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 AI 불감증이 급속 확산 배경… 농장 인력 소독절차 없이 여러 업무 병행육용오리 농가 70% 비닐하우스 축사… 사육·방역 환경 열악, 개선 시급
  • ▲ H5N6형 AI 바이러스 유전자 분석 중간결과 발표.ⓒ연합뉴스
    ▲ H5N6형 AI 바이러스 유전자 분석 중간결과 발표.ⓒ연합뉴스

    국내에 빠르게 확산하는 H5N6형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는 총 5가지 유전자 유형으로 이 중 2가지는 중국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유형으로 확인됐다. 이는 국내서 유행하는 AI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머지 3가지 유형은 방역당국이 AI 전파 매개체로 추정하는 철새의 이동과정에서 저병원성 AI 바이러스 유전자와의 재조합으로 생긴 새로운 유형으로 추정됐다.

    새로운 유형의 AI 바이러스가 국내에 유입된 후 급속히 확산한 배경에는 농가의 AI 불감증이 한몫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유행 H5N6형 AI 유전자 총 5가지… 2종류는 중국과 동일

    농림축산검역본부는 13일 H5N6형 고병원성 AI 발생에 대한 역학조사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검역본부는 기존 주장대로 철새를 AI 매개체로 지목했다. 유전자 분석결과 2014년 중국 광동성과 홍콩에서 유행한 유형과 H5 유전자는 98.94~99.24%, N6 유전자는 99.06~99.13% 유사하다는 설명이다.

    검역본부 관계자는 "철새 이동 경로와 중국 등 주변국의 H5N6형 발생을 볼 때 중국 헤이롱장성·지린성, 몽골 동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 겨울 철새 번식지인 중국 북쪽 지역에서 감염된 철새로 국내로 이동하면서 유입된 것으로 판단한다"며 "이들 철새가 주로 서해안 지역을 광범위하게 오염시킨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검역본부는 증식과 복제에 관여하는 PA 유전자 등 내부 유전자(PA, NS)가 조금씩 다르다며 총 5가지 세부 유형으로 구분했다.

    제1형은 지난 10월28일 충남 천안시 풍세천 야생조류(원앙) 분변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유형이다. 아직 가금농장 발생 사례는 없다.

    제2형은 지난달 5일 강원 원주시에서 텃새인 수리부엉이로부터 확인된 유형으로, 경기·전남·전북·충남·충북에서 확인됐다.

    제3형은 경기 파주시를 비롯해 세종·전남·충남·충북에서 검출된 유형이다. 아직 야생조류에서는 감염 사례가 확인되지 않았다.

    제4형과 제5형은 각각 지난달 17일 충남 아산시와 10일 전북 익산시 만경강의 야생조류에서 검출된 유형이다.

    검역본부는 제1형과 제2형은 중국에서 발표한 34개 세부 유형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에서 확산하는 AI 바이러스가 국내에서 발생하거나 변이를 일으킨 게 아니라 중국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중국은 최근 오리농가와 재래시장 등에 만연해 있던 H5N6형 AI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변이가 많이 이뤄지면서 총 34개의 세부 유형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나머지 3가지 유형은 새롭게 발견된 유형으로 추정됐다. 검역본부는 중국 광동성 등에서 H5N6에 감염된 야생조류가 시베리아, 중국 북동부 지역의 번식지로 이동했다가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유라시안 계열의 저병원성 AI 바이러스 유전자와 재조합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역본부 관계자는 "내부 유전자 유형이 달라졌다고 해서 병원성이 강화하거나 인체감염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은 아니다"며 "방역 조처 수준에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 ▲ 오리농가 방역.ⓒ연합뉴스
    ▲ 오리농가 방역.ⓒ연합뉴스

    ◇급속 확산 배경은 농가 불감증과 열악한 사육환경

    새로운 유형의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국내에 들어온 뒤 급속히 확산한 배경에는 농가의 AI 불감증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역본부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산란계(알 낳는 닭) 농장의 경우 양성 판정을 받은 농가 42곳 중 64%에 해당하는 27곳이 AI 발생 농가와 3㎞ 이내에 있었다. 포천은 12곳 중 9곳으로 75%에 달했다.

    산란계 농가는 농장 내 시설에 출입하는 차량의 빈도가 높은 특징을 보였다. 육계 농장은 사료차량이 3일에 한 번 출입했지만, 50만 마리 이상 키우는 산란계 농장은 달걀운반 차량 4회, 사료차량 2회 등 하루에 6회쯤 출입했다.

    달걀운반 차량이 농장에 직접 진입해 달걀을 내오는 사례는 조사가 완료된 38건 중 34건으로 89.4%로 나타났다. 달걀운반 기사가 달걀을 싣는 과정에서 방역복을 입지 않고 작업한 사례도 38건 중 28건으로 73.6%를 보였다.

    농장 종사자가 산란계 관리와 달걀 싣기를 병행하는 경우도 28건으로 전체의 73.6%였다.

    적절한 소독이나 차단 방역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된 농장 인력이나 차량이 바이러스 전파에 한몫한 셈이다.

    씨오리 농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조사가 완료된 12건 모두에서 종사자들이 오리 관리나 씨알 운반 등의 업무를 병행하면서 업무를 전환할 때 소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플라스틱 난좌를 사용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12건 중 절반인 6건에서 플라스틱 난좌가 사용됐다. 검역본부는 농가에서 플라스틱 난좌를 재활용할 때 부화장 등에서 뒤섞이며 교차 오염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육용오리는 닭보다 사육환경이 열악해 시설과 방역시스템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결과 AI가 밀집돼 발생한 충북 음성, 진천의 육용오리 농가는 대부분이 비닐하우스 농장이었다. 양성판정을 받은 농장 59곳 중 69.5%인 41곳이 비닐하우스 축사였다. 농장경계가 불분명한 데다 철새를 막을 수 있는 그물망 등 설비가 낡고 출입차단 표시가 없는 등 사육환경이 열악했다.

    특히 전체의 44%인 26곳은 과거에도 AI가 발생했던 곳으로 확인됐다.

    검역본부 관계자는 "육용오리 농가는 시설이 낡고, 방역 체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재발할 우려가 있다"며 "축사시설 현대화 사업을 지속해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에 관련 법이 개정돼 이번에 AI 발생한 농가에서 다시 AI가 발생하면 도살처분 보상금을 20% 삭감한다"며 "추후 재발 여부에 따라 추가 삭감도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