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복 시장 “보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시민부터 살펴라”
  • ▲ 3일 오전 승강장 정위치 오작동 현상을 일으킨 전동차가 점검을 받고 있는 모습. ⓒ 사진 연합뉴스
    ▲ 3일 오전 승강장 정위치 오작동 현상을 일으킨 전동차가 점검을 받고 있는 모습. ⓒ 사진 연합뉴스

인구가 300만명에 달하는 인천의 지하철 노선은, 지난달 30일 이전까지 1개에 불과했다. 인천 부평에서 인천시청을 거쳐 송도국제도시로 이어진 인천지하철 1호선은, 1999년 개통돼 17년째 운행 중이다.

서울에서 살다가 인천으로 둥지를 옮긴 시민들이 가장 불편해 한 것 중 하나가 턱없이 부족한 지하철 인프라였다. 인구는 계속 늘어났지만 지하철 추가 건설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고, 인천2호선 건설에 대한 시민들의 바람도 커져갔다.

지난달 30일 오전 5시 30분, 첫 운행을 시작한 인천지하철 2호선의 개통으로, 인천시민들은 숙원 하나를 풀었다.

실망은 기대와 정비례한다.

인천2호선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에, 개통 첫날 무려 6번의 사고로 만신창이가 된 인천2호선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길은 더 차디찰 수밖에 없다.

시민들은 그토록 바라던 인천2호선이 개통 첫날부터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모습에 분노했다. 분노는 자연스럽게 지하철 건설과 시운전을 책임졌던 인천시, 운행을 맡고 있는 인천교통공사로 모아졌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예상치 못한 ‘릴레이 사고’에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패닉상태에 놓인 직원들을 격려했다. 본인이 직접 인천2호선으로 출근하면서, 여과되지 않은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역사를 방문해 시스템 운영 상황을 점검했다.

시 공무원과 교통공사 직원들의 정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고장은 개통 닷새만인 3일 다시 일어났다. 이번에는 열차가 승강장 정위치 정차에 실패하면서 차량 문이 안 열리는 일이 벌어졌다.

출근길, 전동차 안에 갇힌 승객들은 안전요원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차량 내부에 설치된 비상 장치를 이용해 안에서 강제로 문을 열고 나왔다.

인천지하철 2호선은 기관사 없이 무인으로 운행되는 2량 편성의 경전철이다. 기관사가 없는 대신 중앙관제실이 모든 차량의 상태와 운행을 원격으로 제어한다.

무인운행시스템의 특성상 차량이 승강장 정위치를 일정 기준 이상 벗어나 정차하면 문이 열리지 않는다. 차량에서 고장이 발생하면 전 구간 운행이 멈추는 것도 무인운행시스템을 채택한 인천2호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날 고장으로 인천2호선 운행은 약 8분간 중단됐다. 운행 중단 시간이 10분을 넘지 않아 이날 고장은 ‘사고’가 아닌 ‘장애’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시민들에겐 의미가 별로 없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사고든 장애든 불편하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반복된 여섯 번의 사고, 담당자 “시운전 당시 점검 다했는데...”

인천2호선은 지금까지 여섯 번의 ‘사고’를 기록했다. 개통 당일 발생한 이 사고들은 그 원인도 다양하다. 전력공급중단, 전동차 출력이상, 신호체계 통신장치 이상, 열차 정위치 정차 실패 등이다. 인천2호선은 개통 당일 6번의 사고로 전 구간 운행이 78분간 중단됐다.

크고 작은 고장이 계속되면서, 지역시민단체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무엇에라도 쫓기듯 개통을 서두르지 말고, 민관 전문가가 참여하는 안전검증과정을 거치자는 이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때문에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인천시로 화살을 돌리고 있다. 시운전과 설비 안전을 책임진 인천시가, 인천2호선의 사고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시민단체들은,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인천2호선 안전성 검증을 위한 공동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며 인천시를 압박하고 있다.

인천2호선 개통에 앞서 인천시가 진행한 시운전에 대해서도 부실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40일 동안 이어진 시운전 과정에서 ‘정위치 정차 오작동’ 등의 문제를 왜 걸러내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잇따른 사고로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인천교통공사와 인천시 철도건설 담당자들은 죽을 맛이다.

전동차 및 시스템 이상은 운행을 맡은 교통공사가 아니라 시스템을 구축한 시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다. “시민들의 민원이 빗발치지만 속 시원한 답변을 드릴 수 없어 답답하다”는 교통공사 한 관계자의 하소연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가 간다.

