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금융거래 목적 확인서 ‘가상화폐 투자’ 항목 없어의심계좌 탐지 시 일방적 지급정지 발동…고객불편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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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장인 A씨는 30일부터 가상화폐 투자를 위한 계좌개설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은행 문을 찾았다. 은행원이 “어떤 일로 계좌개설을 하십니까” 물어 A씨는 당당히 “가상화폐에 투자할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은행원은 금융거래 목적 확인서로 인해 계좌개설을 할 수 없다며 정중히 사과해 머리만 긁적이다 나왔다.

    이처럼 30일 신한, 농협, 기업은행 지점을 찾았다가 문의만 하고 돌아간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유는 ‘금융거래 목적 확인서’ 때문이다.

    금융거래 목적 확인서란 불법‧탈법 목적의 금융계좌 개설 및 유통, 자금세탁행위 및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를 방지하고자 최초 신규 계좌개설 시 확인하는 제도다.

    대략 ▲최초 순 신규고객 ▲미성년자 ▲단기간 다수 계좌 개설자 ▲거주지 및 직장 지역 외 원거래 소재 지점서 계좌개설 고객 ▲대포통장 의심고객 ▲장기 미거래 계좌 재발행 고객 등이 금융거래 목적 확인서를 작성한다.

    은행마다 확인서 내용은 조금씩 다르나 금융거래 목적에 따라 증빙자료를 제출하는 방식은 비슷하다.

    거래 목적도 크게 ▲급여 수령 ▲연금 수급 ▲사업자통장 ▲모임 통장 ▲대출거래 ▲해외 유학 및 여행 등으로 나뉜다.

    각 거래목적에 따라 소득금액증명원, 재직증명서, 연금증서, 해외대학 입학 허가서, 세금계산서 등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금융거래 목적 확인서에서 ‘가상화폐 투자를 위한 계좌개설’은 항목에 없다. 따라서 직장인 A씨와 같이 투자 목적으로 계좌개설을 요청하게 되면 은행원은 계좌개설 거부 또는 출금‧이체(1일 100만원)가 제한된 계좌를 개설해 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제약 속에도 가상화폐에 투자하고자 한다면 ‘거짓’으로 말해 신규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

    그러나 이 방법 또한 리스크가 상당하다. 이유는 하루 2000만원 이상 거래 시 의심거래 계좌에 해당돼 금융당국에 보고된다.

    이 경우 은행 측은 대포통장과 같은 범죄 이용에 사용된다고 생각해 지급정지를 발효할 수 있는 것이다.

    은행 관계자는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하루 2000만원 이상 거래할 경우가 높다”며 “의심거래 계좌로 지정되면 은행 측은 일단 지급정지를 발동해 고객확인절차를 다시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초 금융거래 목적 확인서와 실제 거래 내용이 다르다면 은행 측은 해지사유에 해당돼 거래를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금융당국이 실명확인절차 시스템을 통해 계좌개설을 허용했지만 이중, 삼중의 허들을 설치해 놓은 것이다.

    한편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 시행 첫날, 은행권은 평소와 같이 한산했다.

    최근 국내외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해킹사고가 발생하고 최근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가치도 큰 폭으로 떨어져 눈치를 살피는 투자자가 늘어난 탓이다.

    기존 투자자 역시 실명제 전환을 하지 않으면 입금이 안 될 뿐 거래 자체는 할 수 있어 분위기를 살피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