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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들이 얽힌 1600억원대 어음(ABCP) 부도 사건이 소송전으로 번진 가운데 ABCP를 판매한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증권이 불리한 상황을 맞았다.
그동안 두 회사는 단순 중개 역할을 해 법적 책임이 없다는 주장으로 소송에 맞서왔지만 회사측이 몰랐던 뒷돈 수수정황이 갑작스럽게 수면위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경찰은 당시 ABCP 발행을 주도한 이베스트투자증권 직원이 가족 계좌를 통해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 측에서 돈을 받은 사실을 포착하고 압수수색 등을 진행했다.
이 직원은 CERCG에서 받은 돈을 한화투자증권 직원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1년전 CERCG 자회사 디폴트 건으로 시작돼 지난해 말 불거진 국내 증권사간 소송전은 당시 해당 어음을 1차로 판매한 한화투자증권·이베스트투자증권과 이를 사들인 7개 금융회사간의 공방전으로 전개돼 왔다.
당시 현대차증권을 비롯한 7개 회사는 소장에서 CERCG ABCP 발행과 관련해 한화투자증권이 주관회사로서 실사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또 SAFE(중국 외환당국) 등록과 CERCG의 공기업 관련 사항을 숨겼다며 투자금 전액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맞선 한화투자증권 측은 "CERCG ABCP라는 유동화증권을 사모로 발행했기 때문에 자신들은 자산관리자일 뿐 법령에 해당하는 주간사가 아니므로 CERCG에 대한 실사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며 책임을 부인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증권업계 내에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나왔지만 채권시장에서 친분으로 엮인 딜러들간의 거래가 큰 후폭풍을 몰고 왔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업계 관계자는 "인맥으로 모인 딜러들이 통화 또는 메신져 등을 이용해 서로간의 신용으로 거래를 성사하고 시장을 움직인 결과가 수백억원대 소송전으로 번졌다"며 "장외에서 소수의 딜러들이 해당 채권을 사들여와 나눠 팔았다는 것은 한화투자증권이 주장해온 주간사의 자격 논란 유무 여부와도 어느 정도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화투자증권은 이번 민사소송전 역시 내부적으로 큰 우려 없이 지금까지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는 한편, CERCG와 자구계획안에 대한 협상을 통해 투자금 회수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반면 실무자가 해당 기업으로부터 뒷돈을 받은 경찰 조사결과가 나온 이후 자세를 낮췄다.
지난 10일 한화투자증권은 "ABCP 발행 당시 실무자의 금전 수수가 있었다는 혐의 부분은 사실"이라며 "추후 경찰 조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한화투자증권도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경찰 조사가 나오기 직전까지도 내부적으로 해당 직원의 뒷돈 정황을 알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직원이 개인적으로 받은 뒷돈을 경찰이나 금융당국보다 회사가 먼저 알아내기는 어려운 만큼 ABCP 부도건과 기관투자자(7개사) 기망행위와는 선을 그어왔지만 직원의 모럴해저드가 드러난 만큼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한화투자증권은 "실무자 개인의 금전수수 혐의 사실에 대해 매우 당혹스럽지만 추후 경찰 조사에 최대한 협조하고 사태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CERCG로 부터 뒷돈을 처음 받은 직원이 소속된 이베스트투자증권 역시 담당 직원은 사태 후 모든 업무에서 배제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구체적이고 확실한 결과가 나올 때 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결국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은 민사소송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
회사간 소송도 ABCP 발행과 판매 과정, 책임 범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뒷돈 정황이 포착된 만큼 무리하게 ABCP를 발행했을 가능성에 대해 다시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로는 이번 사태가 직원 개인의 일탈로 다시 마무리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화투자증권이 스스로 인정한 바와 같이 경찰 조사결과가 나온 이후에서야 ABCP 사태 책임의 실마리를 찾은 만큼 회사측과 선을 그을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다만 1600억원 규모의 거래에 대한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내부통제 시스템에 대한 책임에서는 일정부분 안고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