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하라주쿠 매대에 깔린 한국 화장품성분·저자극 앞세워 일본 소비자 발길 붙잡아팝업부터 어워즈까지, K-뷰티 존재감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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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중에는 향이 강한 제품이 많은데 한국 화장품(K-뷰티)은 자극이 적고 가격 부담도 덜해요. 그래서 계속 쓰게 돼요."

    지난 7일 오후 도쿄 신주쿠역 앞. 네온사인과 인파 사이에 자리한 인기 뷰티 버라이어티숍 아인즈앤토르페(Ainz & Tulpe) 신주쿠점 에스트라 매대 앞에서 직장인 사토 미카 씨는 이렇게 말했다. 손에 든 수분 크림을 가볍게 문질러 보던 그는 "요즘 일본 젊은 세대는 화장품을 고를 때 향보다 성분을 먼저 본다"며 에스트라를 집어 들었다.

    이 같은 소비자 인식 변화는 매장 안 풍경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매장 2층 한켠에 마련된 에스트라 팝업스토어 앞에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눈송이 패턴과 겨울 시즌 콘셉트를 입힌 블루 톤 공간에 아토베리어365 라인과 한정 기프트 세트가 진열돼 있었다. 가챠(Gacha, 랜덤 뽑기와 증정 이벤트 안내판이 배치돼 자연스럽게 시선을 끌었다.

    일본 소비자와 해외 관광객들은 수분 크림을 손등에 올려 질감을 느낀 뒤 고개를 끄덕이며 사용감을 확인했고 진열대 옆 설명판을 읽으며 성분과 효능을 꼼꼼히 살폈다. 처음 접하는 브랜드 앞에서도 매대를 스쳐 지나가기보다 패키지와 성분 설명 라벨을 끝까지 읽어보는 모습이 반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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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날 찾은 하라주쿠의 앳코스메(@cosme) 역시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말 매장 안은 화장품을 고르려는 소비자들로 붐볐다. 일본 최대 규모의 온·오프라인 뷰티 채널인 이곳은 2층에 K-뷰티 전용 존을 따로 구성해 눈길을 끌었다.

    정중앙에 마련된 세 개의 매대에는 퓌와 라카, 달바, 아누아, VDL, 닥터지 등이 나란히 진열돼 있었고 매장 곳곳에서도 에스트라, 라네즈, 이니스프리 등 K-뷰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방문객들은 색조 제품을 직접 발라보거나 스킨케어 샘플을 비교하며 매대 앞에 한참을 머물렀다.

    1층 정중앙에는 앳코스메 베스트 코스메틱 어워즈 2025 코너가 자리 잡고 있었다. 온·오프라인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제품들을 리뷰 수와 별점과 함께 전시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도 K-뷰티 제품이 자연스럽게 눈에 띄기도 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현지 앳코스메 관계자는"최근 일본에서 한국 화장품이 성공하려면 SNS 인지도가 사실상 필수"라며 "아이돌과 인플루언서 영향력에 더해 한국 여행 경험이 새로운 유행을 만드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 소비자들이 한국 아이돌 메이크업을 직접 체험한 뒤 사용 제품이 SNS를 통해 공유되면서 자연스럽게 트렌드가 확산된다"고 덧붙였다. 한국 화장품은 제품 그 자체를 넘어 한국에서의 경험과 결합된 트렌드 아이템으로 소비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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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같은 흐름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일본 수입화장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전체 화장품 수입 가운데 K-뷰티 비중은 30.3%로 1위를 기록했다. 3년 연속 1위다.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액은 1342억7000만엔으로 전년 대비 40% 늘었다. 같은 기간 일본 전체 화장품 수입 증가율이 17.7%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K-뷰티의 상승세는 더욱 가파르다.

    기초 화장품 분야에서는 존재감이 한층 더 뚜렷하다. 코트라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기초 화장품 수입 규모는 7억3142만달러로 전년 대비 11.1% 증가했다. 이 가운데 K-뷰티는 3억3282만달러로 전체의 45.5%를 차지했다. 2022년 점유율 37.5%로 1위에 오른 이후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업계에서는 K-뷰티가 이제 마니아의 선택을 넘어 일상 소비로 스며들고 있다고 본다. 자국 브랜드 선호와 폐쇄적인 유통 구조로 일본 소비재 시장은 오랫동안 한국 기업에게 불모지로 여겨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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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일본에서 K-뷰티의 인기는 일부 마니아층의 유행을 넘어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온라인에서 성장한 브랜드들은 일본에서도 도쿄 중심 상권과 드러그스토어를 거점으로 오프라인 접점을 넓히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한류 열풍에 더해 뛰어난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실제로 가성비를 중시하는 쁘띠프라(쁘띠 프라이스) 트렌드 확산 속에 한국 브랜드의 존재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최근 큐텐재팬이 진행한 메가 뷰티 어워즈에서는 톱10 전 부문을 K-뷰티가 휩쓸었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K-뷰티의 높은 위상은 제품력뿐 아니라 K-컬처가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장르로 자리 잡은 영향이 크다"며 "일본 젊은 세대가 한국을 오가며 교류하는 과정에서 K-뷰티 사용자층도 자연스럽게 넓어지고 있고 이는 기성세대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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