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선 넘은 금융상술수수료 안내려면 신용등급 떨어뜨려야금리정점에 이제서야 고정금리 만지작은행만 못한 특례보금자리… 두번 울린다
  • 띵동! 휴대전화 알람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 기상알람은 6시반인데 누가 이른 시간에 문자라도 보냈나 전화기를 들여다 봤다. 은행이었다. 대출이자 인출 메시지였다. 졸린 눈에도 씁쓸한 기분이 스쳤다. "영업시간도 9시반으로 미뤘으면서 이자는 칼같이 받네."

    그나저나 걱정이다. 대출이자가 장난이 아니다. 2년 전 받을때 금리는 2.86%였는데 6개월마다 1%p씩 오르더니 5.94%까지 올랐다. 월 60만원 내던 이자가 125만원이 됐다. 작년 월급이 10만원쯤 올랐는데, 건보료와 국민연금 등도 올라 실수령액은 달라진게 없다. 앞이 캄캄해졌다.

    그래도 작년 회사 실적은 좋았나 보다. 상여금 천만원 나온단다.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이참에 대출 좀 갚자." 대출계좌를 눌러 중도상환 창을 열었다. 천만원 갚는데 상환수수료가 3만7000원이다. "아이고, 다 돈이네." 며칠 전 은행들이 중도상환 수수료를 면제한다는 기사가 생각나서 찾아봤다. 말미에 신용하위 30%만 대상이란다. 헛웃음이 났다. 대출 갚고 싶으면 신용등급을 떨어뜨리라니.

    설상가상 석달 뒤면 전세 만기다. 대출연장 하려니 그것도 마음 같지 않다. 깡통전세가 넘친다는 기사가 연일 쏟아진다. 100만원 남짓한 주택보증공사 보증료도 부담이다. "어디 이자 싼데 없나…" 출근길에 플랫폼앱을 열어 전세대출 상품을 검색한다. 여기저기 찾아봐도 4%대 금리는 잘 안보인다. 솔깃한 금리를 클릭하면 이것저것 요구하는 우대금리가 너무 까다롭다. "이상하다. 분명히 며칠 전 전세대출 금리 내렸다는 기사를 봤는데…"
  • ▲ ⓒ뉴데일리DB
    ▲ ⓒ뉴데일리DB
    찾았다. 카드 안써도, 적금 안들어도, 월급통장 안바꿔도 연 4.52%란다. 그것도 4대 시중은행 중 한 곳이다. 한달 이자 25만원쯤 줄어들 것 같다. 끊었던 큰 아이 학원 다시 보낼 생각에 신나서 살펴봤더니 뭔가 이상했다. "아. 고정금리네. 이제 슬슬 금리 내린다던데…" 당장은 조금 싸지만 2년 꼬박 100만원 가까운 이자를 낸다는 말에 갑자기 무서워졌다. "하여간 은행들 조삼모사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아내가 이번에 집을 사는게 어떠냐고 한다. "그래, 요즘 집값 많이 내렸다니까…" 정부에서 4%대 특례보금자리를 내놨단다. 그럼 그렇지. 30년 만기에 연 4.95% 금리다. 4990원 쿠팡 멤버십 요금이 생각났다. 정부 정책에도 상술이 난무하는 것 같아 기분이 복잡해졌다.

    "그래도 우대금리 좀 받으면 낫지 않을까." 청년이고 신혼이긴 한데 맞벌이라 소득기준을 벗어난다. 혼자 벌어서 지금 같은 시기에 집 살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미분양 아파트 사면 0.2%p 깎아준단다. "폭탄 처리비용인가? 우롱도 정도껏 해야…"

    서울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김상훈(34)씨 얘기다. 유례없는 금리인상에 서민들만 죽어난다. 정부는 대책마련에 힘쓴다지만, 체감되는게 없다. 안심전환대출, 소상공인 대환대출, 새출발기금 등 정부가 마련한 서민금융정책이 줄줄이 흥행 참패했다. 대부분 목표액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시중은행 금리만 못한 특례보금자리도 같은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은행들은 역대 최대 실적으로 배신감을 안겼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 이자수익 추정치는 66조3000억원이다. 재작년 50조7000억원 보다 15조원 이상 늘었다. '이자장사 말라'는 금감원장의 말은 공허했고, 400% 성과급으로 답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11월 금리인상을 발표하는 자리에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가 적힌 넥타이를 매고 나타났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시는 님이란 글귀로 이자고통을 위로했다. "물가가 빨리 안정돼 금리를 안정시키고 싶다"는 바람도 담아냈다.

    국민들은 알고 있다. 지금은 고통을 감내해야 할 시기라는 것을. 그래도 금융당국의 성의없는 정책과 은행들의 조삼모사는 한참 불편하다. 영혼 없는 격려보다 진심 담긴 위로를 건네는 따뜻한 금융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