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발주처 공사비 미지급"…합병 사전작업說엔 "시기 겹쳐"공사미수금 8963억원 달해…분쟁해결 절차로 미수금 환수 계획
  • ▲ 비스마야 신도시 전경.ⓒ연합뉴스
    ▲ 비스마야 신도시 전경.ⓒ연합뉴스
    한화건설이 14조원 규모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개발사업(BNCP)을 전면 백지화함에 따라 해외건설 시장에 적잖은 충격이 예상된다. 

    한화건설은 발주처인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NIC)의 지속적인 공사대금 미지급을 계약해지 사유로 들었지만, 반대로 현지에서는 책임을 한화건설로 돌리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화건설과 NIC가 비스마야 신도시 개발사업 백지화를 두고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건설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이라크를 비롯해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지역에서 대규모 사업을 추진 중인 건설사들은 이번 사태의 불똥이 튀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한화건설은 지난 7일 '비스마야 신도시 및 사회기반시설 공사' 발주처인 이라크 NIC에 공사 계약해지를 통지했다. 회사 측은 공시를 통해 "NIC가 비스마야 공사의 공사대금을 늦게 지급하거나 지급하지 않는 등 계약위반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NIC와 이라크 현지 언론은 계약해지의 책임을 한화건설로 돌리고 있다. NIC는 계약해지가 공시된 직후인 지난 9일(현지시간) "비스마야 신도시 개발사업의 실패는 이라크 정부의 대금 지급 지연이 아닌 한화건설의 책임"이라며 맞대응에 나섰다.

    NIC와 현지 기관지, 알릭티사드뉴스(Aliqtisad News) 등은 정부가 계약서에 명시된 금액을 모두 지급했지만 한화건설이 공사를 예정대로 진행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NIC와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라크 정부는 프로젝트 전체 비용의 25%를 지원하고 나머지 75%는 한화가 지원하도록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 

    이후 정부는 25%에 해당하는 20억 달러를 모두 지급했지만 한화건설이 예정된 기간에 공사를 완료하지 못해 프로젝트가 흔들리고 있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한화건설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비스야마 프로젝트의 공정률은 주택사업이 38%, 인프라 조성사업이 26%다.

    이라크 측 주장에 대해 한화건설 관계자는 "어디까지나 NIC 측의 입장"이라며 "이제 막 계약해지 통보가 간 상황으로 현 시점에서 회사 차원의 공식 입장을 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개발사업은 2027년 말까지 수도 바그다드 남동쪽 10㎞ 부지에 주택 10만 가구와 교육시설, 도로 등 각종 사회기반시설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총 공사비 규모는 약 14조5000억원(101억 달러)에 달한다. 

    한화건설은 2012년 비스마야 신도시 주택사업을 수주한 이후 단숨에 해외건설 강자로 부상했다. 수주 다음해인 2013년 시공능력평가에서 10위에 오르며 처음 10위권 진입에 성공했으며, 2014년에는 시공능력평가 9위로 한 단계 상승하며 '중동 붐' 수혜를 톡톡히 누렸다. 2015년에는 비스야마 사회기반시설사업까지 따냈다.

    김승연 그룹 회장도 수주 후 관련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건설현장을 방문하는 등 당시 사업을 주도했던 최광호 전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2014년 준동한 수니파 극단주의 조직인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 상당 부분을 점령하면서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내전이 격화되자 사업은 사실상 '올스톱' 됐고, 2017년에야 전쟁이 종결됐지만 2020년 다시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며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잇따른 반정부 시위와 수니파·시아파 간 종교 갈등으로 현지 정세까지 불안해지면서 발주처인 이라크 정부는 제 때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한화건설이 이라크 정부에게 받지 못한 공사미수금은 비스야마 주택사업과 인프라 조성사업을 합해 8963억원(6억2900만달러)에 달한다. 사실상 회수 불가능한 금액으로 분류되는 대손충당금은 각각 256억1200만원, 63억7300만원으로 책정됐다. 

    한화건설이 9000억에 달하는 미수금을 포기하면서까지 역점 사업을 포기한 것은 더 큰 리스크 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회사 관계자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25%가량의 선수금을 받았는데, 이 선수금 잔액과 미수금이 비슷한 수준이 됨에 따라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선제 대응한 것"이라고 밝혔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이라크 반정부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에 난입하고 쿠르드족, 이란 등과의 갈등이 깊어지는 등 현지 정세가 더욱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높다"며 "공사 미수금이 더 불어나기 전에 손실을 떠안고 선제적으로 ‘손절’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화건설은 비스마야 사업을 통해 이라크 정부로부터 25%가량의 선수금과 기성금(공사를 수행한 만큼 받는 대금)을 합해 6조2000억원(43억2000만 달러)를 받았다. 여기에 분쟁해결 절차 등을 거쳐 9000여억원의 미수금을 환수할 계획이다. 

    이 계획이 현실화되면 비스마야 사업으로 인한 손실을 200억~300억원대로 줄일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계산이다.

    한화건설은 언론에서 제기된 '합병 전 사전작업' 주장에는 시기가 겹쳤을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NIC는 지난 6일 한화와 한화건설 간 합병에 대해 부동의 의사를 전달했고, 7일 한화는 NIC에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회사 관계자는 "시기가 맞아 떨어진 것"이라며 "현금 흐름상 상계 처리를 통해 손실이 없는 시점이 도래해 철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계약해지 통보의 효력은 3주 후에 발생하는 만큼 협상 여부에 따라 공사 재개 가능성은 아직 열려 있다. 회사 관계자는 "이라크 정부 입장에 따라 재개 가능성은 아직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