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 "근거·정황 없이 표본조사·담보평가서 검토로 이중 옥죄기"국토부 "잇단 담보평가 부실 사건 발생…평가 적정성 높여야"
  • ▲ 삭발식.ⓒ감정평가협회
    ▲ 삭발식.ⓒ감정평가협회

    오는 9월 시행을 앞둔 감정평가 관련법 시행령·시행규칙이 한국감정원(이하 감정원)에는 특혜를 주면서 한국감정평가협회(협회)는 이중으로 옥죄고 있어 불평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수 겸 심판'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던 감정원이 감정평가업무에서 손을 뗀다지만, 국토교통부가 일감을 몰아주는 반면 협회는 표본조사와 담보평가서 검토로 겹겹이 옥죄기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협회는 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감정평가사 5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감정원법 등 감정평가 관련 3개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악 반대 제2차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협회는 국토부가 지난달 25일 입법 예고한 시행령 등이 해당 법률의 위임이 없거나 다른 법령에 근거가 없어 위헌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4월 협회와 감정원이 합의한 감정평가시장 선진화 합의안에도 어긋나는 내용이 담겼다고 비판했다.

    국기호 협회장은 "감정원법 시행령 제12조(업무)에는 부동산 담보대출을 위한 감정평가서 검토 등 부동산시장 적정성에 대한 조사·관리 업무를 필요한 경우 정관으로 정해 감정원이 맡아볼 수 있게 했다"며 "이는 추상적·포괄적인 내용으로 감정원의 권한남용과 업무의 무한 확장 가능성을 내포하는 등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 회장은 "감정원의 업무는 한국감정원법의 위임범위 안에서 해당 시행령에 규정돼야 함에도 이를 무시한 채 상위 법률의 위임한계를 벗어나 업무를 규정하고 있다"며 "이는 감정원에 무소불위의 특권과 특혜를 주는 것으로 기관 이기주의와 관피아 횡포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비난했다.

    특히 감정원이 담보평가서 검토, 표본조사 등을 통해 겹겹이 협회를 관리·감독하는 부분이 논란이 되고 있다.

    협회는 표본조사와 관련해 정황이나 근거 없이 무작위로 조사를 벌여 징계를 줄 수 있는 타당성 조사와 연계하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숨기지 않는다. 국가가 자격을 승인해준 감정평가사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간주하는 전제가 깔렸다는 것이다. 협회는 표본조사와 국토부 직권 또는 이해관계자 요청으로 이뤄지는 타당성 조사를 분리해 운영해야 한다는 태도다.

    민간 감정평가 업무에서 손을 뗀다는 감정원이 돈을 받고 담보평가서를 검토하는 것도 문제로 제기된다. 금융기관이 원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감정평가업무에 대해 평가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조사하는 것이어서 표본조사와 함께 근거 없이 감정평가사를 옥죄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감정평가업계 관계자는 "이는 전문직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업무를 보는 감정평가사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 독소조항"이라며 "전문가가 아닌 금융기관에서 전문가를 신뢰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따졌다.

    그는 "검토행위는 담보평가서가 법령상 절차·방법을 준수해 작성됐는지를 봐야 하므로 국토부 주장대로 가격조정을 위한 감정평가 행위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감정원이 감정평가 업무를 보게 된다"며 "감정평가업무에서 철수한다는 감정원이 이 과정에서 비용을 받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감정평가사들은 감정원의 감정평가업무 철수와 관련해서도 배경에 국토부의 일감 몰아주기 특혜가 있어 가능했다는 의견이다. 민간업계에서 수행하던 지가변동률조사, 임대동향 조사, 표준지와 표준주택 조사·평가 부대업무 등을 법이 아닌 국토부 행정조치를 통해 감정원에 몰아주어 수익원을 마련해줬다는 것이다.

    협회는 "국토부는 이런 배경 설명 없이 민간업무에서 손 뗀다는 사실만을 부각하고 있다"며 "감정원은 민간 업무를 이관받은 후에는 관련 예산도 증액받는 특혜를 누려왔다"고 강조했다.

  • ▲ 궐기대회.ⓒ감정평가협회
    ▲ 궐기대회.ⓒ감정평가협회

    국토부는 시행령·시행규칙 마련 과정에서 협회와 논의를 거쳤다며 이제 와 협회가 딴지를 건다는 태도다.

    국토부 관계자는 "협회는 시행령 등의 내용이 법률의 위임범위를 넘어선다고 주장하지만, 해당 내용은 모두 법에 위임근거를 두고 있다"며 "그동안 수차례 협의·조정한 내용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담보평가서 검토에 대해 최근 평택농협 부실 담보평가나 부산 부동산 사기대출 사건 등 담보평가서에 문제가 있는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어 검토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국토부 관계자는 "검토 규정은 의무화가 아니라 금융기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의뢰할 때만 한다"며 "검토물량 자체가 많지 않은 데다 공공 서비스로 볼 수도 있는 만큼 감정원이 업무를 볼 수 있게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표본조사와 관련해선 "감정평가법 제8조에 국토부 장관이 감정평가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조사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며 "이에 근거해 규정을 둔 만큼 법체계상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표본은 협회와 함께 연간 1000여건을 무작위로 추출하며 이는 연간 50만건쯤인 전체 평가서의 0.2%에 불과해 과다하다고 볼 수 없다는 태도다.

    협회에 대한 이중 옥죄기라는 주장에 대해선 "표본조사는 2014년 감정평가 공정성 강화방안을 마련하며 이미 반영된 내용이고 담보평가서 검토는 평가 적정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데 필요한 조치"라며 "의견 수렴 과정에서 (국토부가) 감정원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은 경우도 있으므로 편들어주기가 아닌데도 협회가 자기네 이익을 위해 반대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