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이후 증시 호황 시기 조급한 투자로 빚더미절박할수록 기본 충실…폭우 뚫고 기업 탐방 "확실해야 투자""시장은 다시 기회 준다…초심 붙잡고 고객과 함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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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윤 기자
    1300만 동학개미 시대다. 코로나19 이후 주식시장에 뛰어든 개미투자자 수는 급증해 지난해 국내 주식 보유자만 456만명이 늘었다. 역대급 활황기에 처음 투자를 시작한 이들에겐 요즘 증시는 낯설다. 모든 종목이 다 오르는 시장을 먼저 만났다보니 요즘처럼 지지부진한 약세장을 견딜 힘이 없어 손절하기 일쑤다. 

    메리츠증권 최연소 지점장인 이희권 메리츠증권 광화문금융센터 2Sub지점장은 실패하고 좌절한 투자자들을 두 팔 벌려 기다리고 있다. 수십억대 핵심 고객도 소중하지만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해도 심리적 문턱으로 지점을 찾지 못한 소액 투자자들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진다. 그 역시 실패를 딛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지점장의 주식 인생을 들여다보면 파란만장하다. 

    주식으로 큰돈을 벌고 싶어 지난 2010년 메리츠증권 대구지점에서 증권맨 인생을 시작했다. 입사 후 시장도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시대로 뜨거워 한 달에 코스피가 100포인트씩 상승하던 호황기였다. 회상해보면 그 좋은 시장에서도 돈을 벌었던 기억이 잘 없었다. 종목과 시장에 대한 제대로 된 공부가 전제되기보단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따른 매매였다. 조급함에 사고팔고를 반복하다보니 군 생활 동안 모아온 시드머니 2000만원이 불어나긴커녕 어느덧 빚 5000만원으로 변해 그를 짓눌렀다. 2014년, 당시 그는 결혼 4년차였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수소문 끝에 회사 내 주식 고수로 정평난 문필복 광화문센터장을 찾았다. 주식을 배우고 싶다고 사정했다. 서울 광화문에 둥지를 튼 2015년은 바이오 섹터가 좋을 때였다. 주말부부로 아내는 대구에, 그는 광화문에서 새로운 호황기를 맞보며 서울에 오길 잘했다 생각했다. 희망도 잠시, 이내 바이오 거품이 빠지면서 다시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전세자금을 빼 1억원을 주식에 넣었는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과 영국 브렉시트 악재가 겹치면서 장이 무너졌고, 빚은 금세 2억원으로 늘었다. 신용정보회사로부터 수도 없이 연락이 오고 독촉장이 쏟아졌다. 대위변제를 요구하는 연락으로 어머니가 처참한 자신의 상황을 알게 됐을 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지옥같은 시간은 2017년까지도 이어졌다. 회생 신청하면 갚아야 할 돈은 줄어들수 있겠지만 다시 재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쓰면 안될 돈을 썼던 거예요.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매일같이 악몽을 꾸고, 정말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죽고싶단 생각도 들었어요. 묵묵히 기다려준 와이프, 부모님께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고요. 주식을 제대로 공부한 적 없이 욕심만 앞섰죠.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돈을 버는걸 보니까 저도 빨리 돈 벌어야 하는데 하면서 더 조급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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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박할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폭우 뚫고 탐방가는 PB

    가장 절망적인 상황이 돼서야 그는 기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주식으로 망했으니, 다시 회생할 길은 주식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사부인 문 센터장의 조언대로 무한대 노력을 했다. 제대로된 주식 투자를 위해 코스피·코스닥에 상장된 회사 중 탐방을 받아주는 회사는 모조리 다 찾아갔다. 탐방을 위해서만 차로 1년에 10만km를 주행할 만큼 구석구석 안 다녀본 곳이 없다. 그때부터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차츰 신용도 회복해갔다. 다시 주식 투자를 시작할 때 그의 시드머니는 고작 200만원, 이젠 빚도 다 갚고 제법 상황도 좋아졌다.

    조급했던 그는 이제 긴 호흡으로 주식하는 법을 배웠다. 그가 험난한 주식시장에서 생존해내는 방법이다. 장기투자의 기본은 회사와 호흡하는 것이며, 탐방은 그 회사와의 호흡이라고 확신한다. 회사 재무제표나 공시·기사에 나온 정보는 이미 주가에 반영된 사실이기에 탐방을 통해 확신할 만한 상장사를 찾아내고, 편입한 업체는 새로운 정보를 업데이트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찾는다. 많이 갈 땐 한 달에 20곳을 찾았다. 전국적으로 폭우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장마철에도 그는 탐방 약속을 미루지 않았다. 시간 효율을 위해 지역을 정해놓고 근방에 위치한 상장사를 하루 한꺼번에 서너군데씩 다녀오기도 했다. 이 지점장이 탐방을 통해 확신을 얻고 투자한 상장사 중엔 주가가 10배 가까이 오른 곳도 적지 않다. 그렇게 그의 책상 서랍 한구석 가득 쌓인 상장사 관계자 명함은 그의 자산이 됐다.