시 담당자들도 할 말은 있다. 인천시 한 관계자는 시운전이 부실하게 이뤄진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개통 이후 계속 문제가 일어나니까 그렇게 본다고 해서 틀리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도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입을 열었다.

이 관계자는 “시운전 기간 동안 영업시운전만 한 게 아니다. 말씀하신 정위치 정차 문제도 역별로, 차량별로 일일이 테스트를 했다. 테스트 결과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개통을 한 것이다. 규정된 기간 동안, 규정된 방법으로 모든 점검을 마쳤는데도, 개통 첫 날부터 이런 사고가 일어나 당혹스럽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사고 및 장애가 잇따르는 현실에 대해 “시스템이나 전동차의 장애 때문인지 아니면, 운행상의 문제인지는 정확하게 원인을 분석해 봐야 한다. 그런 과정 없이 단정적으로 몰고 가는 건 안타깝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3날 오전 정위치 정차 오작동을 일으킨 전동차의 경우, 차량 점검을 받은 뒤, 정상적으로 운행을 계속했다고 덧붙였다.

회로가 집적된 전자시스템은 그 기능이 고도화될수록 예상치 못한 버그가 발생하는 경우도 잦다. 버그가 아무리 작아도 이런 문제는 안전 문제와 직결되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시민들이 인천2호선의 시스템에 대해 불안감을 나타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천교통공사 관계자는 “앞서 무인 경전철을 도입한 다른 지역에서도 처음에는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인천1호선도 개통 초기 이런 일이 벌어졌지만, 운행을 해 가면서 미세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현재 빚어지는 오작동 문제는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7층 높이 계단을 걸어 올라가라? 설계 어떻게 했길래

인천지하철 2호선의 문제는 ‘설계 부실’ 논란으로도 번지고 있다. SNS와 블로그,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살펴보면, 인천2호선 이용에 불만을 나타내는 글과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공항철도와 이어진 인천2호선 검암역은 환승전용 출구가 승강장 한쪽 면에만 설치돼, 환승을 원하는 승객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일부 승객은 엉뚱한 게이트를 환승전용철구로 착각해 승강장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요금을 지불하고 안으로 들어오는 혼란을 겪기도 했다.

  • ▲ 인천지하철 2호선 가좌역 출구의 모습. ⓒ MBC 뉴스 화면 캡처
    ▲ 인천지하철 2호선 가좌역 출구의 모습. ⓒ MBC 뉴스 화면 캡처

    인천2호선 가좌역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이 곳 대합실부터 지상출구까지 이어진 계단은 높이가 아파트 7층에 해당하는 22m에 달한다. 문제는 계단 외에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수단이 엘리베이터 뿐이라는 것. 에스컬레이터가 없다보니, 대부분의 승객은 124개에 이르는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야만 한다.

  • 아파트 7층 높이의 출구에 에스컬레이터가 없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누리꾼들이 가좌역 계단을 ‘헬계단’ 혹은 ‘깔딱고개’라고 표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인천교통공사는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출구 공간이 너무 좁아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기 어렵고, 설치를 한다고 해도 역 바로 옆으로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어 진동 등의 문제로 유지보수에 어려움이 있다.”


    공사 관계자의 설명은 역설적으로, 역사 구조와 관련된 설계에 문제가 있음을 반증한다.

    출구 공간이 비좁고, 바로 옆에 고속도로가 지난다는 이유로 까마득한 높이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라는 건, 상식 밖의 발상이다.

    주변 여건 때문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기 힘들었다면, 설계과정에서 출구방향을 조정하는 등 고객의 불편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어야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유정복 시장은 3일 오전 인천2호선이 추가 고장을 일으키자, 직접 인천시청역을 방문해 출입문 개폐 오작동 실태를 점검했다.

    유정복 시장은 교통공사 관계자들에게 “비상발생시 신속하게 대처하고, 배치된 안전요원의 교육을 강화해, 시민들이 혼란을 겪지 않게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시장은 이어 “상시 전문가를 상주시켜, 긴급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유정복 시장은 이날 오전 시 간부들로부터 인천2호선 운행상황을 보고받은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이 문제를 언급하며, 담당 직원들의 책임의식을 강조했다.

    “여러분들은 각 기관의 최고 책임자로서 모든 게 정립돼 있어야 한다. 시장에게 보고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시민 중심의 시정을 펼쳐 시민 편의와 안전에 최선을 다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