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 차주 정책자금으로 쏠리면 … 은행 “대출할 곳” 더 줄어든다중기대출 금리 3%대 하락 속 조달비용은 ↑ … 우량 수요 이동 땐 리스크 확대
-
- ▲ ⓒ연합뉴스
국고채 수준 연2~3%대 금리를 내건 50조원 규모 정책대출이 예고되면서 기업자금 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가계대출 규제 강화로 기업금융을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하는 시중은행 입장에서는 우량 기업대출 수요가 정책자금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수익성과 건전성 사이에서 선택지가 좁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시장금리는 오르는데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3%대로 내려가는 ‘금리 역주행’이 이미 진행 중인 만큼 정책대출이 본격화되면 예대마진 축소와 연체·충당금 부담이 동시에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겹친다.◇정책 설계는 대출 중심 … 75조원 기금 중 50조원 ‘초저리’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정부 보증채권으로 조달하는 첨단 전략산업기금 75조원 가운데 50조원을 초저리 대출로 운용한다.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 등에 필요한 자금을 연2~3%대 금리로 공급하는 구상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역마진은 산업은행 이익잉여금으로 감당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운용계획상 초저리 대출 50조원이 간접투자 35조원을 웃돌면서, 혁신기업 육성이라는 정책 목표와 수단 간 균형이 ‘대출’로 쏠렸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은행권이 민감하게 보는 대목은 우량 차주의 이동이다. 우량 기업대출이 정책대출로 옮겨가면, 은행은 생산적금융 목표를 맞추기 위해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기업 비중을 늘릴 유인이 커진다. 이는 연체율 상승과 대손충당금 부담 확대라는 비용 요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5대 은행의 3분기 기업대출 연체율 평균은 0.42%다. 2018년 1분기 0.48% 이후 7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기업대출 확대가 곧바로 리스크 비용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기업대출 금리는 내려가고 조달금리는 오른다 … 예대마진 압박 가중금리 지표는 이미 괴리가 뚜렷하다. 한국은행 기준 10월 예금은행 기업대출 금리(신규취급액)는 연3.96%로 전월 대비 0.03%포인트 하락했다. 대기업 대출 금리(연3.95%)는 0.04%포인트 올랐지만, 중소기업 대출 금리(연3.96%)가 0.09%포인트 떨어지며 2022년 5월 이후 처음으로 3%대를 기록했다. 같은 시기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연4.11%)보다 낮은 흐름이 3개월째 이어졌다.반면 조달비용을 가늠하는 시장금리는 상승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5년 만기 은행채(무보증·AAA) 금리는 연 4.491%까지 올랐다. 10월 27일 연 3%를 돌파한 뒤 이달 들어 연 4.4%를 넘어섰다.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5.0bp(1bp=0.01%p) 오른 연 3.084%(12월 9일 기준)였다. 10년물 금리는 연 3.453%로 5.2bp 상승했다. 모두 올해 연중 최고치다.대출금리는 내려가고 조달금리는 오르면서 예대금리차 축소와 순이자마진(NIM) 하방 압력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3분기 기준 1년 만기 정기예금과의 금리 차이는 2분기 1.53%포인트에서 3분기 1.38%포인트로 좁혀졌다.은행들은 개별 지원책으로 대응에 나섰지만 금리 경쟁이 심화될 여지는 남아 있다. 신한은행은 ‘생산적 금융 성장지원 패키지’를 통해 초혁신경제 15대 프로젝트 및 국가 핵심 산업 기업의 신규 대출 금리를 최대 1%포인트 낮추고, 약 6조원 규모의 신규 대출을 계획했다. 대출금리가 연7%를 넘는 중소기업·개인사업자가 기존 대출을 12개월 이내로 연기하면 초과 금리분에서 최대 3%포인트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원금을 줄이는 방식의 부담 완화 프로그램도 제시했다. 대상 대출 규모는 약 9799억원, 전체로는 총 6조9000억원 규모 대출에 약 520억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김도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은행권이 생산적 금융을 위한 기업대출 증가 과정에서 대출금리 경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다만 연말 결산을 앞두고 은행권이 건전성과 재무비율 관리에 집중하면서 대출 증가세가 둔화하는 흐름도 나타난다. 5대 은행의 중기 대출 잔액 증가폭은 8월 3조2763억원, 9월 2조1254억원, 10월 4조7494억원으로 확대됐지만 11월 1조4909억원으로 급감했다. 12월 첫 영업일에는 중기 대출을 비롯한 전체 기업대출이 1조원 줄었다.금융권 관계자는 "정책대출 50조원과 은행권 생산적금융 경쟁이 동시에 전개되면 기업금융 시장은 ‘저금리 쏠림’과 ‘건전성 부담’이 결합한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우량 수요가 정책자금으로 이동하고 은행이 상대적으로 위험이 큰 구간으로 밀려날 경우, 생산적금융 확대가 은행권 리스크를 키우는 역설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