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무부, 현대제철·동국제강 수출 제품에 1.1% 상계관세 부과키로"韓 값싼 전기료가 사실상 보조금"… 美 철강업계 불만 수용文정부 '포퓰리즘' 전기료 동결이 화근… 5년간 1번 찔끔 인상한전이 직격탄, 총부채 200조 돌파… 尹정부 4분기 인상 고심
  • ▲ 서울 시내 한 주택 외벽에 전력량계가 부착돼 있다.ⓒ연합뉴스
    ▲ 서울 시내 한 주택 외벽에 전력량계가 부착돼 있다.ⓒ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값싼 전기요금을 이유로 우리 철강업계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가운데 전임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성 전기요금 동결이 역풍으로 돌아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론을 의식해 미온적인 태도로 수년간 끌어온 문 정부의 전기요금 유보가 결국 통상 문제로까지 비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관보를 통해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의 후판(두께 6㎜ 이상의 철판)에 각각 1.1%의 상계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표했다. 상계관세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출국에 매기는 차별 관세다. 수출국이 보조금을 지급해 특정 물품의 수출 가격을 낮출 경우 자국 제품의 경쟁력이 감소하므로 이런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과한다. 미 상무부는 한국의 값싼 산업용 전기요금이 사실상 간접적인 보조금 역할을 한다고 판단했다.

    미 상무부는 앞선 2월에 같은 내용의 예비 판정을 내린 바 있다. 미 철강업계는 그동안 한국의 전기요금이 유독 낮아 한국 철강업체들이 보조금성 혜택을 누리고 있다며 불만을 제기해왔다. 우리 정부와 업계는 예비 판정을 뒤집기 위해 노력했지만, 최종 판정을 막지 못했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은 미 국제무역위원회(ITC) 등을 통해 추가 대응에 나설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철강업체는 부과된 상계관세가 1%대로 낮은 수준이어서 당장의 영향은 크지 않을 거라고 전망한다. 현대제철이 미국에 수출하는 후판 물량은 전체 생산량 200만톤(t) 중 2%(4만t)에 그친다. 동국제강도 대(對)미 후판 수출량이 연간 1만t 규모로 알려졌다. 관세가 낮고 기존 수출 물량도 소규모인 만큼 이번 판정이 업체에 큰 타격을 줄 정도의 위기는 아니라는 반응이다.

    하지만 위험요인이 없다고 볼 순 없다. 미 정부가 전기요금을 이유로 관세를 부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미국이 한국의 값싼 전기요금이 보조금 구실을 한다고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비슷한 사례가 발생하면 분쟁은 더 확대할 여지가 있다. 또 미 정부가 주목하는 상황에서 우리 전기요금이 계속 지나치게 값싼 수준을 유지한다면 통상 문제는 생각보다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 ▲ 한국전력공사.ⓒ뉴데일리DB
    ▲ 한국전력공사.ⓒ뉴데일리DB
    미 정부가 지적했듯 이번 사태를 촉발한 원인은 한국의 값싼 전기요금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통계를 보면 지난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메가와트시(㎿h)당 95.6달러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5.5달러보다 19.9달러 싸다.

    전기요금이 저렴해진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문재인 정부에서 요금을 동결했기 때문이다. 문 정부는 5년 동안 전기요금을 고작 한 번 인상했다. 2021년부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지만, 전기요금에 제때 반영되지 못하면서 한국전력공사는 2년 이상 원가 이하로 전기를 팔았다. 전기 판매가격보다 사들이는 가격이 더 비싼 이런 '역마진' 구조 때문에 한전은 2021년 이후에만 47조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봤다.

    윤석열 정부 들어 5개 분기 연속으로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했지만, 원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으로 5년간 굳어져 있던 요금을 정상궤도로 올리기엔 현실적으로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임기 내내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는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줄이면서 전기요금을 동결했다.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전력 부족 사태의 책임을 요금 인상을 통해 국민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조처였다. 아울러 지방선거와 대선 등에서 민심을 잃을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는 분석이다.

    문 정부가 포퓰리즘에 빠져 있는 동안 피해는 고스란히 한전에 누적됐다. 한전의 적자 폭은 해가 갈수록 불어났고, 결국 총부채 규모가 200조 원을 넘어선 상태다.

    일각에선 통상 분쟁 확대를 막기 위해서라도 전기요금의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다만 정부는 4분기(10~12월) 요금 인상 여부를 두고는 신중한 모습이다. 정부는 지난해 2분기(4~6월)부터 올해 2분기까지 5개 분기 연속으로 총 40.4원(39.6%)을 인상했다. 올 3분기(7~9월)에 동결한 만큼 4분기에는 다시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 한전을 비롯한 관련 업계의 목소리다.

    그러나 여당인 국민의힘이 겨울철 '난방비 폭탄' 등과 맞물려 서민 부담을 가중한다며 방어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어 향방을 점칠 수 없는 상태다.

    한전은 요금 인상을 적극 촉구하고 나섰다. 김동철 신임 한전 사장은 지난 4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올해 인상을 약속한 kwh당 45.3원 중 남은 25.9원의 인상이 필요하다. 이 선에서 최대한 전기요금을 올리는 게 맞다"면서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4분기 전기요금 인상 발표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 김동철 신임 한국전력 사장이 4일 세종시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 김동철 신임 한국전력 사장이 4일 세종시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