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올해 대회 명창부 우승자 방수미씨.ⓒ박동진판소리전수관
    ▲ 올해 대회 명창부 우승자 방수미씨.ⓒ박동진판소리전수관

    올해 국창(國唱) 박동진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치러진 제17회 공주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가 훈훈한 뒷얘기를 낳고 있다. 국악계에서 드물게 역대 대통령상 수상자들이 대회 발전을 위한 밀알이 되겠다며 자발적인 모임을 결성하고 나선 것이다.

    5일 박동진판소리전수관에 따르면 올해 대회 명창부 우승자인 방수미씨를 중심으로 역대 대통령상 수상자가 참여하는 모임이 만들어지고 있다. 모임의 성격은 단순히 친목 도모의 차원을 넘어 올해로 17회를 넘긴 대회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자는 것이다.

    모임을 제안했다는 방씨는 "대회가 끝나고 얼마 뒤 저보다 먼저 명창부 우승을 했던 후배 소리꾼과 통화를 했는데 자신이 활동하는 전북지역에는 공주대회(박동진 판소리대회) 우승자가 많지 않아 외롭다는 얘기가 나왔다"며 "처음에는 단순히 아이디어 차원에서 가볍게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구상을 구체화하면서 기왕이면 대회가 발전하는 데 밀알이 되자고 목표를 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방씨는 "얘기가 나온 김에 알고 지내던 몇몇 선·후배 소리꾼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모두 흔쾌히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히더라"며 "대회 발전을 위해 소리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라고 소개했다.

    김양숙 박동진판소리전수관장도 "처음에 연락을 받고 적잖게 놀랐고 참가자들이 대회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아 뿌듯했다"며 "전국대회 중 대통령상 수상자들의 모임은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소리꾼들의 강한 개성을 관련 모임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원인으로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국악계가 좁다 보니 소리꾼들이 서로 언니, 동생하며 지내는 것도 별도의 모임을 만들 필요성이 제기되지 않았던 이유로 꼽는다.

    모임은 결성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는 중이다. 아직 구체적인 형태를 띤 게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이 모임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국악계의 씁쓸한 현주소가 있다.

    전주지검 형사1부는 지난 3일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부문 참가자로부터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유명 국악인 이모(67·여)씨를 불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대사습놀이 심사위원이던 이씨는 지난해 5월 말 전북 전주시 덕진구 자택에서 정모(45·여)씨로부터 "대회 판소리 부문에 참가하는 데 좋은 성적을 내게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현금과 수표 등 7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는 지난 대회에 참가했다가 예선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대사습놀이는 국악 명인·명창의 등용문으로, 전국 최대 규모의 대회다. 하지만 국악계에선 아는 사람은 아는 골치 아픈 대회로 통한다. 실력으로 우열을 가려야 할 대회 운영에 검은 손이 관여하면서 '명창을 돈 주고 산다'는 자조 섞인 말이 오래전부터 돌았다. 이번 검찰 수사가 그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박동진 대회의 발전이라는 기치에 역대 우승자들이 주저 없이 동참 의사를 밝히는 데는 깨끗하고 공정한 대회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묻어 있는 셈이다.

    방씨는 "그러면 안 되지만, 참가자가 장단이 틀리거나 가사를 틀려도 상을 주는 대회가 없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박동진 대회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 (나도) 삼수 만에 1등을 했는데 그동안 몸 상태가 안 좋거나 해서 조금만 실수해도 우승권에서 멀어졌다"고 말했다.

    2014년 명창부 우승자인 현미씨도 "박동진 대회는 소리꾼 사이에서는 깨끗하고 심사가 공정한 대회로 통한다"며 "대회에 자신이 직접 참가하지 않아도 제자나 지인이 참가하면 현장에서 보고 듣는 게 많은데 공주대회(박동진 대회)의 이미지는 가장 깨끗한 전국대회"라고 덧붙였다.

    그런 이미지를 만든 원동력은 뭘까? 김 관장은 첫째는 투명한 심사, 둘째는 매끄러운 진행이라고 꼽았다. 김 관장은 "무엇보다 심사가 투명해야 한다"며 "심사위원을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한 지침대로 이론·실기·지역별로 구성한다"고 밝혔다.

    김 관장은 "대회를 열다 보면 누가 공정하게 심사하는지 안다"며 "심사위원을 맡아야 대회에 제자를 내보내겠다는 경우가 없지 않은 데 제자가 한 명도 없어도 공정하게 심사할 분을 심사위원으로 모셨다"고 부연했다. 그는 "혹자는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다'고도 했지만, 맑은 물에서 사는 물고기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그것이 제자로서 (박동진) 선생님의 이름을 걸고 하는 대회에 누가 되지 않고, 선생님을 추모하는 방식이라고 믿었다"고 설명했다.

    박동진 대회에도 위기는 있었다. 김 관장은 "(박동진 선생님이 돌아가신) 대회 초기에 주최 측 몰래 참가자에게 1등상을 주겠다며 일을 벌인 사례가 확인됐다"며 "당시 고민 끝에 긴급이사회의를 소집해 이 문제를 공론화했고 당사자를 이사회에서 내보내는 결단을 내렸다"고 귀띔했다. 당시 문제를 일으켰던 당사자가 회의장을 나가며 "내 말 한마디면 대회 참가자는 없을 것"이라고 했던 말은 지금 떠올려도 김 관장의 간담을 서늘케한다. 그러나 김 관장은 그것이 박동진 선생을 추모하는 옳은 방법이라고 믿었고, 그런 소신이 지금의 깨끗한 대회 이미지를 만드는 초석이 됐다.

    이와 관련해 방씨와 현씨는 "공정한 대회에 목말라하는 사람이 많다"며 "(박동진) 대회가 지금보다 더 발전하고 실력자와 참가자가 더 많이 몰려 더욱 권위 있는 대회로 자리매김하는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게 역대 수상자로서 (모임을 통해) 지원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올해 박동진 대회는 지난달 20~23일 충남 공주문예회관 대공연장 등에서 187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방수미(전북 완주군·여)씨가 명창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해 대통령상을, 김동근(광주)씨가 고법부문에서 대상인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판소리 일반부 장원은 민현경(서울 강남구)씨가 차지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받았다.

  • ▲ 올해 대회 고수부문 대상자 김동근씨.ⓒ박동진판소리전수관
    ▲ 올해 대회 고수부문 대상자 김동근씨.ⓒ박동진판소리전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