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150억弗 투입 HBM 패키징 라인, R&D센터 추진삼성, HBM 라인 신설 가능성… 파운드리 통해 차세대 제품 생산 가능성도최대 고객 엔비디아·AMD 따라 미국행 필수… 반도체 패권경쟁, AI칩 힘싣는 美
  • ▲ SK하이닉스 HBM3 제품 이미지 ⓒSK하이닉스
    ▲ SK하이닉스 HBM3 제품 이미지 ⓒSK하이닉스
    챗GPT 등으로 촉발된 인공지능(AI) 서버시장이 급부상하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제조하는 방향에 힘을 싣고 있다. 최대 고객인 엔비디아, AMD와 근거리에서 협력할 수 있는 동시에 자국 내에서 AI 반도체 제조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미국의 압박도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26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AI 서버시장이 급성장 하며 'HBM'이 반도체 패권경쟁의 새로운 핵심 제품으로 떠오른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서 HBM 제조에 나서기 위한 검토를 본격화하고 있다.

    우선 SK하이닉스가 지난해 공식화했던 미국 투자를 HBM 중심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7월 미국에 메모리 반도체 패키징 제조 시설과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150억 달러(약 19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는데, 직접적인 투자 분야가 HBM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SK하이닉스는 특히 HBM의 핵심인 패키징 분야에서 TSV(Through Silicon Via) 기술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TSV는 기존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여러 칩을 붙여 완성하는 HBM에서 핵심 기술로 꼽히는데, 현재도 이 기술을 적용한 라인이 부족한 상황이라 우선적으로 여기에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HBM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TSV 라인을 증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SK하이닉스는 경기도 이천과 충북 청주에 두고 있는 생산공장 내 유휴 공간을 활용해 우선적으로 TSV 라인을 배치하기 위해 막바지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고 있다.

    삼성은 이미 미국 텍사스 테일러에 파운드리 신공장 건설에 들어갔지만 이 지역에 추가적으로 HBM 생산시설을 신설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당장은 파운드리 공장 신설과 가동에 자원이 집중되지만 삼성도 결국엔 HBM 관련 시설 투자를 진행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게 반도체업계의 주된 예상이다.

    혹은 현재 건설 중인 파운드리 공장에서 차세대 HBM 제조를 일부 담당하게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향후 5세대 HBM에선 인터페이스 기능이 탑재된 로직다이 부분을 3~5나노미터(nm)급 파운드리 선단공정으로 생산할 것으로 기대된다. 4세대 HBM까지는 D램 공정에서 로직다이를 생산하는 방식이었다. 삼성은 자체적으로 파운드리 공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자사 HBM 로직다이도 생산할 수 있는데 미국 테일러 신공장이 그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기존 범용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HBM과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은 미국에서의 생산으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많다. 범용 메모리는 특성 상 생산단가가 사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인건비등의 비용이 높은 미국에서의 생산이 적합하지 않았지만 HBM은 기존 메모리 대비 5~10배 가량 수익이 더 나는 제품이라 생산단가에 보다 여유가 있다. 생산단가보다는 안정적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지 여부가 훨씬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결정적으로 HBM의 주요 고객사가 모두 미국 기업이라는 점에서 삼성과 SK가 미국에 HBM 생산기지를 둘 수 밖에 없을 것이란 결론이 나온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지난해 6월부터 엔비디아의 최신 AI 칩인 'H100'에 120기가바이트(GB) 제품을 제공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오는 4분기에 4세대 HBM 양산을 시작해 AMD사의 최신 AI 칩인 'MI300X'에 192GB 용량 제품을 공급할 것으로 전망된다.

    HBM은 여러 칩을 붙여 완성되기에 고객사들의 주문과 요구대로 칩을 구성하는 맞춤형 수주 체제다. 고객사와 근거리에 있을수록 일이 더 수월할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협력관계를 이어가며 규모를 키울 가능성도 그만큼 높을 수 밖에 없다.

    미국 정부가 AI 칩을 대상으로 새로운 규제에 나설 수 있다는 점도 삼성과 SK가 미국행에 나서는 중요한 이유가 될 전망이다. 이미 지난해 8월 미국 상무부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사용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GPU 제조사인 엔비디아와 AMD의 중국 수출을 금지한 바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달 내로 미국이 추가 규제를 발표할 것이라는데 반도체업계의 촉각이 곤두 선 상황이다.

    GPU의 중국 수출 규제와 동시에 AI 칩을 미국 내에서 제조하기 위한 투자 유치에도 미국 정부가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월 미국 상무부가 공개한 반도체지원법(CHIPS Acts) 가이드라인에서 '고용량 최첨단 D램' 생산 능력을 상당 수준으로 확보하겠다고 밝힌 이후 HBM과 같은 첨단 D램을 생산하는 한국 기업을 유치해 협력하는 방안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