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5개 시중은행에 조단위 과징금·문책경고 사전통보설명의무 해석·RWA 부담·사후배상 감경 두고 당국·銀 셈법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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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감독원이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5개(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 은행에 약 2조원 규모의 과징금·과태료 부과를 사전 통보하면서 제재를 둘러싼 긴장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은행들이 자율조정과 분쟁조정 수용 등을 통해 이미 1조4000억원 안팎을 투자자에게 돌려준 상황에서 조단위 과징금까지 예고되자 구도가 한층 복잡해졌다. 소비자보호를 앞세운 금감원, 최종 의사결정을 쥔 금융위원회, 건전성과 ‘생산적 금융’을 내세우는 은행권 사이 힘겨루기가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이번 조치는 2021년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이후 첫 조단위 과징금이자 고위험 파생상품 판매에 대한 사실상 첫 본격 적용 사례라는 점에서, 향후 고난도 상품 규제와 은행 영업 관행의 기준선을 새로 정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11월 말 다섯 은행에 대한 사전 통지에서 과징금·과태료뿐 아니라 기관경고와 관련 임원 문책경고 등 인적 제재까지 포함했다. 문책경고는 향후 금융권 경력에 치명적인 중징계라, 금전적 부담과 별개로 경영진 리스크까지 동시에 불거질 수 있다. 

    과징금이 확정되면 부과액의 여러 배를 운영리스크로 인식해 최대 10년간 위험가중자산(RWA)에 반영해야 하는 만큼, 보통주자본비율(CET1), 기업대출 여력, 배당정책 전반의 재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게 은행권의 우려다.

    ◇설명의무 1항 vs 3항, 사후배상 1조4000억원 … 2조원 과징금 가를 ‘두 축’

    이번 제재의 첫 번째 변곡점은 금융소비자보호법 19조에 규정된 ‘설명의무’ 위반을 어느 조항으로 볼 것인가다. 이 조항은 △중요 사항 자체를 설명하지 않은 경우(1항) △설명서·확인서 미교부(2항) △설명 내용이 일부 빠지거나 왜곡된 경우(3항)로 나뉜다. 이 가운데 1·2항은 징벌적 과징금 부과 근거가 되지만, 3항만 해당할 경우 과태료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제재에 그친다.

    금감원은 일부 은행이 홍콩 ELS를 판매하면서 상품설명서에 ‘투자등급 1등급’만 적어놓고, ‘손실위험 20%’와 같은 핵심 위험 문구를 빼놓은 사례를 문제 삼고 있다. 투자자가 실제 손실 가능성을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정보가 빠져 있어, 사실상 설명이 이뤄지지 않은 것과 다르지 않다는 판단이다. 이 경우 1항 위반에 해당해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된다.

    반면 은행권의 입장은 다르다. “상품 구조와 손실 가능성에 대한 기본 설명은 있었고, 일부 표현이나 수치의 누락·불명확 수준”이라는 주장이다. 설명의무 3항에 해당한다는 논리다. 동일한 사실관계를 두고 1항으로 볼 경우 과징금 부과의 근거가 되지만, 3항으로 인정되면 과징금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운 만큼 제재 규모가 조단위에서 수천억원대로 줄어들 여지도 생긴다. 제재심에서 법리 다툼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개별 투자자의 특성을 어디까지 반영할지도 쟁점이다. 동일 상품을 여러 차례 반복 매수한 30대 투자자와, 투자 경험이 많지 않은 80대 고령 투자자의 1회 가입을 같은 위반 유형으로 묶어 수만건을 일괄 제재하는 방식이 적절한지에 대해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은행들은 “위험 인식 수준과 투자 경험이 크게 다른데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행정소송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사후배상은 제재 수위를 좌우할 또 다른 변수다. 홍콩 ELS 손실 사태 이후 은행들은 자율배상과 분쟁조정 수용 등을 통해 약 1조4000억원을 투자자에게 돌려줬다. 금소법 및 관련 시행령은 자율배상·사후구제를 과징금 감경 사유로 인정하고 있으며, 최대 75%까지 감면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실제 감경 여부와 폭은 금융위가 최종적으로 판단한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홍콩 ELS 제재는 소비자보호 관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사고 이후 얼마나 성실하게 구제 조치를 했는지도 제재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은행권에서는 사후구제가 제대로 반영되면 2조원대로 알려진 제재 규모가 일부 조정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다만 금융위는 “어떠한 제재안도 아직 확정된 바 없다”고 선을 그으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금감원이 제시한 기본 방향과 사후구제에 대한 참작 여부, 설명의무 조항 해석이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 논의 과정에서 어떻게 다듬어질지가 향후 제재 수위를 가를 관전 포인트다.

    ◇RWA·배당·생산적 금융까지 걸린 ‘18일 제재심’ … 새 규범 시험대

    은행들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은 과징금이 자본규제와 영업전략 전반에 미칠 장기 영향이다. 과징금이 확정되면 부과액의 여러 배가 운영리스크로 반영돼 RWA가 크게 늘어나고, CET1 비율 방어를 위해 기업대출 축소, 자본 확충, 배당성향 조정 같은 선택지를 동시에 검토해야 한다. 국내 은행지주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여전히 0.6배 안팎에 머문 상황에서 대규모 제재까지 겹치면,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 정책과도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게 은행들의 논리다.

    이 원장은 “과징금과 과태료로 RWA가 급증해 생산적 금융 공급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며 “과징금이 확정되기 전까지 RWA 반영 시점을 늦추는 방안 등을 금융위와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보호 원칙과 제재의 일관성은 지키되, 자본규제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를 함께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주식시장도 홍콩 ELS 제재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과징금 규모와 자본 부담 수준이 불확실한 상태에서는 은행주에 대한 본격적인 재평가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녹취 의무 위반에 대한 과태료가 증권선물위원회 단계에서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는 점은 “본격적인 과징금 제재도 초기 관측치보다는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를 키우고 있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오는 18일 홍콩 ELS 사안을 첫 안건으로 상정할 예정이다. 제재심은 금감원 검사국과 제재 대상 은행 측(법률대리인 포함)이 각각 의견을 내고 사실관계·법리·제재 수위를 놓고 다투는 대심제 방식으로 진행된다. 논점이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 번의 회의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3~4차례로 이어지는 장기 심의가 이뤄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후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 의결까지 거쳐야 해 최종 결론은 내년 상반기 이후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홍콩 ELS 제재는 고위험 상품 판매 관행과 고령 투자자 보호, 본점 책임, 소비자보호와 건전성·생산적 금융의 균형을 한꺼번에 점검하는 시험대”라며 “소비자 피해에 맞는 책임, 사후구제 인센티브, 자본규제와 정책금융 목표 조율 방식에 따라 앞으로 고난도 상품 제재와 분쟁 처리 기준이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