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파악만 하고 떠날라"… 국토·해수부 '단명' 장관 데자뷔
  • ▲ 김현미(왼쪽) 국토부, 김영춘 해수부 장관 후보자.ⓒ연합뉴스
    ▲ 김현미(왼쪽) 국토부, 김영춘 해수부 장관 후보자.ⓒ연합뉴스

    새 정부가 내각을 구성하며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현역 금배지 불패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일부 장관 후보자는 내년 치러질 지방선거에 출마설이 도는 등 취임도 하기 전에 시한부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특히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는 데자뷔를 보여 2년 전과 양상이 비슷하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새누리당 현역인 유일호·유기준 두 장관 후보자에게 총선 출마 의사가 있으면 사퇴하라고 압박했었다.

    청와대는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새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로 김부겸(59),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도종환(63)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각각 지명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토부 장관 후보자로 같은 당 김현미(55), 해수부 장관 후보자에 김영춘(55) 의원을 각각 지명했다.

    문 대통령이 내각에 여당 의원을 무더기로 차출한 것은 인사청문회의 현역 불패 불문율을 고려했다는 분석이다. 조각이 시급한 상황에서 앞서 지명한 이낙연 총리 등 국무위원 후보들이 위장전입, 자녀병역 등 각종 의혹에 휩싸이며 중도 하차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어서다.

    문제는 일부 의원의 경우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점이다.

    인사청문 과정과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선거 90일 전에 장관직을 사퇴해야 해 출마한다면 재임 기간이 7개월 남짓에 불과할 거라는 계산이다.

    해수부 장관 후보자인 김영춘 의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부산 출신으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인 김 장관 후보자는 대선 캠프에서도 농림해양정책위원장을 맡아 일찌감치 해수부 장관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김 의원은 장관 후보로 거론될 때부터 내년 부산시장 도전 가능성이 함께 제기됐다.

    김 의원은 2014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새민련 후보로 선출됐지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해수부 장관을 지낸 무소속 오거돈 후보에게 밀려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지금은 부산시장 선거에 나갈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내년에는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 의원 측은 이와 관련해 "추가적인 답변은 없었다. 현재로선 말씀하신 대로만 봐달라"고 부연했다.

    김부겸·김현미 장관 후보자도 내년 지방선거에서 각각 대구시장과 경기지사 출마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부겸 장관 후보자는 2014년 지방선거 때 대구에서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바 있다.

    김현미 장관 후보자는 의원 활동 경력상 국토부와 다소 거리가 있다. 2014~2015년 국회 서민주거복지특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가계부채 특위에서 활동한 경험은 있으나 주로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등 '예산통'으로 분류된다.

    국토부 장관 후보 하마평에 오른 적도 없어 지명됐을 때 뜻밖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국토부 내부에서는 문 대통령의 도시재생 뉴딜정책 등을 고려할 때 국토 현안에 밝은 후보자가 내정될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이번에 50대 중견 정치인을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게 가깝게는 내년 지방선거, 멀게는 장래 대선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는다. 입각을 통해 전국적으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미 후보자의 경우 입각하면 최초의 여성 국토부 장관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는 식이다.

    새 정부 들어 부처 위상에 역전 현상이 엿보이는 국토부와 해수부는 시한부 장관설에 기시감마저 든다.

    2015년 새누리당 의원으로 입각했던 유일호·유기준 전 장관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시 두 유 의원은 이듬해 치러질 총선에 나갈 것으로 예상됐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10개월 단명 장관이 될 공산이 커지자 야당인 새민련은 인사청문 과정에서 두 후보자의 사퇴를 압박했었다.

    이언주 새민련 의원은 유일호 국토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전·월세 폭등 등 시급한 현안이 많은데 10개월짜리 시한부 장관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업무 파악만 하다 끝날 가능성이 크다"며 "유 후보자는 20대 총선에 출마하려면 지금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당 신정훈 의원은 유기준 해수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해수부는 (세월호 참사로) 직원 사기가 떨어지는 등 그동안 정상적인 기능을 못 했다"며 "지금 필요한 장관은 화려한 정책이나 전문성보다 최장수 장관을 하더라도 해수부를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고 강조했었다.

    황주홍 새민련 의원은 후보자 내정과 관련해 "청와대가 10개월짜리 장관을 임명한 게 잘못"이라며 화살을 청와대에 돌렸다.

    두 유 장관은 2015년 3월16일 취임한 뒤 같은 해 11월11일 취임 8개월 만에 나란히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4월13일 치러진 제20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서였다.

    김현미·김영춘 두 김 장관 후보자가 입각 후 내년 지방선거에 나선다면 두 유 장관보다도 재임 기간이 짧을 것으로 보인다.

    세종청사 한 공무원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무위원을 출마시켜 지방권력을 교체한 뒤 이를 동력원으로 삼아 대대적인 조직개편에 나설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며 "장관이 정무적 판단을 하는 자리라지만, 마음이 콩밭에 가 있을 텐데 7~8개월 재임하며 얼마나 의욕적으로 일할지 미지수"라고 꼬집었다.

    해수부 한 관계자는 "업계 전반에 걸쳐 침체한 분위기를 쇄신할 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며 "가뜩이나 해수부에 단명 장관이 많은데 장관직을 정치적 행보를 위한 스펙쌓기쯤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