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 예타 통과 기대 vs "응원 메시지 별개" 신중론도
  • ▲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연합뉴스
    ▲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연합뉴스

    해양수산부가 2년이 다 되도록 제자리걸음 중인 제2 쇄빙연구선 건조사업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 통과를 위해 브이아이피(VIP) 메시지라는 초강력 승부수를 띄웠다.

    예타 통과에 활로가 열렸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VIP 응원 메시지와 예타 분석은 별개의 문제라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24일 해수부에 따르면 1988년 2월 준공한 남극 세종과학기지가 올해로 설립 30주년을 맞는다. 해수부는 23일 오후 3시30분(현지시각) 3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문재인 대통령도 축하 영상 메시지를 통해 세종기지 대원들을 격려했다.

    문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에서 "세종기지 준공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세종기지로 극지 진출의 교두보가 마련돼 북극 다산과학기지와 남극 장보고과학기지가 설립됐고, 지구온난화 원인 분석, '불타는 얼음'(가스 하이드레이트) 발견 등 세계적 수준의 연구성과가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빛나는 성취 뒤에는 15년 전 고 전재규 연구원의 사고 등 극지 대원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면서 "세종기지가 대한민국과 인류의 삶을 이롭게 하는 산실이 될 수 있게 정부도 뒷받침하겠다"고 했다.

    이어 "미래 성장동력인 극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며 "제2 쇄빙연구선과 코리아루트 같이 가슴 뛰는 도전을 국민과 함께 응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제2 쇄빙선을 콕 집어 언급했다.

    제2 쇄빙선 예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과기평)이 맡아 2016년 1월25일 조사에 착수했다.

    애초 6개월쯤 예상했던 예타는 수차례 자료 보완을 거쳤으나 아직도 최종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24일은 예타가 시작된 지 만 1년11개월30일째 되는 날이다.

    해수부와 과기평은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고 있다.

    해수부는 애초 신청한 1만2000t급에서 후퇴해 최소 아라온호(7487t급) 수준이 아니면 아예 예타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태도다. 건조하면 20~30년은 써야 하고 1만t급 중대형선 건조가 세계적인 추세라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과기평은 과잉사양이라며 5000t급으로 가위질했던 것을 6500t급까지 양보한(?) 상태다. 용도도 연구전용선보다 장보고기지에 물자 등을 보급하는 다목적 쇄빙선으로 바꿔야 한다는 견해다.

    더욱이 과기평은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와 과기부가 국가 연구·개발(R&D) 예산권을 넘기는 문제로 심란해 보이자 예타에 전념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영상 메시지는 고착된 상황을 푸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제2 쇄빙선을 언급하며 극지 투자 확대를 밝힌 만큼 해수부가 마지노선으로 제안한 '쇄빙능력 2배의 아라온호급'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해수부는 이번 축하 영상 메시지 내용에 제2 쇄빙선에 관한 언급이 포함되도록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과기평이 제2 쇄빙선 활용을 위한 각종 보완자료 제출에도 꿈쩍 안 했지만, 대통령이 투자 확대 의지를 보인 만큼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과기평 관계자도 "정부에서 정책적 판단이 섰다면 예타 분석을 좀 더 (탄력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낙관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석 여하에 따라 대통령의 메시지를 관행적인 응원·격려 차원의 발언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해수부 한 관계자는 "과기평 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달 탐사선 사업을 예로 들며 대선공약 사업도 예타에서 떨어진 사례가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더라"라고 전했다.

