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국정과제에 구체적 언급 없어… 국토부 연구용역은 감축 유도할 수도
  • ▲ 무궁화 열차.ⓒ연합뉴스
    ▲ 무궁화 열차.ⓒ연합뉴스

    정부가 철도 공공성 강화를 외치고 있지만, 벽지 노선 선정 기준 재정립과 예산 지원 효율화와 맞물려 헛구호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공익서비스(PSO) 보전방식 변경이 오히려 벽지 노선 감축 등의 방향으로 역주행할 가능성마저 제기한다.

    21일 국토부에 따르면 다음 주쯤 한국교통연구원과 수의계약을 맺고 '철도 PSO 벽지 노선 선정 기준 및 운영방안'에 관한 연구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다.

    그동안 두 차례 연구용역 발주 공모를 진행했지만, 교통연구원 외 참여 기관이 없어 이번에 수의계약을 맺게 됐다는 설명이다.

    PSO는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따라 노인·장애인에 대한 무임운송·운임할인과 함께 수요가 적은 벽지 노선을 운영하고 발생하는 철도운영자의 손실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제도다.

    올해 정부의 PSO 보상예산은 2962억원이다. 지난해보다 547억원 줄었다. 이 가운데 코레일의 7개 벽지 노선 운영에 따른 손실보상액은 지난해 2111억원에서 1461억원으로 650억원이나 삭감됐다.

    지난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올해 PSO 보상예산 삭감에 따라 벽지 노선 운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가 공공성을 외면한다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인수위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지난 19일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는 철도 공공성 강화와 관련해 벽지 노선 운영이 포함됐다.

    문제는 벽지 노선 운영과 관련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철도 주무 부처인 국토부가 추진하는 벽지 노선 PSO 관련 연구용역은 국정자문위의 철도 공공성 강화와 엇박자를 낼 공산이 커 보인다.

    벽지 노선은 수입보다 비용이 2배 이상 드는 노선을 말한다. 경전선·동해남부선·영동선·태백선·대구선·경북선·정선선 등 7개 노선이 여기에 해당한다.

    국토부와 기획재정부는 그동안의 PSO 보상예산이 코레일의 적자 노선 손실을 메워주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벽지 노선이 이용자 관점이 아닌 철도운영자 처지에서 손실이 많이 발생하는 곳으로 결정되면서 단순히 코레일의 경영 손실 보전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이번 연구용역을 통해 인구 밀도, 해당 지역의 도시화 정도, 교통수단별 운영 현황과 분담률 등을 고려해 벽지 노선 기준을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열차운행 횟수나 운행 구간뿐만 아니라 안정성, 정시성 등 양질의 서비스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벽지 노선 기준을 재정립하겠다는 설명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왜 벽지 노선은 비용이 수입보다 2배 많은 곳이어야 하느냐, 3배는 왜 안 되느냐는 견해도 있다"며 "이번 용역을 통해 기준점을 어디에 두는 게 합리적인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2005년 도입한 벽지 노선 기준을 이번에 연구용역을 맡은 교통연구원에서 제시했었고, 국토부가 공공성 못지않게 효율성을 강조하고 있어 기준이 강화될 거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발주처인 국토부는 철도운영자가 벽지 노선을 운행한 뒤 발생한 손실을 지난해 수준에서 보전해주는 현행 방식을 건설 입찰방식처럼 바꾸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정부가 PSO 지급 예정 총액을 제시하면 철도운영사가 최종 금액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철도운영의 효율화를 전제로 한다.

    철도운영자가 짠물 경영을 할수록 PSO 예산을 남겨 수익으로 전환할 파이가 커진다.

    일각에선 이런 방식이 코레일에 벽지·적자 노선을 감축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설상가상 벽지 노선 기준이 강화되면 현재 기준을 충족하는 7개 노선 중 일부는 벽지 노선에서 제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벽지 노선에서 일반열차가 운행하는 적자 노선으로 분류가 완화돼 코레일의 노선 감축 대상이 될 수 있다.

    PSO 보전방식 변경이 정부 구호와 반대로 철도 공공성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토부 내부에서는 벽지 노선 감축이 곧 공공성 축소는 아니라는 의견이 제기돼왔다. 오히려 지속 가능한 공공성 유지를 위해 철도 운영의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견해였다.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국토부의 낙후지역 대중교통 공약사업 중 내년부터 시·군에 공공형 택시를 보급하는 것도 벽지 노선 감축과 연계해 생각해볼 수 있다는 의견이다. 승객 수요를 참작해 벽지 노선을 운행하는 대안으로 공공형 택시를 투입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는 견해다.

    재정 당국인 기재부가 PSO 예산 증액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걸림돌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게 내년 PSO 예산을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다만 기재부는 올해 수준에서 유지하거나 더 줄여나가야 한다는 논리가 확고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