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노조 "인력·처우 협의" 노사정 요구노동법 전문가 "신규 팹은 교섭 대상 아냐"투자 결정 놓고 경영권·노동권 경계 시험대
-
- ▲ ⓒ챗GPT
정부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추진하는 호남 반도체 메가 프로젝트가 노란봉투법 논란의 첫 시험대에 섰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가 정부·회사·노조가 참여하는 노사정 협의체 구성을 요구하면서다.노조는 투자 자체가 아니라 향후 인력 이동과 처우, 정주 여건을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동법 전문가는 이번 사업이 기존 공장 이전이 아닌 신규 생산기지 신설인 만큼 노란봉투법상 의무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놨다.핵심은 협의체 구성 여부가 아니다. 협의체가 법적 구속력을 갖는 교섭 창구인지, 아니면 투자 계획을 설명하고 현장 의견을 듣는 정책 협의 창구인지가 쟁점이다. 이 경계가 무너지면 반도체뿐 아니라 배터리, 자동차, 조선 등 대규모 설비 투자 전반으로 노사 갈등의 전선이 넓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노조 “투자는 회사 몫, 이동 조건은 논의해야”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는 지난 1일 호남 반도체 메가 프로젝트와 관련해 노사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정부가 서남권에 800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를 유도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 팹 4기를 구축하는 구상이 공개된 직후다.최승호 삼성전자 초기업노조위원장은 “부지 선정이나 투자 규모는 노조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회사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실제로 사업이 진행되면 조합원들이 이동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는 만큼 처우와 정주 여건, 인력 배치 문제는 사전에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노조가 우려하는 부분은 강제 전환배치와 정주 여건이다. 최 위원장측은 “광주·호남 생산기지에 조합원이 실제 배치되기까지는 5년 이상 걸릴 사안이라 현재 근로조건에 직접 불이익이 발생한 것은 아직 아니다”라면서도 “평택 전배(전환배치)만 해도 불만이 많은데 광주까지 이동하라고 하면 실제로 원하는 인력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역량 있는 인력이 이동해야 하는데 처우가 충분한지, 정주 여건이 마련되는지가 중요하다”며 “급박하게 인력 이동을 추진한다면 노조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조는 공장 신설이나 생산기지 조성도 조합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면 노사 협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 ▲ ⓒ연합뉴스
◇전문가 “공장 이전 아닌 추가 신설 … 법리상 다르다”노동법 전문가의 해석은 다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사업은 기존 공장을 광주나 서남권으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팹(공장)을 신설하는 것”이라며 “통상 노란봉투법에서 말하는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 결정 사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박 교수는 고용노동부 해석지침이 염두에 둔 사례를 공장 이전에 따른 대규모 전환배치로 봤다. 그는 “수원, 화성, 평택 사업장이 광주나 서남권으로 이전되는 것이 아니라 추가 신설되는 것”이라며 “주된 쟁점은 기존 인력의 대량 재배치가 아니라 새로운 인력 채용”이라고 설명했다.일부 전문인력 이동 가능성도 의무 교섭 대상이 되는 대량 전환배치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봤다. 박 교수는 “일정한 기술 이전 때문에 부분적 배치가 생길 수는 있지만 본질은 아니다”라며 “노동쟁의 대상이 되는 전환배치는 A지역 공장을 B지역으로 옮기면서 대량의 인력 재배치가 불가피한 경우를 말한다”고 했다.이어 “이런 경우까지 모두 노조와 협의하라고 하면 노조가 사업 경영의 직접적인 의사결정 주체가 되는 결과가 된다”며 “사업 경영상 결정까지 노동쟁의 대상을 확대한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설명은 가능, 동의는 별개” … 투자 속도 변수 부상박 교수는 노사정 협의체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회사가 대규모 투자 계획을 임직원과 국민에게 설명하고 현장 의견을 듣는 절차는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이를 노동법상 의무 교섭 사항이나 노조 동의 사항으로 해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결국 이번 논란은 노란봉투법 이후 기업 투자 결정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묻는 사안이다. 노조가 근로조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을 사전 협의하자고 요구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신규 생산기지 건설 자체를 의무 교섭 대상으로 확대하면 기업의 투자 속도와 의사결정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반도체 투자는 속도가 경쟁력이다. 신규 팹 하나를 짓기 위해서는 부지 확보, 인허가, 전력, 용수, 협력사 집적, 숙련 인력 확보가 동시에 맞물려야 한다. 여기에 법적 성격이 불분명한 노사정 협의가 투자 동의 절차처럼 굳어지면 국가전략산업의 실행 리스크는 커질 수밖에 없다.정부와 기업이 인력 이동과 정주 여건을 뒤로 미룬 채 투자 규모만 앞세워도 현장 반발은 피하기 어렵다. 평택 전배에도 불만이 크다는 노조의 문제 제기는 향후 광주·호남 생산기지 운영 단계에서 현실적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이는 투자 결정 자체의 교섭 의무와는 별개로 관리해야 할 사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업계 관계자는 “이번 논란이 협의체 요구를 넘어 투자 동의나 교섭 사안으로 번질 경우 반도체뿐 아니라 배터리, 자동차, 조선 등 다른 대형 설비 투자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국가전략산업 투자의 속도를 지키려면 설명과 협의, 동의의 경계를 명확히 긋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