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실적발표서 애리조나 신공장 가동 시점 '연기'마크 리우 회장 "첨단장비 숙련 인력 부족"… 美 현지 인력 활용 난항테일러 신공장 짓는 삼성전자도 마찬가지… 韓 파견 조달 뿐 방법 없어다운턴 '적자만 10조대' 불구 '선투자' 필수… 호황기 '인력 쟁탈전' 불가피
  • ▲ TSMC 미국 애리조나 공장 건설 전경 ⓒTSMC
    ▲ TSMC 미국 애리조나 공장 건설 전경 ⓒTSMC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가 인력난으로 미국에서의 반도체 생산이 지연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메이드인(Made in) USA' 반도체 계획에도 비상이 걸렸다.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신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도 TSMC와 비슷한 상황이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어 한국에서 파견하는 인력 규모를 키울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미 수조 원대 적자를 낸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 인력 확보 부담까지 더해졌는데 여기에 호황기가 되면 본격적인 반도체 인재 쟁탈전까지 예고된다.

    ◇ "숙련 인력 부족"...美 신공장 건설 1년 늦춘 TSMC

    21일 반도체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TSMC는 전날(현지시간) 2분기 실적발표를 진행하며 현재 미국 애리조나에 짓고 있는 공장 건설이 1년 가량 늦어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TSMC는 오는 2024년부터 애리조나 공장 1기 라인을 가동해 5나노미터(nm) 칩을 생산하고 오는 2026년부터는 2기 라인을 통해 3nm 칩 생산에 나설 것을 계획해 건설에 한창이다.

    여기에는 총 400억 달러(약 51조 원)가 투입된다. TSMC는 이 같은 계획을 지난해 발표하고 연말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이 참석한 장비 반입식을 여는 등 미국 정부와 공고한 공조 속에 차질없이 계획을 이행해왔다.

    하지만 본격적인 신공장 가동을 앞두고 TSMC는 결국 '인력난' 문제를 전면에 제기했다.

    이날 실적발표 자리에서 마크 리우 TSMC 회장은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서의 반도체 생산이 오는 2025년으로 연기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기존 일정에 맞춰 현지 첨단 장비를 설치할 숙련 인력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꼽았다.

    TSMC가 미국에서 일할 충분한 인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이미 업계에서 널리 알려진 바다. 대만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TSMC는 40년 넘는 업력으로 파운드리업계 독보적인 기업이지만 특유의 수직적 기업 문화와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 등으로 구직자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갈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나마 대만에선 이런 단점들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하면서 현지 인력들에겐 TSMC에서 일할 수 없는 이유로 굳어진 모양새다.

    TSMC를 비롯해 미국에 진출한 반도체 기업들도 미국 현지 인력들을 선호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그들의 숙련도와 전문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반도체 산업의 특성 상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는 인력들도 첨단 공정이나 설비, 장비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으면 근무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반도체 산업이 미세화에 경쟁력이 달린만큼 섬세한 작업 능력도 중요한 요소인데 미국 현지 인력들이 대만이나 한국 등 국내 인력 대비 부족하다는 평가도 많다.

    TSMC는 결국 대만 본사에서 파견하는 형태로 미국에 부족한 인력 확보에 나선다. 최근 대만 본사에서 미국 공장에 일할 인력을 대거 파견한다고 밝힌 TSMC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미국 현지에는 최첨단 설비를 다룰 수 있는 숙련된 인원이 필요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 ▲ 삼성전자 미국 테일러 공장 부지 이미지 ⓒ삼성전자
    ▲ 삼성전자 미국 테일러 공장 부지 이미지 ⓒ삼성전자
    ◇ 삼성도 美 인력난으로 골머리...10조 손실 쌓였지만 인력 투자 지연 못해

    TSMC가 이처럼 미국 인력의 한계를 본격적으로 지적하고 나서면서 현재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공장 건설에 한창인 삼성이 미국에서의 인력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삼성은 TSMC에 비하면 현지 인력들 사이에서 호평받는 직장이지만 삼성 입장에선 숙련도가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인력들을 중심으로 생산에 나서기엔 리스크가 크다.

    이런 사정 때문에 삼성 또한 TSMC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숙련 인력을 대거 파견하는 형태로 초기 공장 세팅에 나설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삼성 DS(반도체)부문 내부에선 테일러 공장에 파견할 인력 규모가 기존보다 훨씬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현지 체류 기간별로 파견할 인력을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좀처럼 해결 방안을 찾기 힘든 인력난 문제에 이미 수조 원 쌓인 적자 상황까지 겹쳐 삼성이 이중고에 놓였다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전자 DS부문은 올 들어 2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상반기에만 8조 원 안팎의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증권가에선 올해 삼성전자 DS부문이 연간 기준 최소 10조 원대에서 최대 14조 원대까지 낼 수 있다는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아직 미국 투자 계획을 구체화히지는 않았지만 SK하이닉스도 미국 투자를 시작하게 되면 삼성전자와 같은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처지다. SK하이닉스는 재정 측면에선 삼성보다 사정이 더 좋지 않은데 인재 확보에는 똑같이 공을 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이미 지난해 4분기부터 2조 원 가까운 영업손실을 낸 SK하이닉스는 올 1분기에도 3조 4000억 원대의 적자를 기록해 2개 분기 합산 적자 규모만 5조 원이 넘었다. 여기에 올 2분기에도 3조 원 가까운 손실이 예고된다. 연간 기준으로도 10조 원 안팎의 적자가 예상된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다운턴으로 올해까지 SK하이닉스가 입은 손실만 12조 원에 달하는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반도체 호황기가 돌아오면 인력난은 '인력 쟁탈전'으로까지 커질 가능성도 고개를 들고 있다. 고객 수요가 되살아나고 제조사들도 감산 기조에서 벗어나 생산 확대에 나서게 되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국내는 물론이고 이제 막 가동을 시작한 미국 생산기지에도 추가 인력을 급파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반도체업계와 투자업계에선 제대로 된 수요 확대에 따른 업황 회복 시점을 오는 2024년 하반기나 2025년 즈음으로 예상하는데 이때가 마침 삼성전자나 TSMC가 미국 신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하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내년 말 미국 테일러 팹(Fab)에서 4나노 양산 제품의 출하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하며 테일러 공장 가동 시점을 공식화한 바 있다.

    이렇게 파운드리 양대산맥이 미국에서 나란히 양산을 시작하며 현지 생산 인력은 물론이고 반도체업계 핵심 인재를 영입하기 위한 치열한 전쟁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