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정위가 쏟아지는 민원성 가격조사 요구에 몸살을 앓고 있다ⓒ공정위 블로그 캡처
    ▲ 공정위가 쏟아지는 민원성 가격조사 요구에 몸살을 앓고 있다ⓒ공정위 블로그 캡처

     

    공정거래위원회는 물가조사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한때 '물가위원회'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터라 특정 재화나 용역에 대한 가격 조사는 늘 조심스러워 한다. 이런 공정위를 다시 한번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이 잇따라 빚어지고 있다.

    광복절 연휴 끝자락, 이른바 아이돌 굿스(Goods)에 대한 공정위 조사 소식이 넘쳐났다.

    공정위가 지난 7월 서울 YMCA가 요구했던 '123만원짜리 엑소오 이어폰과 60만원대의 가방, 17만5000원의 빅뱅 점퍼' 등 유명 기획사의 아이돌 상품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는 얘기였다. 공정위라는 무게감과 조사라는 뉘앙스가 겹치면서 단박에 시중에 큰 화제를 불렀다.

    하지만 정작 공정위 내부 반응은 뜨악했다. 시민단체의 조사요구를 마다할 수 없으니 접수를 받았고 진행여부를 묻는 채근에 "조사중인 사안은 말할 수 없다"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전한 게 전부였다.

    해당 물품은 '아이돌-기업' 협업상품일 뿐 시중의 같은 제품과 가격대도 같았다. 공정위가 나설 이유가 없는 셈이었다.

     

  • ▲ 공정위 조사소식에 더욱 화제가 됐던 '아이돌 굿스'@자료=서울 YMCA
    ▲ 공정위 조사소식에 더욱 화제가 됐던 '아이돌 굿스'@자료=서울 YMCA


    지난 6월, 공정위는 시민단체들의 거듭된 요구로 시작했던 영화관 '팝콘' 조사에 대해 "기업마다 들어가는 비용이 다른 상황에서 '팝콘의 적정가는 얼마'라고 특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참여연대 등이 대형 멀티플렉스들이 원가 600원에 불과한 팝콘을 5000원에 팔고 350원 짜리 생수를 2000원에 팔고 있다며 공정위가 나서라고 거듭 채근한데 따른 것이었다.

    당시에도 내부는 뒤숭숭했다. "팝콘 값을 특정할 경우 가격을 정해주는 꼴인데 어쩌다 공정위가 가격조사까지 하는 신세가 됐냐"며 한탄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 ▲ 지난 4월 공정위 조사관들은 때아닌 '개고기' 값 실태확인에 나서야 했다@
    ▲ 지난 4월 공정위 조사관들은 때아닌 '개고기' 값 실태확인에 나서야 했다@

     

    그보다 앞선 4월에는 때아닌 '개고기' 값 불똥이 공정위로 튀었다.

    서울 중랑구의 보신탕 가게들이 "식용견 사육업체들이 담합해, 개고기 공급 가격을 40% 이상 올렸다"며 전국사육농가협의회와 대한육견협회 중앙회를 공정위에 제소했다. 협회가 400g당 적정 가격을 6300원으로 제시했고, 여기에 유통 마진이 붙어 5000원대였던 개고기 가격이 7800원으로 올랐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협회 측은 "지나치게 낮았던 개고기 공급 가격을 정상화하는 것"이라며 "담합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공정위 조사관들은 졸지에 개고기 값 사실관계 확인에 나서야 했다.

     

  • ▲ 지난해 12월 취임한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본업인 공정한 시장경제의 파수꾼'이 되겠다고 했다.@뉴데일리 DB
    ▲ 지난해 12월 취임한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본업인 공정한 시장경제의 파수꾼'이 되겠다고 했다.@뉴데일리 DB


    시장경쟁 체제에서 가격에 대해 규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시민단체나 이해관계자들은 자꾸만 공정위를 앞세우려 애를 쓴다. 속내를 들춰보면 고약한 경우가 적지않다.

    공정위 역할은 경쟁의 결과인 가격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런 공정위에게 자꾸만 '가격 조사 요구'만 쏟아내는 것은 발상의 퇴보다. 34년전인 1981년 공정위가 처음 만들어진 이유는 직접 물가 규제에서 경쟁 촉진으로 한 걸음 선진화시키자는 것이었다.

    공정위의 근간인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물가가 언급된 것은 딱 한 마디뿐이다.  '제3조의2 시장지배적지위의 남용금지'와 관련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하지 말아야 할 사례로 '상품의 가격이나 용역의 대가(이하 '가격'이라 한다)를 부당하게 결정ㆍ유지 또는 변경하는 행위'를 꼽은 것이 그것이다.

    이제 그만 공정위가 '독과점 규제와 경쟁 촉진'이란 본래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놓아주어야 한다.

    사업자들이 독과점 구조를 형성하거나 높은 시장점유율을 악용해 경쟁사를 누르거나 카르텔을 형성해 독점력을 만드는 것을 규제해야 하는 게 '본업'이다.

    공정한 가격은 정당한 경쟁을 위한 시장환경이 조성되면 자연스럽게 뒤따라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