    과기평 관계자도 "예타 분석은 (대통령 말이 아닌) 근거 자료를 가지고 판단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 ▲ 국가 R&D.ⓒ연합뉴스
    ▲ 국가 R&D.ⓒ연합뉴스

    설상가상 과기부로 R&D 예타 권한을 넘기는 내용을 담았던 '국가재정법 개정안'도 지난해 12월29일 대폭 수정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원래 법안은 예타가 기재부의 고유 권한이지만, 계획 단계에서 경제성 등을 가늠하기 어려운 R&D 사업조차 기재부가 쥐고 흔들면서 선도적인 연구가 막히고 투자 적기를 놓친다는 지적에 따라 R&D 예타권을 과기부로 넘기는 내용을 담았다. 기재부가 보유한 R&D 지출한도 설정 권한을 과기부와 공동권한으로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가장 많은 R&D 예산을 쓰는 과기부가 예타권을 갖는 것은 '선수가 심판을 겸하는 것'이고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예타권은 과기부가 기재부에서 위탁받아 수행하도록 수정됐다.

    과기부에 연간 20조원에 이르는 R&D 예산권을 주려던 문재인 정부의 계획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기재부와 과기평이 여전히 경제성을 전면에 내세운다면 제2 쇄빙선 예타 통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처지다.

  • ▲ 남극 세종과학기지.ⓒ해수부
    ▲ 남극 세종과학기지.ⓒ해수부

    한편 세종과학기지 30주년 기념행사에는 김영춘 해수부 장관을 비롯해 설훈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 심재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 홍영표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윤호일 극지연구소장 등이 참석한다. 칠레·중국·러시아 등 세종기지 인근의 다른 나라 기지 관계자 포함 총 150여명이 함께한다.

    김 장관은 최초로 세종기지 월동대장을 지낸 장순근 연구원 등 공로자에게 표창을 수여하고, 주변 기지에도 감사패를 줄 계획이다.

    월동연구대 물품과 사진·영상, 국민 응원메시지 등을 담은 타임캡슐도 묻는다. 타임캡슐은 준공 100주년이 되는 2088년 개봉한다.

    신축연구동 준공 기념 테이프 커팅과 남극 연구 30년사의 역사관 현판 제막식도 열릴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1978년 국립수산진흥원이 남빙양에서 크릴 시험어획과 해양조사에 나서면서 남극 진출을 시작했다. 1985년에는 한국해양소년단 주도로 구성한 한국남극관측탐험단이 최초로 남극관측탐험에 성공했다.

    1986년 33번째 국가로 남극조약에 가입했고 1988년 세종기지를 건립했다. 1990년에는 남극연구과학위원회 정회원국으로 가입했다. 현재는 2014년 테라노바만 인근에 설립한 장보고기지까지 2개의 상주기지를 운영하는 세계 10번째 국가가 됐다.

    그동안 남극기지를 거쳐 간 산·학·연 연구자는 월동연구대원 450여명 포함 총 3000여명에 이른다.

    2003년 12월에는 제17차 월동연구대원이 조난 당한 동료를 구조하려고 출동했다가 고무보트가 강풍에 뒤집혀 고 전재규 대원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기지 인프라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듬해 극지연구 전문기관인 극지연구소가 설립됐고,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가 건조돼 극지연구 기반이 강화됐다.

    세종기지는 2003년 국내 천연가스 연간소비량의 200배에 달하는 가스 하이드레이트 매장지역을 발견했다. 항산화 활성능력이 뛰어난 노화방지 물질(라말린)을 발견해 화장품이 개발되기도 했다.

    세종기지가 있는 남극 킹조지섬과 남극반도 해역은 지구 온난화로 해빙이 급속히 진행돼온 지역으로, 기후변화 예측을 위한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세종기지는 1989년 세계기상기구(WMO)의 정규 기상관측소로 지정돼 하루 4회 기상정보를 제공한다. 2010년에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등 기후변화 지표를 관측하는 지구대기감시 관측소로도 지정됐다.

    해수부는 지난해 4월 수립한 제3차 남극연구활동진흥 기본계획에 따라 세종기지를 기반으로 환경변화 예측, 극지생명자원 실용화 등 융복합연구를 수행할 계획이다.

    장보고기지에서 남극점에 이르는 독자적인 내륙진출로(코리안루트)를 개발하고, 수심 2500m의 빙저호(빙하 하단이 녹아 형성된 호수) 탐사 등 새로운 연구영역을 개척해 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