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부 유호승 기자
    ▲ 산업부 유호승 기자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데뷔 무대에서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 주요 기업을 만나 산업부의 정책 기조 변화를 알리는 신고식에서 창피만 당했다.

    백 장관은 지난 16일 12대 기업 CEO와 간담회를 가졌다. 그가 여러 대기업과 한 자리에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간담회는 백 장관을 주인공으로 산업부가 주관한 행사다. 물론 취재진 등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주인공한테 맞춰져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담했다. 주연은 조연으로 전락했다. 

    간담회는 당초 예정 보다 1시간 늦어진 오전 9시 30분께 끝났다. 기업 CEO들 보다 먼저 간담회장을 빠져 나온 백 장관은 20여 명의 취재진과 4대의 카메라에 둘러싸였다.

    그는 회의가 늦게 끝낸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CEO들이 생각 보다 많은 경영 애로사항을 허심탄회하게 말해줬다”고 답하며, 산업부의 새로운 ‘친기업’ 노선에 관한 입장을 밝혔다.

    백 장관이 담담한 어조로 산업부의 향후 계획을 설명하던 중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이 간담회장 밖으로 나왔다. 순간 대부분의 취재진이 백 장관을 떠나 윤 부회장한테 향했다.

    짧은 시간 기자들의 질문에 냉정하게 답하던, 백 장관의 얼굴에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역시 삼성이 인기가 좋네요”라고 읆조리며 미처 끝마치지 못했던 말을 이어갔다.

    백 장관 앞에 남은 취재진은 카메라 1대와 기자 4~5명뿐. 이때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도 간담회장을 나왔고, 그나마 있던 기자들도 모두 황 부회장을 취재하기 위해 백 장관 곁을 떠났다.

    산업부 관계자들은 백 장관의 눈치를 살폈다. 취재진이 기업 CEO들에게 몰리니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난감했던 것. 결국 백운규 장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취임 1주년을 앞두고 백운규 장관이 겪은 이 ‘웃픈’ 해프닝은, 본인이 자초한 ‘과실’이나 다름 없다. 그간 보여온 행보는 주요 기업 보다 중소·벤처기업, 사용자 보다 노동자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연 친기업 정책을 펴겠다고 입장을 바꾸니 양측으로부터 모두 외면 받을 처지에 놓이지 않았을까. 취재진이 백 장관 곁을 떠난 것도 이러한 오락가락 행보에 대한 반증 중 하나로 해석된다.

    물론 정부 관료보다 재계 1위 전문경영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취재진 입장에서는 더 솔깃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외면 받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약 20m 떨어진 곳에서 윤부근 부회장이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었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백 장관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허망함’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된다. 주연은 조연에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긴 채 쓸쓸히 발걸음을 옮겼다.

    백 장관은 이제 이같은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본인의 노선을 확실히 해야 한다. 친기업 정책을 펼치겠다고 결정한 만큼, 해당 기조를 임기가 끝날 때까지 유지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대부분은 대기업을 압박하는 것이다. 백 장관은 ‘기업을 위한 산업부’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 입장이 번복된다면, 이번 간담회와 같은 해프닝은 재발될 공산이 크다.

    백 장관은 갈림길에 서 있다. 한쪽에는 ‘실패한 장관’, 다른 쪽에는 ‘성공한 장관’. 그가 1년간 보여준 모습은 전자에 가깝다.

    본인의 경력에 ‘성공한 장관’이라는 한 줄을 추가하고자 한다면, 더 이상의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