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의료기관 136곳 노조원 ‘5만6000명’ 이탈 우려말뿐인 정부의 간호인력 처우개선… 코로나 심각 상황 속 폭발 직전이달 내 노정 교섭 이뤄질지 ‘촉각’… 불발 시 내달 2일 총파업 실시
  • ▲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의료 인력 확충과 근본대책 마련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종현 기자
    ▲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의료 인력 확충과 근본대책 마련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종현 기자
    K방역은 의료인을 포함한 보건의료노동자의 희생을 담보로 한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코로나 상황 1년 7개월간 의료체계가 버텨온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중심축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정부는 말로는 응원했지만 실질적 대책을 꺼내지 않았다. 결국 전향적 협의가 없으면 내달부터 의료현장에서 간호사, 의료기사, 요양보호사 등이 총파업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코로나와 맞물려 의료체계 붕괴는 시간문제다.

    최근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전국 124개 지부 136곳 의료기관에서 중앙노동위원회와 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조정신청서를 냈다. 

    전체 조합원 8만여명 중 약 70%인 5만6000명이 참여했으며, 이달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9월 2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이들이 소속된 의료기관은 국립중앙의료원, 지방의료원 24곳, 적십자병원·서울시 서남병원 등 ‘감염병 전담병원’ 25곳 등이 포함됐다. 이곳은 코로나 위중증 환자 발생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다. 

    여기에 서울아산병원·고대의료원·이화의료원·한양대의료원·아주대의료원 등 민간·사립대병원 29곳, 부산대병원·전남대병원·충남대병원 등 국립대병원 11곳, 특수목적 공공병원인 국립암센터·보훈병원·한국원자력의학원 등 13곳, 녹색병원 등 민간중소병원 19곳이 포함됐다. 

    이 밖에 녹색병원 등 19개 민간중소병원, 정신·재활·요양기관 10곳의 노조 조합원이 총파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교섭 가능한 147개 지부 중 85%가 동시에 조정신청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렇게 많은 지부가 하루 만에 쟁의조정신청서를 접수한 것은 23년의 보건의료노조 역사상 2004년 주5일제 도입 총파업 이후 최대규모로 기록된다. 

    4차 대유행이 꺾이지 않는 심각 상황임을 감안하면 총파업을 강행할 시 국내 의료체계는 사실상 붕괴된다. 지난해 의사 파업 당시에도 병원 진료나 수술 일정 등이 미뤄졌는데, 5만6000명의 간호사 등 보건의료노동자의 공백이 발생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가뜩이나 지금은 코로나19 위중증 환자 발생이 늘어남에 따라 병상 공급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당장 인력 충원이 시급한 과제로 꼽히는데, 근무 중인 인력이 파업에 참여하면 신속한 감염병 대응은 불가능하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코로나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고 작년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간호인력을 충원하고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변화된 건 아무것도 없다”며 실질적인 인력 대책을 촉구했다. 

    이어 “전체 의료기관 중 10%도 안되는 공공병원에서 코로나 환자 80%를 치료하느라 공공병원의 기능과 역할이 무너졌으며, 공공병원을 찾던 취약계층 환자들은 갈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 보건의료노조의 강력 요구와 원론적 복지부 답변 

    보건의료노조는 인력확충·처우개선을 위해 ▲적정인력기준 마련,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확대 ▲예측 가능한 교대근무제 시행 및 교육전담간호사 지원제 확대 ▲5대 불법의료(대리처방, 동의서, 처치·시술, 수술, 조제) 근절 ▲비정규직 고용 제한을 위한 평가기준 강화 ▲의사인력 확충과 공공의대 설립 등을 목표로 삼았다.  

    또 코로나 장기화에 대비 방역대책 전환을 위해 ▲감염병전문병원 조속한 설립, 코로나19 치료병원 인력기준 마련, 생명안전수당 제도화 ▲전국 70개 중진료권마다 1개씩 공공의료 확충 ▲공공병원 시설·장비·인력 인프라 구축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요청 사항은 많지만 얼마나 받아들여질지가 관건이다. 정부도 관련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원론적 답변에 머물렀다. 
     
    전날 박향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방역총괄반장은 브리핑을 통해 “코로나 대유행으로 간호사나 보건의료인력이 굉장히 필요한 상태라는 걸 정부는 알고 있다”며 “다른 일반 진료와 상황이 다른 만큼 코로나 진료 인력 기준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조와 공공의료 확충 부분에 관해 협상하고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코로나 상황 속 인력 수급을 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있다”며 “코로나 환자 치료나 의료기관 이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파업이 진행되지 않게끔 노조와 최선을 다해 협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건의료노조는 복지부와 노정교섭을 진행하면서도 대정부 투쟁 수위를 높이겠다는 목표다. 이날 보건의료노조 공공병원지부와 특수목적공공병원지부는 기획재정부 앞에서 결의대회를 진행한 후 농성에 돌입한다. 

    이후 ▲전 지부 동시 조합원과 함께 하는 출근선전전(8월 25일, 9월 1일) ▲인력확충·공공의료 확충 투쟁구호 마스크 쓰고 근무하기 ▲조합원들의 요구를 담은 소자보 붙이기 ▲세종시 정부청사 농성과 1인 시위 ▲8월 18일 ~ 8월 26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보건의료노조는 “정부와 쟁의 조정기간 내에 합의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지만 만약 타결되지 않으면 9월 1일 파업전야제, 9월 2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