    그가 관리하는 포트폴리오는 대체로 주식으로 짜여져 있다. 이젠 제법 자산 규모가 커지다보니 신탁형자산도 일부 편입하지만 여전히 주식 비중이 높은 편이다. 관리하는 고객 100여명의 포트폴리오는 대부분 비슷하다. 직접 회사가 위기인지, 성장성 있는지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잘 알아야만 편입하고 이를 기반으로 고객들을 설득하기 때문이다. 그가 5년째 주주총회에 주주로 참석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주총장을 다녀오면 참석 사진과 회사 상황을 고객에게 공유, 재확신하는 과정에도 공을 들이며 수익률 성과로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발로 뛰는 데엔 그의 삶 자체에 대한 간절함만큼 고객들에 대한 진심이 엿보인다. 고객 중엔 이 지점장이 부침을 겪던 시기부터 꾸준히 그를 믿고 따라주는 이들이 있다. 그가 신입사원 때 600만원을 입금했던 고객의 자산은 어느덧 10억원 규모로 늘었다. 손실을 끼치던 시기도 참고 견뎌준 감사한 고객들이다. 이 지점장을 믿고 따라와준 고객 돈을 잃었을 때 자신의 자산이 사라지는 것보다 더 가슴 아팠다고 한다. 결자해지, 고객들을 바라보면서 버티고 또 이뤄냈다. 이 지점장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본 산증인 역시 그들이다. 그런 고객들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가 몰랐던, 실적이 괜찮은 회사를 고객을 통해 알게 되면서 탐방이 이뤄졌고 편입 3개월 만에 4배 가까운 수익률을 거뒀다.

    "주변에서 '주식의 신이 있다면, 너가 그렇게 노력한 거 인정해줄 거다'라고 말해주더라고요(웃음). 단타를 쳐서 20~30% 수익을 얻으면 기분은 좋지만 그걸로 인생이 바뀌거나 위기가 없어지 않는다는 걸 고통의 시간을 겪으며 배웠어요. 저는 생존하기 위해, 또 고객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주식을 하고 발로 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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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 희귀해진 장, 초심 잃지 않기…"긴 호흡 함께 갑시다"

    유동성 파티가 끝난 약세장에 진입했지만 이 지점장은 전기차, 메타버스, 블록체인, NFT와 같은 성장주 장기 투자에 여전히 기회가 있다고 본다. 당장의 변동성은 불가피하지만 장기적으로 인내하면 먹을 수 있는 열매가 크다는 관점에서다. 이 지점장은 관련 산업에서 좋은 종목을 발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성장이 희귀해진 시대이기에 성장이 보이는 섹터에 대해 과거보다 더 큰 프리미엄을 줍니다. 이제야 경쟁이 시작된 개화기 산업들은 여전히 시장에서도 개념 정립을 못하고, 승자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그게 다 완벽해진 후엔 사실 손에 쥘 수 있는 열매가 작아요."

    이 지점장은 최근 뉴스 소식을 통해서나 주변 지인들로부터 연락을 받으면 과거 자신과 비슷한 유형의 사례를 많이 접하고 있다. 좋은 장만 접하다가 무너져내리는 계좌 상황에 조급해하고, 한없이 절망해있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의 마음 역시 간절해진다고 한다. 이 지점장은 그들을 향해 '시장은 결국 돌고돌아 준비된 이에게 분명 다시 기회를 준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호황일 때 투자를 시작한 사람들이 저와 같은 실수를 하는 게 보이죠. 제가 어떻게 하라고 정답은 못 줘도 포기하지 않고 간절히 노력하고 생존만 하면 그 기회는 돌아온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가끔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혼자 고민하지 말고, 함께 가면 됩니다. 생존해 있지 않으면 그 기회를 잡을 수 없어요."

    이 지점장은 과거의 실패를 잊지 않기 위해 여전히 신용사로부터 받은 독촉장을 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모아놨다. 만족을 잃고 초심이 흔들릴 때마다 꺼내어 보곤 한다. 그사이 지점장에 올랐고, 높은 수익률도 얻었다. 삶의 많은 변화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평정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장이 흔들려 조급함이 그의 마음을 파고들것 같은 날이면 불자인 이 지점장은 회사 근처 조계사에 가 하염 없이 걸으며 산란함을 다스리곤 한다.

    이 지점장의 꿈은 20년 뒤에도 프라이빗뱅커(PB)로 일하는 것이다. 증권업계 사람들과 또 고객들과 같이 호흡하고 성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절벽 끝에 있던 과거 자신과 같은 누군가의 인생을 발로 뛰는 PB로서 바꿔내고 싶다고 말할 때 그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국내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이 안좋은 게 사실이죠. 제가 주식쟁이로 있는 동안 좋은 기업에 대한 좋은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게 열심히 역할을 하고 싶어요. 고객들과 함께 단단해지면서 오래오래 다 같이 성장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