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고구마 들고 '인증 사진'… 한국 라면·과자 '폭풍' 쇼핑그 많던 떡볶이·닭꼬치 온 데 간 데… 일본인 일색에서 중국 등 아시아인 넘쳐 나
  • ▲ 지난 20일 명동 노점에서 감말랭이가 판매되고 있다. 감, 딸기 등 한국 농산물이 외국인 관광객을 사로잡고 있다.ⓒ뉴데일리 이나래
    ▲ 지난 20일 명동 노점에서 감말랭이가 판매되고 있다. 감, 딸기 등 한국 농산물이 외국인 관광객을 사로잡고 있다.ⓒ뉴데일리 이나래
    감말랭이 진열대 앞에서 걸음을 멈춘 한 쌍의 중국인 커플이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고 감을 사간다. 조금 떨어진 옆 가게에선 히잡을 쓴 어린이가 딸기 한 알을 손에 든 채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가락시장이나 백화점 식품관의 풍경이 아니다. 서울 명동 노점상 거리에서 요즘 마주할 수 있는 광경이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10명 중 8명이 방문하는 명동의 노점 풍경이 10년 전과 확 달라졌다. 한 집 건너 떡볶이를 팔고 가문어(대왕오징어를 가공한 것)구이나 흔한 닭꼬치로 호객하던 그때 그 명동은 간데없다. 

    대신 그 자리를 한국 제철 농산물과 '글로벌' 인기몰이 중인 한국 라면, 과자가 채웠다. 10년 전과 달리 일본어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떠들썩한 호객 행위도 드물다. 싱가폴, 중국, 러시아 등 다양한 국적의 손님들을 맞는 상인들은 짧은 영어, 때론 유창한 중국어로 관광객을 상대한다. 
  • ▲ 국산 감말랭이는 명동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뉴데일리 이나래
    ▲ 국산 감말랭이는 명동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뉴데일리 이나래
    중국인은 감말랭이, 베트남 관광객은 딸기 좋아해

    "중국인들이 감말랭이 제일 많이 사가요. 오늘 저녁에 30팩 팔았어요."

    지난 20일 오후 9시, 명동의 노점에서 감말랭이 판매 아르바이트 중인 중국인 유학생 A씨는 추위로 귀마개까지 한 채 싼커(중국인 개별 관광객)들을 맞기 바빴다. 그는 감말랭이만 전문으로 파는 노점에서 일한다. 플라스틱 용기엔 '청도 감말랭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가격은 400g에 1만원. 

    외국인에게 질 떨어지는 걸 비싸게 파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어 직접 시식해 봤다. 오해였다. 감 특산지인 진주‧완주 등에서 직접 사먹어 본 곶감과 맛이 비슷했다. 가격도 요즘 대형마트에서 파는 감말랭이 가격(9000원~1만 2000원‧400g)과 비슷하다. 

    A씨는 "한국인 사장님이 따로 계시다. 내년 봄까지 계속 감말랭이를 판매한다"고 말했다. 그가 일하는 노점 외에도 명동 곳곳에서 감말랭이 파는 점포를 볼 수 있었다. 다른 과일과 함께 파는 노점도 있고, 아예 어묵 같은 분식을 팔며 곁다리로 감말랭이를 진열해 놓은 곳도 있었다.
  • ▲ 외국인들이 명동 노점에서 신선한 제철 딸기를 사고 있다.ⓒ뉴데일리 이나래
    ▲ 외국인들이 명동 노점에서 신선한 제철 딸기를 사고 있다.ⓒ뉴데일리 이나래
    근처의 다른 곳에선 또 다른 관광객들이 지갑을 열고 있었다. 딸기 노점이다. 일행으로 보이는 세 명의 여성이 딸기를 각자 한 팩씩 사간다.

    "오늘은 24팩 팔았어. 지금 딸기가 제일 비쌀 때라 많이는 못 팔아. 내년 3~4월 되면 (한 팩당) 가격이 5000원씩 떨어지니까 그땐 많이 팔고. 동남아 사람들이 주로 많이 오고. 대만, 홍콩, 싱가폴. 딸기 제일 좋아하는 건 베트남 사람. 일본 사람들은 가끔 사고."

    명동에서 20년째 과일 장사를 하고 있는 박정온(68) 씨는 동남아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바빴다. 가격은 500g에 1만 5000원. 역시 대형마트와 비슷한 가격이다. 여러 과일을 팔아본 결과 딸기 장사가 제일 쏠쏠해 딸기만 전문으로 팔고 있다. 

    박 씨에게 딸기를 사가는 사람 중 99%는 외국인이다. 한국인들은 어느 때고 딸기를 사먹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명동 한복판에서 사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손님들은 대부분 아시아인들이다.

