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서 송환된 64명 … '고수익 보장' 광고의 덫허위 공고 필터링·민관 협업 대응 나서지만 근본대책 無정부 모니터링 강화에도 청년 "일자리 절벽이 문제" 반발구조적 고용 부진 지속 땐 해외 불법 취업 유혹 커지기만
  • ▲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가담했다가 현지 경찰 조사를 받고 이민 당국에 구금됐던 한국인 64명이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가담했다가 현지 경찰 조사를 받고 이민 당국에 구금됐던 한국인 64명이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서성진 기자
    최근 해외 취업을 미끼로 한 납치·감금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정부가 허위 채용공고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 방침을 내놨다. 하지만 청년 고용률이 장기적으로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근본적인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해외 불법 취업을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지난 18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출발한 전세기를 통해 송환된 보이스피싱 등 범죄 피의자 64명이 국내 도착 즉시 체포됐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고수익 보장' 등의 문구가 포함된 허위 채용공고를 보고 캄보디아에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들이 구인 포털이나 SNS를 통해 허위 광고를 접한 뒤 현지에서 여권을 빼앗기고 감금·폭행을 당했으며, 불법 사이버 범죄에 동원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부 대응 늦었다는 비판 … 필터링 시스템 보완 나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최근 국정감사에서는 정부의 대응이 지나치게 늦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조지연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5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작년 국감에서도 해외 취업 사기 문제를 지적했지만, 노동부는 채용절차법 위반 의심 사업장에 대한 모니터링 매뉴얼조차 마련하지 못했다"며 "해외 취업 사기 신고 건수가 2022년 2건에서 지난해 상반기 96건으로 48배 폭증했다"고 밝혔다.

    이에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자동 필터링 제도를 통해 허위 채용 게시글을 관리하고 있지만, 사기 수법이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며 "차관 주재로 주요 취업 플랫폼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어 모니터링 체계를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오는 22일 '직업정보제공사업자 간담회'를 열고 허위 채용공고 필터링 강화와 민관 협업 방안을 집중 논의할 예정이다. 간담회에는 권창준 차관과 고용서비스정책관을 비롯해 잡코리아, 알바몬, 사람인 등 주요 플랫폼 운영사 대표들이 참석한다.

    정부는 과장 광고를 사전에 걸러내는 자동 필터링 시스템의 한계를 보완하고, 플랫폼 내 자체 신고 체계 정비, 인공지능(AI) 기반 모니터링 도입 가능성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 경찰청 등 유관기관과의 정보 공유 체계 구축도 논의된다.

    청년 고용률 17개월 연속 하락… "해외 불법 취업 막기엔 역부족"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순한 모니터링 강화만으로는 해외 취업 사기를 막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청년 고용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나는 청년들을 막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층 고용률은 45.1%로 전년 동기 대비 0.7%포인트(p) 낮아지며 17개월 연속 감소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이후 최장 기록이다. 제조업 취업자는 6만1000명, 건설업 취업자는 8만4000명 줄며 각각 15개월, 17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최근 경력직 위주의 채용 기조도 청년층 고용률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6월 발표한 '상반기 채용시장 특징과 시사점' 조사에 따르면, 상반기 채용공고 14만4181건 중 경력직만을 원하는 기업은 82.0%에 달했으며, 신입만을 채용하는 기업은 2.6%에 불과했다. 청년층의 취업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청년들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해외로 떠나는 게 아니라, 국내에서 기회 자체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 청년 구직자는 "스펙을 쌓아도 돌아오는 건 '경력직 우대'뿐, 신입은 기회조차 없고 결국은 아르바이트나 단기 계약직으로 버티는 게 현실"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한 20대 김모 씨는 "취업 준비만 2년째인데, 면접조차 보기 어렵다"며 "결국 해외라도 나가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국내에선 미래가 안 보인다", "좋은 일자리는 부모 찬스 없으면 못 간다"는 글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청년층 사이에선 '탈한국'이 하나의 생존 전략처럼 회자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최근 청년 고용 부진이 외부 충격이 아닌 국내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잠재성장률 둔화, 산업 구조의 고도화 지연, 중소기업의 경쟁력 약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청년 일자리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종선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국내에선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해 청년들이 삶이 팍팍하다고 느낀다"며 "해외 불법 취업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직업 교육훈련을 내실화하고, 구조개혁을 통해 중소기업의 양질 일자리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