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인구증가율 저하에 연공급제 개편 목소리근속 20~30년 제조업 근로자 임금, 1년 미만의 2.83배"연공급제 유지 시 GDP 7% 사회적비용 지불해야"
  • ▲ 지난 12일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4 세종청년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가 현장채용 게시판 앞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 ⓒ뉴시스
    ▲ 지난 12일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4 세종청년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가 현장채용 게시판 앞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 ⓒ뉴시스
    근속연수에 따라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한국의 연공성 임금제를 개편하지 않으면 100조원이 넘는 사회적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는 국책연구기관 경고가 나왔다.

    정년연장과 관련한 논의가 본격 가동되면서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는 가운데 국책연구기관이 이를 뒷받침하는 보고서를 낸 것이다.

    18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인구구조 변화를 고려한 임금체계별 사회적 비용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노동시장의 중요한 특징은 근속연수에 따라 자동으로 임금이 높아지는 '연공급제'다. 근속연수·연령과 무관하게 업무의 난이도나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는 '직무급제'와는 다른 성격이다.

    연공급제는 근로자들로 하여금 장기근속을 유인하고 기업은 이를 통해 숙련 근로자를 형성해 인적자본을 축적한다는 장점이 있다.

    생산성과 인구가 모두 팽창했던 과거 고도성장기 시절 연공급제는 청년세대의 생산성 일부를 장년세대 근로자에게 공정한 방식으로 이전시켜 주는 세대 간 계약의 일환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생산성 및 인구증가율이 저하되면서 세대 간 이전계약으로 여겨지던 연공급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됐다는 게 보고서의 분석이다.

    이에 사회·경제의 근본적인 구조 변화가 요구되나 한국 노동시장을 둘러싼 법과 제도 및 관행 등의 변화는 매우 더디다. 특히 과거 고도성장기 기준에 맞춰진 우리나라 연공급제는 현재까지도 개편 소식이 요원한 상태다.

    한국의 임금 연공성 정도는 상당히 크다. 보고서에 따르면 근속기간이 30년 이상인 근로자는 1년 미만 근속자에 비해 4.4배의 임금을 받고 있다. 근속기간이 15~19년인 근로자 집단도 근속 1년 미만에 비해 3.3배의 임금을 받는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유독 높다. 제조업(근속 20~30년) 기준으로 한국 임금은 1년 미만 근로자 대비 2.83배로 임금 연공성이 강한 일본(2.55배)보다도 높다. 이외 독일(1.88배), 영국(1.5배), 프랑스(1.35배)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은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보고서는 저출생·고령화로 노동 환경이 바뀌면서 기존의 연공급제의 유용성이 낮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청년세대가 장년이 됐을 때 생산성의 일부를 미래 세대에게 보장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사라지면서 연공급제의 장점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높은 이직률이 발생한다고 보고서는 보고 있다.

    보고서는 이런 문제점이 있음에도 제도 개선을 하지 않는 경우 발생하는 비용을 수리적 모형을 이용해 환산할 시 개별 세대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7%의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보고서를 공동 집필한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2023년 기준 실질 GDP가 2천243조원이라면 7%는 157조원이고 여기서 자본 부분을 제외한 노동 부분은 70% 정도로 약 110조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러한 사회적 비용이 장기임금계약 구조가 정상적일 때를 가정한 것"이라며 "만약 연공급구조 때문에 저생산성 근로자가 현재 생산성을 초과한 임금을 받는다면 고생산성 근로자가 이직하거나 열심히 일하지 않게 돼 사회적 후생비용이 훨씬 더 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임금피크제와 조기 퇴직은 경직적인 임금제도 때문에 나타난 기형적인 제도와 양상"이라며 "우리의 임금체계를 시대의 변화에 맞도록 개혁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