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장기공급계약 확산에 메모리 협상력 강화HBM 캐파 잠식에 범용 D램 공급 부족도 심화삼성·SK, HBM4 수율·증설 속도가 하반기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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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인공지능) 메모리 시장에서 ‘그때그때 사서 쓰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PC와 스마트폰 수요에 따라 가격이 출렁이고, 공급사가 감산으로 버티던 과거의 메모리 사이클과는 다른 흐름이다. AI 데이터센터 경쟁이 수년 단위 인프라 전쟁으로 번지면서 고객사의 우선순위는 낮은 가격에서 안정적인 물량 확보로 바뀌었다. HBM(고대역폭메모리)과 고용량 D램은 이제 단순 부품이 아니라 AI 성능과 전력 효율, 데이터센터 가동률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가 됐다.하반기 반도체 시장의 승부처도 가격표에서 계약서로 옮겨가고 있다. 일부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업체)를 중심으로 3~5년 장기공급계약 논의가 확산하면서 메모리 업체들은 단기 현물가격 변동에서 벗어나 가격 하단과 실적 가시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고객은 미래 물량을 먼저 잠그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캐파와 수율, 납기 안정성을 앞세워 협상력을 키우는 구도다. 메모리 산업은 경기 사이클 업종에서 AI 인프라 계약 산업으로 재편되는 분기점에 들어섰다.◇장기계약이 가격 하단 만든다변화의 출발점은 AI 수요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데 있다. AI 업무가 학습에서 추론으로 이동하고, 에이전트AI가 여러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메모리 사용량은 빠르게 늘고 있다. SK증권은 차세대 엔비디아 Vera Rubin200 랙의 전체 메모리 용량이 기존 약30.8TB에서 약74.7TB로 2.4배 확대될 것으로 봤다. HBM 용량은 1.5배, LPDDR5X는 3.1배 늘어나는 구조다.문제는 공급이 수요만큼 빨리 늘기 어렵다는 점이다. HBM은 범용 D램보다 웨이퍼와 후공정 자원을 훨씬 많이 필요로 한다. SK증권은 HBM의 웨이퍼 캐파 잠식 효과가 범용 D램 대비 3배 이상이라고 분석했다. 100K(월 10만장) 투자를 모두 HBM에 투입해도 실질 캐파 증가는 30K(월 30만장) 수준에 그칠 수 있고, 선단 공정 수율까지 감안하면 실제 공급 확대 효과는 더 작아진다.이 때문에 고객사는 단기 가격보다 장기 물량 확보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 장기계약이 안착하면 메모리 업체는 가격 하단을 방어할 수 있고, 고객사는 공급 차질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HBM 생산 비중이 늘수록 범용 D램으로 돌릴 수 있는 캐파는 줄어든다. HBM 강세가 일반 D램 가격까지 지지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삼성·SK, 증설은 선택 아닌 필수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증설 경쟁도 다시 본격화하고 있다. SK증권은 D램3사의 장비 투자가 2026년 210K, 2027년 400K, 2028년 500K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2027년 상반기부터 클린룸 부족이 완화되면서 본격적인 증설 사이클이 2028년 말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삼성전자는 평택 4공장(P4) 투자를 앞당기고 있다. 2026년 D램 투자 규모는 기존 70~80K(월 7만~8만장)에서 90K(9만장) 수준으로 상향 추정된다. P5는 2027년 2분기부터 장비 발주가 시작되고, 2027년 투자 규모는 150K(15만장)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는 M15X와 용인 Y1 공장이 핵심이다. 2026년 M15X 투자 규모는 70K(7만장), 2027년 Y1 D램 투자 규모는 140K(14만장) 수준으로 예상된다.이번 증설은 과거 범용 D램 투자와 성격이 다르다. HBM4, 고용량 D램, 첨단 패키징, 테스트까지 함께 묶인 투자다. 삼성전자는 메모리·파운드리·패키징을 함께 갖춘 종합 대응력이 강점이고, SK하이닉스는 HBM 선점력과 글로벌 고객 공급 경험이 무기다. 하반기 경쟁의 초점은 단기 점유율보다 HBM4 수율, 장기계약 물량, 납기 안정성으로 옮겨가고 있다.◇소부장까지 번지는 AI 투자 사이클메모리 장기계약은 장비와 소재, 부품 업계에도 직접적인 신호다. 증설이 재개되면 식각, 증착, 세정, 검사 등 전공정 장비 수요가 먼저 움직인다. HBM과 첨단 패키징 난도가 높아질수록 후공정 장비와 테스트, OSAT(반도체 후공정 패키징) 수요도 함께 커진다. AI 칩은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검사 시간이 길어지고, 고가 장비 부담 때문에 외주 패키징·테스트 비중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CoWoS(칩 온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 병목도 변수다. SK증권은 TSMC의 CoWoS 캐파가 2025년 말 75K(월 7만5000장)에서 2026년 말 130K(13만장), 2027년 말 210K(21만장)로 확대될 것으로 봤다. AI 투자가 메모리만이 아니라 후공정과 OSAT 증설까지 밀어 올리는 흐름이다.낸드도 다시 수혜권에 들어오고 있다. AI 추론이 늘면 HBM만으로 모든 데이터 병목을 풀 수 없다. 고성능 SSD가 KV 캐시(Cache) 오프로딩과 대용량 저장 계층 역할을 맡게 된다. 삼성전자 시안과 SK하이닉스 다롄 투자, 2027년 국내 낸드 신규 투자 재개 가능성이 거론되는 배경이다.SK증권 한동희 연구원은 “AI 추론 고도화에서 메모리는 AI 성능 향상과 비용 효율화를 모두 결정짓는 직접 변수로 격상됐다”며 “구속력 높은 3~5년 장기공급계약 논의는 AI 메모리 위상 제고가 구조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