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건 비둘기파' 분류되나… 자민당 정책노선 변화 기대 난망'위안부 합의' 당사자… 선거기간 "문제해결 책임 韓에 있다"총재 선거서 '유권자 선호 1위' 고노 꺾어… 내달 4일 취임
  • ▲ 집권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기시다 후미오 차기 총리.ⓒ연합뉴스
    ▲ 집권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기시다 후미오 차기 총리.ⓒ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64) 전 일본 외무상이 차기 일본 총리로 선출됐다. 전문가들은 기시다 총리 시대가 열려도 당분간 얼어붙은 한일 관계가 급진전을 보이지는 않을 거라는 견해가 많다.

    29일 열린 일본 집권 자민당의 차기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 후보는 1차 투표에서 예상을 뒤엎고 고노 다로(河野太郞·58) 행정개혁상을 단 1표 차로 제친 뒤 결선 투표에서 승기를 잡았다.

    1차 투표는 중·참의원 의장을 제외한 소속 국회의원(382명)과 같은 수의 당원(당비 납부 일본 국적자)·당우(자민당 후원 정치단체 회원) 표를 더해 자웅을 겨룬다. 총 764표 중 과반(383표 이상)을 얻는 후보가 당선한다. 투표 결과 기시다 후보는 256표(국회의원 146·당원 110)를 얻어 선두로 나섰다. 애초 1위를 할 것으로 점쳐졌던 고노 후보는 255표(국회의원 86·당원 169)를 얻어 1표 차로 2위에 그쳤다.

    과반 득표자가 없어 이어진 결선 투표에서 기시다 후보는 257표를 획득해 170표를 얻는 데 그친 고노 후보를 87표 차이로 따돌리며 당선됐다. 총 429표가 걸린 결선에서는 국회의원(382표)과 전국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 지부(지구당)가 1표씩 행사한다. 국회의원 표 비중이 크다보니 국회의원 지지기반이 넓은 기시다 후보의 당선이 유력시됐던 상황이다.

    이번 선거에는 고노 행정개혁상, 기시다 전 당 정무조사회장,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60) 전 총무상, 노다 세이코(野田聖子·61) 당 간사장 대행 등 4명이 출사표를 던져 전날까지 12일간 레이스를 펼쳤다.

    기시다 신임 총재는 30일 자민당 당수로 취임한 뒤 다음 달 4일 소집되는 임시 국회에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의 후임 총리로 선출된다. 자민당이 중의원에서는 단독 과반을 차지하고 있고, 참의원에서는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손잡고 과반을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 ▲ 2015년 12월28일 윤병세 당시 한국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당시 일본 외무상이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협상 결과를 발표한 후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 2015년 12월28일 윤병세 당시 한국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당시 일본 외무상이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협상 결과를 발표한 후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동안 한일관계 개선에 소극적이었던 스가 총리가 물러나지만,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일 관계는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기시다 총재는 보수 성향의 자민당 내에서 소프트파워를 활용한 외교 정책을 옹호하는 등 '온건 비둘기파'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번 선거 과정에서 기시다는 한일 갈등 현안에 대해 기존 스가 내각의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견해를 드러냈다. 기시다는 지난 18일 일본기자클럽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를 거론하며 "일본 측은 합의 내용을 모두 이행했다. 공은 한국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국 간 최대 갈등 현안으로 꼽히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문제 해결의 책임이 한국에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기시다는 앞서 아베 내각에서 4년8개월간 외무상(장관)을 지내며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기시다는 이에 앞선 13일 열린 일본외국특파원협회(FCCJ) 기자회견에서도 일본의 태평양전쟁 중 주변국 가해행위와 관련해 사과를 계속하는 것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다만 기시다는 한국과의 안보 협력 중요성을 강조해 온 인물이기도 하다. 일본이 가장 의식하는 미국이 대북 정책에서 동맹국 간 협력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관계 회복을 꾀하려는 대화의 장이 열릴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 ▲ 반도체.ⓒ연합뉴스
    ▲ 반도체.ⓒ연합뉴스
    경제분야에선 양국 간 수출 규제 문제가 단연 관심사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중 한일관계를 적어도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이전 상태로 돌려놓겠다는 생각이지만,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등 국내외 여건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경제분야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수출 규제 완화 문제인데 상황이 간단하지만은 않다"면서 "기시다가 비둘기파로 분류된다지만, 일본도 정치가 우선으로 경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위안부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한일 경제관계가 바뀔 거라고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어 "우리도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이어서 경제 관계 회복을 위한 정책 수정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며 "일본 정부도 (한국)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새로운 관계를 설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부연했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 선임연구위원도 "경제적으로는 수출 규제, 미국 중심의 글로벌 가치사슬(GVC),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등의 현안들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현 상황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번에 기시다가 선택된 배경에는 기시다의 인기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자민당 내 올드보이(OB)들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보여진다"고 분석했다. 자민당 장기 집권 체제에서 당 내 수장 교체만으로 정책 노선에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오히려 고노가 차기 총리가 됐다면 한일 관계 변화가 있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기시다보다 자민당 내에서 '이단아'라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제 목소리를 내온 고노가 총리가 되는 시나리오가 한일 관계 개선 가능성은 더 컸다는 견해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한일 경제문제를 푸는 방법은 정치적으로 해법을 찾는 게 현재로선 유일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