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산업군 파고에아직은 대기업 중심… 中企에겐 가혹한 과제높은 목표치 부담… 지난해 감축목표 달성 실패
  •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탄소중립 과제에 전세계 산업군이 파고에 휩싸였다. 2050년까지 배출하는 탄소만큼 탄소를 없애는 이 시나리오는 화석연료를 태워 얻은 에너지로 제품을 생산하는 모든 산업에 적용된다. 탄소중립을 주도하는 121개 국가가 가입한 UN 기후정상회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피할 수 없고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는 얘기다.

    전통 제조업이 중심인 한국의 산업구조는 탄소중립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무역 의존도가 높은 산업구조를 고려할 때 새로운 국제질서를 거부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1990년대부터 탄소배출을 줄이는데 투자해온 미국, EU 등 선진국에 비해 인프라도 부족하다. 선진국이 50~60년간 준비한 과정을 30년만에 달성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050 탄소중립 비전 선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플랜짜기에 나섰다. 에너지·산업·수송·건물 등 각 분야별 감축 의무량을 제시했다. 석탄발전 시설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석유·화학·철강·시멘트 등 주요 탄소배출 제조업에 감축량을 매기기로 했다. 의무 감축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탄소배출권을 사도록 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감축 시나리오는 이달 말 공개될 전망이다.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컨트롤 타워다. 도출된 시나리오는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올해 말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30년 국가계획을 불과 1년만에 마무리 짓는 빠른 의사결정은 그만큼 시간이 없다는 방증이다. 결정된 사안은 내년부터 정책과 예산편성에 반영된다.
  • ▲ 문 대통령의 대한민국 탄소중립선언 '더 늦기 전에 2050' 연설 모습. 청와대는 흑백영상이 컬러 대비 1/4 수준의 데이터를 소모한다고 설명했다.ⓒ청와대
    ▲ 문 대통령의 대한민국 탄소중립선언 '더 늦기 전에 2050' 연설 모습. 청와대는 흑백영상이 컬러 대비 1/4 수준의 데이터를 소모한다고 설명했다.ⓒ청와대
    온실가스 감축은 탄소중립의 핵심 중에 핵심이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300만톤(2019년 기준) 가량이다. 2018년 7억2800만톤으로 정점을 찍은 배출량은 이후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부문별로 살펴보면 산업부문이 37%, 전력생산이 36%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으며 수송 17%, 농축수산 3.4% 순이다.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영역은 -2.6%에 그친다. 정부는 각 부문별로 감축 목표를 제시할 계획이다.

    아직은 대기업 중심, 中企에게는 가혹한 과제

    탄소중립은 단순히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배출하는 탄소만큼 온실가스를 없애면 탄소중립을 이룰 수 있다. 때문에 자본여력이 많고 여러 산업을 거느린 대기업이 주도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8148만톤)하는 포스코는 2050년까지 수소 500만톤 생산을 목표로 탄소중립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내년까지 대기오염물질 감축을 위한 1조원 규모의 투자계획도 준비 중이다. SK그룹은 2050년까지 전세계 모든 사업장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로 했다. LG화학은 중국 공장에서 현지 풍력·태양광 에너지를 쓰기로 했다. GS칼텍스는 스웨덴 에너지 기업으로부터 탄소중립 원유 도입을 추진 중이다.

    경제단체들의 동참도 이어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탄소중립 연구조합 설립을 추진 중이다. 현대차, SK하이닉스, 포스코 등이 참여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탄소중립 산업전환 추진위와 연계해 산업계 공통의 R&D 과제를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유관기관과 전문가 자문을 구해 탄소중립에 가장 효과를 낼 수 있는 기술을 선정해 나간다.

    빠른 속도로 탈탄소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 중소·중견 기업에게는 가혹한 과제다. 대한상의가 온실가스 배출 거래제에 참여 중인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실적으로 탄소중립은 어렵다고 답한 곳이 42.7%나 됐다. 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정유, 철강, 시멘트 등 탄소배출 상위 3개 업종에서 배출하는 탄소를 '0'로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400조원이 필요하다.
  • ▲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환경부
    ▲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환경부
    높은 목표치 부담, 지난해 감축목표 달성 실패

    선진국의 압박에 탄소 감축 목표량은 높게 잡았지만 실제로 달성하지 못하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정부가 6월 말까지 1차 시나리오를 발표하기로 했지만, 아직 소식이 묘연한 것도 목표치 제시에 신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저탄소녹색성장 기본법을 통해 2020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 대비 30%를 감축하기로 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감축 목표를 2030년 온실가스 대비 37% 줄이는 것으로 하향조정했다.

    목표치는 점점 줄어들어 문재인 정부는 2030년까지 2017년 온실가스 배출량의 24.4%를 감축하는 것으로 개정했다. 이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5억4300만톤으로 줄어야 하지만 목표 달성은 못할 것이 확실시 된다.

    지나치게 빠른 감축안은 민생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탄소감축에 대한 자금지출이 커져 제품가격이 오르고 난방, 전기료 등도 동반상승하는 식이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우리 사회는 감축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목표치를 수정하고 법을 바꾸는데만 급급해 왔다"며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지키려면 이행·점검·평가·책임 주체를 명확히 해 각 부처들이 목표를 달성하도록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