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E-9비자 쿼터 '11만→12만명+@' 확대언어·문화장벽 탓 안전사고 취약…전형적 '탁상행정'중대재해법 시행후 위험공정에 외국인노동자 채용부담 "인력이 곧 경쟁력…중복처벌 완화 등 판 깔아줘야"
  • ▲ 아파트 공사현장. ⓒ뉴데일리DB
    ▲ 아파트 공사현장. ⓒ뉴데일리DB
    "외국인근로자 채용 확대요? 중대재해처벌법부터 바뀌어야죠."

    외국인 및 재외동포 취업제한을 완화한 '킬러규제' 혁파안을 두고 건설업계가 "현장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엇박자정책"이라고 쓴웃음을 보였다. 

    고질적 인력난 해소를 위해 당장 외국인 노동력을 채우고 싶어도 언어·문화장벽으로 인해 안전사고 대응에 취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일각은 외국인근로자 채용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기업활동을 과도하게 억제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부터 개정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5일 정부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해부터 고용허가제 비전문 외국인력(E-9 비자) 쿼터를 기존 11만명에서 12만명으로 1만명 추가하고 내년에는 역대 최대규모인 12만명+@로 확대한다.

    이번 규제완화와 관련 건설업계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원자잿값 인상과 인력난·인건비 상승으로 3중고를 겪고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사고위험이 있는 공정에 외국인노동자를 쓰는 게 부담스럽다는 공통된 의견이다. 

    최근 건설근로자공제회가 발표한 '분기별 퇴직공제 피공제자 동향' 보고서를 보면 올 3월기준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근로자수는 10만9865명으로 전체 건설근로자의 14.8%를 차지했다. 

    이중 현장 외국인근로자수는 2020년 3월 7만7047명(12.9%)에서 2021년 8만6836명(13.7%), 지난해 9만3404명(14.1%)으로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현장직이 늘어난 만큼 사고에도 쉽게 노출됐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건설업 사고사망자수는 총 402명으로 이중 47명(11.7%)이 외국인인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에도 외국인근로자 사망이 잇따르고 있다.

    앞서 지난 5일 인천 송도 주상복합 신축현장에서 하청업체소속 30대 외국인근로자가 줄걸이작업을 하던중 떨어져 숨졌고 7일에는 경남 합천군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20대 근로자가 덤프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9일에는 경기 안성시 옥산동 근린생활시설 공사장에서 콘크리트 타설작업을 하던 베트남 근로자 2명이 붕괴사고로 매몰돼 숨졌으며 불과 하루전인 어제(24일)에도 충남 아산시 탕정지구 소재 오피스텔 신축현장에서 중국인 근로자가 21m 아래 지상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건설현장 근로자 절반이상은 외국인이고 특히 업무강도가 센 기초공정 경우 한국인을 아예 보기 어려울 정도"라며 "정기적인 한국어 교육 등으로 언어장벽을 해소하고 있는데 문제는 현장 외국인 국적이 다양해 자기들끼리도 소통이 잘 안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팀장급이 외국인인 경우 안전관련 공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의사소통 불가로 돌발상황 대처가 늦어지는 등 애로사항이 한둘이 아니다"며 "결국 외국인 채용을 늘릴수록 중대재해법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최근 '철근누락' 등 부실시공 원인중 하나로 외국인력 증가가 꼽히고 있어 건설사입장에서도 무턱대고 채용을 늘리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중견건설 B사 관계자는 "사고발생시 처벌규정을 대폭 강화해 놓고 안전사고에 취약한 외국인근로자 채용을 확대하라니 황당할 노릇"이라며 "물론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력이 필요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므로 우선 중복처벌 완화 등을 통해 채용을 늘릴 수 있는 '판'을 깔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선 건설사들은 현장에 통역사를 배치하거나 외국인근로자용 통역앱을 개발하는 등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우건설은 외국인 통역 전담직원을 배치하는 한편 15개 외국어 번역시스템을 지원하는 '스마티' 앱을 운용하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도 250개문장을 5개국어로 표현할 수 있는 외국어소통 전용앱을 개발해 자사직원들에게 배포했다.

    외국인 채용확대 같은 '땜질식 처방'보다는 건설업 일자리 질향상 등 장기플랜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전문가들은 시공품질 향상을 위해 청년층 유입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은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업은 '피플 비즈니스'로 불릴 정도로 인력이 곧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며 "생산성과 시설물 품질 저하를 막으려면 일자리 질 개선을 통한 건전한 인력양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