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모델 삼은 웰스파고 닮은꼴 사고 도마에美는 은행장 사퇴-직원 5000명 해고 중징계韓 솜방망이 처벌 전망… 금융판 중대재해법 하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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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DGB대구은행 직원이 고객 명의를 도용해 주식계좌를 개설한 사실이 발각돼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이와 유사한 사례가 과거 미국에서도 발생한 적이 있어 눈길을 끈다. 미국 4대 상업은행으로 평가받는 웰스파고(Wells Fargo)에서 벌어진 '유령 계좌 사건'이다.

    특히 시중은행 전환을 추진중인 대구은행이 웰스파고를 벤치마킹 롤모델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어 여러 구설을 낳고 있다.

    결과적으로 웰스파고는 해당 스캔들로 은행장이 사퇴하고 사건에 연루된 5000명 이상의 직원이 해고됐다. 아울러 2억달러 가까운 벌금과 더불어 '자산 규제' 페널티도 부과됐다. 일정 규모 이상으로 자산을 더 늘리지 말라는 것으로, 자산을 늘려 수익을 내는 금융사 입장에선 치명적인 조치다.

    ◆ 유사한 '유령 계좌' 스캔들

    지난달 황병우 대구은행장은 시중은행 전환 관련 언론 인터뷰에서 웰스파고를 롤모델로 언급한 바 있다.

    웰스파고 본사가 뉴욕이 아닌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해 있음에도 미국 4대 상업은행으로 성장한 점을 들어 대구에 본사를 둔 대구은행의 성장 가능성을 어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달 들어 대구은행에서 직원들이 고객 명의를 도용해 1000여개 주식계좌를 몰래 개설한 사실이 금융감독원에 적발되면서 웰스파고가 지난 2016년 일으킨 '유령 계좌' 스캔들과의 유사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미국 현지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웰스파고 직원들은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지난 2011년부터 고객 몰래 신용카드 계좌등 총 350만개에 달하는 허위 계좌 만들고, 해당 계좌에서 수수료까지 인출해 간 것으로 파악됐다. 자동차대출 고객 80만명에게는 무단으로 자동차보험료까지 청구됐다. 

    이 여파로 당시 은행장(존 스텀프)이 사퇴하고 사건에 연루된 직원 5300명이 해고됐다.

    이후 2018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웰스파고가 2017년 말 총자산인 1조 9500억달러 이상으로 자산을 늘리지 못하도록 하는 패널티까지 부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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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은행에서 벌어진 유령계좌 사건도 그 피해 규모 면에선 차이가 있지만, 직원들이 실적을 늘리기 위해 비위 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유사한 측면이 있다.

    조사 결과 웰스파고는 직원들에게 신규계좌 유치실적에 연동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으며, 고객 1명당 상품을 무려 8개나 팔라는 무리한 주문을 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은행 직원들도 성과평가지표(KPI)를 높이기 위해 고객 몰래 주식계좌를 개설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를 일으킨 직원들은 증권사 계좌개설 신청서를 복사한 뒤 이를 임의로 수정해 다른 증권사 계좌를 개설했으며, 이 사실을 고객이 알지 못하도록 안내문자(SMS)까지 차단하는 치밀한 모습까지 보였다.

    ◆ '금융판 중대재해법' 시급

    지난해 우리은행에서 벌어진 700억원대 횡령사고를 시작으로 올해 BNK경남은행의 500억원대 PF 횡령, KB국민은행의 미공개 정보 활용한 주식투자, 대구은행 유령계좌 사건 등 대형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수 년전에는 은행과 증권사 등이 투자 손실 위험도가 큰 펀드 상품을 노인 고객 등에 불완전판매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금융권 일각에선 이러한 금융사고가 지속 반복되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지목한다. 사고 발생에 따른 처벌이 약하다보니 금융회사들이 내부통제에 신경을 덜 쓰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작년 우리은행 횡령 사건을 돌이켜보면, 돈을 빼돌린 직원이 면직 처분을 받고 직속 부서장도 중징계를 받았으나, 내부통제에 책임이 있는 은행(기관)에 대해선 딱히 눈에 띄는 제재가 없었다. 올해 발생한 경남은행, 국민은행, 대구은행 사고도 징계 수위가 이와 유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금융당국은 금융사 내부통제 강화 유도를 위해 올해 초부터 금융사 임직원의 업무와 책임 범위를 미리 확정해두는 '책무구조도'가 포함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의 입법을 추진 중이다. 금융권에선 이 개정안을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부르고 있다.

    현행법은 내부통제 기준 마련의무만 명시돼 있고 각 임원별 구체적인 책무가 불분명해 사고 발생시 책임소재를 따지기가 어려웠다. 책무구조도가 도입되면 상황에 따라 최고경영자(CEO)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미국 웰스파고 사례와 비교하면 여전히 처벌 수위가 낮지만, 금융사의 내부통제 강화를 유도해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 법안의 국회 통과가 요원하다는 점이다. 여야가 여러 정치적 사안 등으로 대치 중인 상황에서 해당 법안을 심사하는 정무위원회 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금융권 관계자는 "당장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전 금융권에 해당 법안이 적용되기까지는 5년 이상 걸릴 수 있다"며 "정치권이 당장 정쟁을 멈추고 법안 통과를 위해 서로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