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카르텔 관련 세무조사 실적 공개 도마 위"尹정부 들어 246명·2200억 추징" 강조정작 궁금한 업종별 추징세액 등은 노코멘트약해진 존재감에 어필은 하고 싶고, 정보공개는 조심스럽고
  • ▲ 국세청 ⓒ국세청
    ▲ 국세청 ⓒ국세청
    "세무조사 진행 중인 건이 있어서 지금은 추징인원·세액을 공개하기 어렵다. 연간 실적이 집계되면 공개하겠다."

    국세청의 고질병이 또 도졌다. 서민의 피눈물로 뱃속을 채운 유명 입시학원 등 민생침해 탈세자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한다며 지난 30일 국세청 기자실로 기자들을 불러모아놓고는 가장 중요한 업종별 세무조사 대상 인원과 추징세액은 공개하지 않았다.

    국세청은 이날 '서민의 위기를 기회 삼는 민생침해 탈세 엄단'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난달까지 학원업과 대부업, 장례업, 프랜차이즈 본부, 도박업 등 246명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여 총 2200억 원을 추징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윤 대통령의 '사교육 카르텔' 타파 지시 이후, 이뤄졌던 유명 입시학원과 스타강사 등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는 언론에서 주목하는 사안 중 하나였다.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입시학원과 스타강사들이 대체 수험생과 학부모를 상대로 얼마나 벌어들이고 이를 어떻게 탈루했는지 많은 사람이 궁금해했다.

    이런 분위기를 카메라 세례를 받는 국세청도 모를리 없었다. 그러나 궁금증을 풀어주리라 기대를 모았던 국세청의 브리핑은 정작 알맹이가 없었다. 국세청은 유명 입시학원의 사주가 직원에게 월급을 과다지급한 뒤 이를 현금으로 돌려받거나 사주의 사적비용을 법인카드로 결제했다는 탈루 방법과 스타강사가 본인이 받아야 할 저작권료를 특수관계법인을 설립해서 가족이 받게 했다는 정도의 내용만 공개했다.

    246명에 대해 총 2200억 원을 추징했다고 밝히면서도, 학원업 종사자가 몇 명인지, 추징세액은 얼마인지 등은 밝히지 못한다고 버티면서(?) 기자들과 신경전을 벌였다.

    기자들은 "국민은 학원업에서만 246명을 세무조사해 2200억 원을 추징한 거로 오해할 수 있다. 업종별로 추징세액이 얼마인지 밝히지 않는 국세청의 의도가 무엇이냐"라거나 "국세청이 기자들과 스무고개를 하는 것도 아니고, 실적이 잠정 집계됐다면서, 업종별로 추징세액을 공개하지 못한다는 것은 국세기본법 때문이냐"라고 따져물었다. 일각에선 "연도별로 집계를 내도 될텐데 굳이 현 정부 출범 이후 추징세액이 2200억 원이라고 강조한 이유가 있느냐"고도 물었다.
  • ▲ 30일 민생침해 탈세 세무조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는 정재수 국세청 조사국장. ⓒ국세청
    ▲ 30일 민생침해 탈세 세무조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는 정재수 국세청 조사국장. ⓒ국세청
    이에 브리핑에 나선 정재수 국세청 조사국장은 "통상 조사 실적은 연간 집계해서 공개하고 있다. 현재 조사 진행 중인 사안도 있어서 세부 업종별로 공개하기는 어렵다"며 "지금 발표한 숫자는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차원에서 잠정 집계한 것을 국세청이 제공해주는 측면"이라고 해명했다. 정 국장은 "20년 전에도 민생침해 탈세 등에 대응하기 위해 학원 세무조사를 꾸준히 관리를 한 상황에서 (이번 정부 들어)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고 신규 업종들이 생겨났다는 측면으로 이해해달라"고 설명했다.

    석연치 않은 설명에 이후에도 기자들이 거친 질문을 쏟아내자, 국세청은 나중에야 학원 30곳에 대해 200억 원을 추징했다고 밝혔다.

    이런 실랑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세청은 국세기본법 제81조13 제1항 비밀유지 조항에 따라 납세자의 과세정보는 타인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해서는 안 된다. 국세청은 과세정보를 물을 때마다 국세기본법을 거론하며 묵비권을 행사해왔다. 이를 두고 국회에서는 국세청이 비밀유지 조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국회는 국세청이 과세정보를 제공하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국세청 입장에서는 납세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외부에 과세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이것이 잘못됐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세청의 태도가 문제다. 윤석열 정부 들어 기획 세무조사 추징세액은 공개하면서도 세부내역은 공개할 수 없다거나, 업종별 탈세유형은 공개하면서 조사대상자가 업종별로 몇 명인지는 공개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 세무조사 실적을 공개한다는 취지와 어울리지 않는다. 너무 '국세청 입맛에 맞는' 국세청 위주의 실적 공개다.

    이런 브리핑을 듣는 기자들은 국세청이 "너네는 자세하게 알 필요없고 국세청이 말한 대로 실적이나 홍보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국세청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세무조사 실적을 공개했다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서 내용을 밝혀야 하는 것이 옳다. 전날과 같은 브리핑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국세청만을 위한 실적 공개는 아닌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