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신평, KB·대신·다올·애큐온저축은행 신용등급전망 하향 조정"대규모 적자, 자기자본대비 부동산PF 익스포저 200% 상회했기 때문"지난달부터 이어진 7개 저축은행 강등 랠리…경·공매 활성화 요구 수용 전망"금리인하 불투명해 버티기 힘든 상황…민간금융사도 매각하도록 채널 다각화 필요"
  • ▲ 저축은행. ⓒ연합뉴스
    ▲ 저축은행. ⓒ연합뉴스
    적자와 부동산 PF 부담이 가시화한 저축은행의 신용등급전망이 대거 강등됐다. 주요 상위권 저축은행을 포함한 '강등 폭탄'에 업계에서도 적잖이 놀란 분위기다.

    업계 일각에서는 업황 침체로 추가 신용등급 강등 우려가 제기되는 만큼 경·공매 활성화 방안에 '버티기'로 일관했던 저축은행들이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나이스신용평가는 전날 △KB저축은행(A) △대신저축은행(A-) △다올저축은행(BBB+) △애큐온저축은행(BBB, 이상 신용등급) 등 4개사의 장기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송기종 나이스신평 금융평가1실장은 "이들 저축은행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거나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PF 익스포저(노출액) 규모가 200%를 상회해 등급전망을 하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축은행의 기초체력이 양호해 과거 저축은행 사태와 같은 위기는 이어지지 않겠지만, 실적 저하가 크게 나타난 곳은 신용등급에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KB저축은행의 경우 지난해 충당금 적립과 대손비용 증가로 순손실 936억원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고, 국제결제은행(BIS) 자본비율은 지난해 말 10.8%로 떨어졌다.

    같은 시기 고정이하여신비율(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은 10.1%로 3년 전 1.6%에서 크게 상승했으며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 PF 익스포저 비율 역시 266%로 높게 나타났다.

    대신저축은행(-440억원), 다올저축은행(-82억원), 애큐온저축은행(-633억원) 등도 지난해 순손실을 기록했다. 특히 대신저축은행과 다올저축은행은 자기자본대비 245%, 225% 수준의 부동산PF 익스포저를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나신평은 고금리 지속과 부동산경기 위축 등을 고려할 때 추가적인 자산건전성 저하 가능성이 있다면서 부동산경기 변화에 따른 부실 위험의 현실화 여부를 지속 점검하겠다고 했다.

    송기종 실장은 "조달 및 대손비용 증가로 수익성이 저하된 가운데 채무상환 부담 누적에 따라 부실여신 관련 부담 요인이 계속될 전망"이라며 "PF 사업도 지연되면서 브릿지론, 중·후순위, 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등 고위험 익스포저를 빠르게 확대한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부실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 ▲ 장기신용등급 전망 하향 조정 저축은행. ⓒ나이스신용평가
    ▲ 장기신용등급 전망 하향 조정 저축은행. ⓒ나이스신용평가
    문제는 이번 '강등 폭탄'에 앞서 세 곳의 저축은행의 신용등급도 조정됐다는 점이다.

    지난달 한국신용평가는 JT친애저축은행의 신용등급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이자 및 대손비용 증가로 인한 수익성 저하와 부동산경기 위축에 따른 부실여신 증가 등이 이유였다.

    이달 들어서는 나신평이 페퍼저축은행의 신용등급을 'BBB(부정적)'에서 'BBB-(부정적)'로 하향 조정했고, 한국기업평가는 바로저축은행의 신용등급을 'BBB+(부정적)'에서 'BBB(안정적)'로 내렸다.

    저축은행업계에서는 다소 놀란 분위기다. 이번 '강등 폭탄'에 포함된 애큐온저축은행(5위)과 다올저축은행(7위)은 물론, 앞서 하향 조정된 페퍼저축은행(6위)도 자산 기준 업계 TOP 10에 포함되는 대형사이기 때문이다. △KB저축은행 11위 △JT친애저축은행 15위 △대신저축은행 16위 △바로저축은행 23위 등도 낮은 순위는 아니다.

    하지만 신평업계에서는 저축은행들의 줄강등이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평이다.

    지난해 국내 저축은행 79곳은 5559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9년 만에 적자였다. 이자 감소와 PF 대출 관련 선제적 대손충당금 적립 때문이었다.

    연체율도 6.55%를 기록해 전년 말 3.41%에 비해 두 배가량 뛰었다. 기업대출 연체율이 1년새 2.90%에서 8.02%까지 치솟은 영향이 컸다. 같은 기간 고정이하여신비율도 4.08%에서 7.72%로 증가했다.

    올해도 저축은행업계 전망은 밝지 않다. 고물가와 중동 분쟁 등의 영향으로 고금리 장기화가 지속할 전망이다. 나신평은 올해 저축은행업계가 손실에 대비해 쌓아야 할 대손충당금이 최대 3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봤다.

    A저축은행 관계자는 "충당금을 쌓는다는 것은 비용 처리를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자본금이 줄어들게 된다"며 "그러면 악화한 유동성비율을 개선하기 위해 증자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는데, 증자할 여력이 있는 곳이 있고 아닌 곳이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자산건전성 악화로 신용등급 추가 하락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신용등급이 'BBB' 아래인 투기등급으로 떨어지면 퇴직연금 신규자금 유치가 어려워지는 등 다른 사업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

    ◇당국 압박에도 금리 인하 기대감에 버텼던 저축은행, 스탠스 선회하나

    이에 일각에서는 그동안 부실채권 매각에 소극적이었던 저축은행들이 스탠스를 달리 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저축은행들은 그동안 금융당국의 경·공매 압박에도 부실채권 정리를 미뤄 왔다. 이미 보수적으로 충당금을 적립한 데다 낮은 가격으로 손해를 보면서까지 부실채권을 매각하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향후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부동산 시장이 회복하면 자산 가격이 오를 것이란 기대에서다.

    B저축은행 관계자는 "경·공매 활성화를 통해 매각하면 매물이 늘어나 가격이 낮춰질 것이 뻔한 데다 의도적인 유찰로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아질 경우 손해가 막심해질 수밖에 없다"며 "연체율 상승을 감수하더라도 부동산경기가 회복돼 담보가격이 오를 때까지 만기를 연장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기준금리 인하가 미뤄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버티기' 전략도 힘이 빠질 것으로 보인다.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면서 금리인하 신중론이 퍼지자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조차 사라졌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업권 전체에 '부실'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일부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C저축은행 관계자는 "연초까지만 하더라도 '금리가 내려갈 텐데 지금 팔면 바보다'라는 생각에 다들 버티고 있던 분위기"라며 "그 사이 물가가 잡히지 않고 대외적으로는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금리를 낮추기 어려운 상황이 되다 보니 저축은행들도 버티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B저축은행 관계자는 "기대수익 일부를 포기해야겠지만, 경·공매를 통해 사업장을 정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나 부실채권(NPL) 투자사 외에도 민간금융사에 매각할 수 있도록 매각 채널을 다양화한다면 보다 빠른 재구조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제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