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째 내려온 '무자원 산유국 프로젝트'… 자원부국 실천故 최종현 회장, 예멘 광구 개발 첫 결실… 우리나라 첫 성공사례 최태원 회장, MB정부 자원외교 피해 불구 석유개발 외길사업 경험 역량 결집 친환경 모델로 한 단계 도약 추진
  • ▲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SK
    ▲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SK
    "나는 선경을 국제적 차원의 기업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두 가지 명제를 분명히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석유에서 섬유에 이르는 산업의 완전 계열화를 확립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섬유산업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석유화학공업에의 진출이 불가피한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석유정제사업까지도 성취시켜야 하겠습니다. 둘째 명제는 기업 확장과 더불어 경영능력을 배양시키는 것입니다."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 지난 1975년 발표한 신년사 내용 중 한 부분이다. 선경(現 SK)을 세계 일류 에너지∙화학 회사로 키우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천명한 것이다. 실제로 이 신년사는 SK그룹의 '제2창업선언'으로 불린다.

    최 선대회장은 형인 최종건 창업회장에 이어 2대 회장에 올랐지만 주변 여건은 녹록치 않았다. 제1차 석유파동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원유 가격은 4배로 치솟았고,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한국의 정유 3사에 원유 공급을 줄이겠다고 통보하면서 한국 경제에도 크게 영향이 미쳤다. 

    최 선대회장은 석유를 수입하면서 중동거래선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쌓아오며 최악의 위기는 넘겼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어려움은 지속됐다. 최 선대회장이 특단의 대책을 담은 메시지를 제시한 시점도 이때다.  

    이에 최 선대회장은 1980년 유공 인수로 '석유에서 섬유까지'라는 수직계열화의 '실질적' 완성을 이뤄냈다. 이는 오랜 숙원을 달성한 것은 물론 재계 5위까지 끌어올린 신의 한수로 평가받는다.  

    최 선대회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해외유전으로 눈을 돌렸다. '무자원 산유국 프로젝트'를 내세우며 해외 에너지원 개발 의지를 드러냈다. '무자원 산유국 프로젝트'란 유전이 없는 우리나라도 산유국이 될 수 있다는 꿈을 담은 말이다. 두 차례의 석유파동으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직접 경험한 만큼 자체 자원을 확보하지 않으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내부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해외유전개발사업은 성공가능성은 매우 낮은 반면 투자비용이 커서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최 선대회장은 '자원기획실'을 신설하며 이 프로젝트에 대한 남다른 집념을 드러냈다. 

    당시 최 회장은 "회사는 이익의 15% 이상을 매년 석유개발 사업에 투자해야 할 것이며 실패하더라도 참여한 직원을 문책해서는 안된다"고 주문했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지난 1984년 예멘의 마리브 광구에서 처음으로 유전개발에 성공한데 이어 1987년에는 처음으로 원유를 선적하며 '산유국의 꿈'을 실현시켰다. 최 선대회장이 단순히 돈 버는 사업이 아닌 대한민국이 앞으로 먹고 살 산업을 발굴하고 키우는데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 선대회장의 이같은 노력은 아들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태원 회장 역시 자원 확보를 국가 차원의 문제로 인식하고 석유개발 사업을 주요 과제로 삼는 등 더욱 힘을 쏟고 있다. SK그룹에서 자원개발 사업을 영위하는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9월말 기준 7개국 10개 광구 및 4개 LNG 프로젝트를 통해 전 세계에서 석유개발사업을 진행 중이다. 2020년 매장량 기준 총 3억8000만 배럴의 원유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SK이노는 이명박 정부 당시 ‘자원외교’의 피해를 보기도 했다. 지난 2008년 한국석유공사가 카스피해 잠빌 광구에 10억배럴의 매장량이 있다며 진출한 사업에 참여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것이다. 

    석유공사는 잠빌 광구에 10억배럴의 원유가 있다고 추정했지만, 시추 결과 매장량은 1억배럴에 그쳐 지분을 매각했다. 이로 인해 SK이노베이션이 잠빌 광구 사업 참여로 입은 손실은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이노베이션은 뚝심 투자를 통해 잇따라 성과를 거두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14년에는 석유개발사업의 허브로 불리는 미국으로 진출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일궈냈으며 2018년에는 남중국해에서 원유 탐사에 성공하며 36년간 석유개발 사업에서 쌓은 노하우가 빛을 발했다. 

    통상적으로 해외 자원개발은 10% 미만에 불과한 낮은 성공률과 장기적인 시간이 소요돼 고위험 사업으로 분류되지만 '무자원 산유국'의 꿈을 현실로 만들겠다는 SK만의 뚝심과 집념이 결실을 맺게 된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SK이노베이션은 2017년 '딥 체인지 2.0'을 통해 석유개발 사업에서 선택과 집중 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잘하고 있는 것을 훨씬 더 잘할 수 있도록 역량을 높이자는 차원이다. 

    이를 위해 석유개발 사업에서 전통자원은 베트남, 중국 중심으로, 비전통자원은 북미에서 균형 잡힌 성장 기회를 모색하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현지에서도 셰일 자원을 생산 중이다.

    이와 함께 SK이노베이션은 자원개발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석유개발 사업을 물적분할해 SK어스온을 출범하고 오랜 기간 축적한 석유개발 사업 경험 및 역량을 활용, 탄소 발생 최소화를 목표로 친환경 비즈니스 모델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석유가 탄소 발생 이슈는 있지만 여전히 중요한 에너지원인 만큼 석유개발 사업을 가장 잘 아는 회사로서 석유 생산 단계에서부터 탄소 발생을 최소화할 뿐 아니라, 석유 정제 및 사용 단계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포집해 다시 지하 깊은 구조에 영구저장하는 그린 사업으로의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통해 성장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