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규제·대출강화… 서민·실수요자, 단기 목돈마련 '부담'
  • 서울시내 아파트 단지 전경. ⓒ뉴데일리
    ▲ 서울시내 아파트 단지 전경. ⓒ뉴데일리

     

    올해 들어 아파트 후분양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오는 4월 임시국회에서 후분양제 도입 방안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 심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후분양제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주택가격 급등이 이슈로 떠오를 때마다 도입 필요성이 대두됐다.


    지난달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주택법 개정안은 주택 공정률 80% 이후 분양하는 후분양제 의무화를 골자로 한다. △아파트 부실시공 예방 △분양가 폭등 △분양권 투기수요 차단 등이 도입 이유다.


    앞서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지난해 11월 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공공분양부터 후분양을 단계적으로 늘린다고 밝혔고, 민간분양은 인센티브를 제공해 후분양 선택을 유도한다는 기본 방침을 내놨다.  


    그동안 분양보증을 통해 공급구조를 안정화시켰던 주택도시보증공사(이하 HUG)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보증한도를 총 사업비의 절반에서 70~80%대로 증액하는 것을 검토하는 등 후분양제 전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진행 상황을 보면 정부와 산하 공공기관들은 후분양제 도입의 필요성과 함께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이 뒤따를 것이라는 점도 인정하고 있는 듯 하다.


    현재 국내 아파트 분양은 2~3년전 미리 살 집을 견본주택을 보고 계약한 후 집이 다 지어질 때까지 중도금이라는 형태로 집값을 나눠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반면 후분양제는 집이 완전히 또는 거의 지어진 뒤 분양이 이뤄진다.


    선분양제는 계약금·중도금·잔금을 약 2년간 나눠서 건설사에 지급하기 때문에 저렴한 돈으로 내 집 마련이 가능하지만 후분양제는 집값 대부분을 목돈으로 마련해야 해 부담이 커진다.


    특히 대출규제가 더욱 강화된 현 시점에서 후분양제 도입은 돈줄이 막힌 서민·실수요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집 사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미 서울 일부지역에서는 정부의 분양가 제한으로 '로또아파트'가 판을 치고 있고, 이 조차 현금조달이 가능한 '부자들만의 리그'로 돌아선 상황에서 분양가를 완납해야 하고, 중도금 혜택이 제공되지 않는 후분양제 도입은 시장상황을 너무 모르는 처사다.


    선분양제에서는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의 신용을 빌려 분양가의 40~60%에 이르는 중도금 대출을 연간 2~3%대 저리로 받을 수 있지만 후분양제에서는 개인이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슈는 선분양제를 근간으로 만들어진 청약제도에 있다. 청약제도는 주택 부족으로 발생한 가격차이를 기초로 유지돼 왔는데 후분양제 시행 시 우려되는 공급감소와 분양가상승은 청약제도가 가진 메리트를 축소시킬 수 있다. 후분양제 시행에 앞서 청약제도 손질이 필요한 이유다. 


    또 건설사 입장에서는 완공 때까지 계약금이나 중도금 등을 받을 수 없어 건설자금을 자체 또는 대출로 조달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앞서 참여정부 시절 후분양제 활성화 대책을 통해 민간부문에 공공택지 우선 공급 지원하는 등 후분양제 전환을 추진했지만 많은 업체들이 자금부담 가중으로 사업을 포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아울러 정부가 주장하는 부실시공의 원인은 선분양이 아니라 시공과 건설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미비, 부적절한 공사 등에서 찾아야 한다. 주택 하자는 마감재 정도만 육안으로 파악되고 구조적 문제는 준공 후 5년 정도 경과해야 확인 가능하기 때문에 후분양제가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미 운영하고 있는 정부의 감리제도를 강화하고 전문가에 의한 하자보수 체크 등 제도를 통해 예방하고 보완하는 것이 타당하다.


    결국 후분양제는 주택사업자와 소비자 모두가 부담을 느끼는 제도임이 분명하다. 특히 친 서민정책라 불리는 △후분양제 △분양가상한제 △청약가점제 등이 사라졌다 등장하기를 반복하는 동안 서민·실수요자들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후분양제 전환이 필요하다면 여론과 시장상황에 따라 규제 도입과 폐지를 오가는 즉흥적인 규제를 지양하고,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일관되게 진행할 수 있는 '로드맵' 마련 등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