    박 씨는 "나는 딸기 팔면서 우리나라 농민들을 돕는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 얘기 꼭 좀 써줘."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 ▲ 군고구마, 군밤, 옥수수, 은행 등 한국인들이 즐겨먹는 간식이 명동에서도 인기다.ⓒ뉴데일리 이나래
    ▲ 군고구마, 군밤, 옥수수, 은행 등 한국인들이 즐겨먹는 간식이 명동에서도 인기다.ⓒ뉴데일리 이나래
    외국인들 명동 한복판서 군고구마 들고 '인증샷' 

    떡볶이와 국적 불명 군것질 일색이던 명동 노점을 채운 건 과일 뿐만이 아니다. 군고구마와 삶은 옥수수처럼 한국인이 즐겨먹는 먹거리를 사들고 '인증샷'을 찍는 외국인들을 명동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었다.

    은행구이과 군밤을 전문으로 파는 한 노점에선 중년의 일본 여성들이 "오이시이(맛있어요)?"라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 ▲ 무슬림 관광객이 늘면서 이들을 위한 '할랄김밥'도 등장했다.ⓒ뉴데일리 이나래
    ▲ 무슬림 관광객이 늘면서 이들을 위한 '할랄김밥'도 등장했다.ⓒ뉴데일리 이나래
    무슬림 관광객들을 위해 '할랄(이슬람교도인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는 식품)김밥'을 파는 노점도 있었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돼지고기와 술을 못 먹는 관광객들을 공략한 것이다. 

    물론 떡볶이, 어묵을 파는 노점들이 다 없어진 건 아니다. 다만 전처럼 줄줄이 늘어서 있지는 않다. 과일, 주스, 계란빵, 꼬치류 등을 파는 노점 사이사이로 띄엄띄엄 들어서 있다.   

    30년째 어묵 장사 중인 배모 씨는 "요즘은 동남아 사람들, 중동 사람들이 많이 보여. 싱가폴 사람들은 많이 오긴 하는데 길거리 음식은 잘 안 사 먹어"라고 귀띔했다.
  • ▲ 명동의 한 식료품 가게를 찾은 외국인의 장바구니에 한국 과자가 담겨 있다.ⓒ뉴데일리 이나래
    ▲ 명동의 한 식료품 가게를 찾은 외국인의 장바구니에 한국 과자가 담겨 있다.ⓒ뉴데일리 이나래
    식료품 가게서 김‧라면‧초코파이 쓸어 담는 아시아 관광객 

    명동역 일대에선 한국 식료품 전문 매장들이 성업 중이다. 목 좋은 곳에 자리한 이 가게들은 다양한 한국 가공식품으로 손님들을 끌고 있다. 매장 앞에 진열된 상품으로는 아몬드, 초코파이, 김 등이 있었다. 
  • ▲ 식료품 점에선 한국 라면, 김, 과자 등을 판매한다. 쇼핑 중인 관광객이 계산하려고 줄을 서고 있다.ⓒ뉴데일리 이나래
    ▲ 식료품 점에선 한국 라면, 김, 과자 등을 판매한다. 쇼핑 중인 관광객이 계산하려고 줄을 서고 있다.ⓒ뉴데일리 이나래
    안쪽에는 라면 코너도 따로 있었다. 국내에 시판되는 라면 제품 대다수를 판매 중이었다. 마트 안을 찾은 관광객은 중국인, 일본인 등 아시아 국적인이 많았다. 그들의 장바구니엔 여러 과자가 다양하게 섞여 있는 경우도 있지만 김, 아몬드 등 특정 제품을 쓸어 담은 경우도 있었다. 
  • ▲ 명동 거리의 식료품 가게가 저녁까지 불을 밝히고 있다.ⓒ뉴데일리 이나래
    ▲ 명동 거리의 식료품 가게가 저녁까지 불을 밝히고 있다.ⓒ뉴데일리 이나래
    친구와 3박 4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대만인 타이팅(27)씨는 "한국 과자와 라면을 좋아한다. 귀국하기 전에 신라면, 진라면을 사갈 거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을 먼저 다녀간 자신의 친구들도 귀국할 때 라면을 한보따리 사왔다고 덧붙였다.

    물론 명동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한국 농산물과 가공식품을 '탐'하는 게 낯선 풍경만은 아니다. 한국인도 일본에 가면 곤약 젤리와 로이스 초콜릿을 양 손 가득 쇼핑한다. 또 동남아를 가면 각종 과일 말랭이와 말린 코코넛을 지인에게 선물한다며 쓸어담기도 한다. 

    다만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명동에서 한국 농식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은 괄목할 변화다. 

    농식품부 수출진흥과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전부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함께 동남아 국가에서 신선, 가공 농식품을 적극 마케팅하고 있다"며 "태국, 베트남 등 대형마트에서 한국 농식품이 '숍인숍' 형태로 입점해 많이 팔리고 있고, 이런 곳에서 한국 식품을 맛본 이들이 한국에 와서도 사먹는 것으로 보이며 한류 영향으로 인한 긍정적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