무것도 없고 만기 때 대출을 회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은행이 위험을 떠안는 구조로 은행 건전성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최고금리 인하, 이익공유제 등도 전형적인 포퓰리즘 금융 정책으로 꼽힌다. 

    금융위원회가 올 하반기부터 시행하는 민간 금융회사가 보유한 장기소액연체채권에 대한 소각 조치도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거리다. 

    전날 금융위 발표에 따르면 원금 1000만원 이하 생계형 소액채무를 10년 이상 상환 완료하지 못한 장기소액연체자는 40만3000명으로, 이중 상환능력이 없다고 판단된 33만5000명(1조6000억원)에 대한 추심이 중단됐다. 

    이중 시효완성 채권 등 17만3000명(9000억원)에 대한 장기소액연체채권이 소각이 완료됐고, 나머지 16만2000명(7000억원) 중 11만8000명(6000억원)의 채권도 이번에 소각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도저히 갚을 능력이 없는 이들이 정상적으로 금융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준다는 측면은 이해하지만 국민들의 수용 가능성과 사회적 비용‧편익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빚 상환능력이 없어 신용불량자가 되고 이로 인해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운 이들에 대해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은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보며,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다만 이 같은 악성부채에 대해서는 사회적 비용과 편익 측면에서 충분한 토론을 거쳐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