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부터 10~20% 인하될 듯… 환경단체 "재고해야"부유층에 더 큰 혜택 논란… 주유소만 배불릴 수도
  • ▲ 주유소 유가 정보.ⓒ연합뉴스
    ▲ 주유소 유가 정보.ⓒ연합뉴스
    정부가 다음 주쯤 내놓을 고용대책에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내리는 방안을 포함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역풍이 만만찮아질 전망이다. 경유세 인하가 문재인 정부의 환경친화적 세제개편과 궤를 달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소득층보다 부유층이 더 혜택을 보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도 예상된다.

    1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13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차 방문한 인도네시아에서 기자들과 만나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넘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서민 부담이 커지고 있고, 내수 진작 효과 등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세계금융위기 여파가 지속했던 2008년 10개월쯤 유류세를 10% 낮춘 바 있다. 이번 인하 폭은 10~20%가 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시행시기는 다음 달 1일이 유력하다.

    유류세가 10% 내리면 휘발유는 ℓ당 82원, 경유는 57원, 액화석유가스(LPG)·부탄은 21원이 각각 내린다. 20%로 인하 폭이 커지면 휘발유는 ℓ당 164원, 경유는 114원, 액화석유가스(LPG)·부탄은 42원이 각각 인하한다.

    유류세 규모는 연간 25조원쯤이다. 6개월간 10%를 내리면 1조2500억원의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 하지만 올해 8월까지 세수입이 지난해보다 23조원쯤 더 걷힌 상태다. 정부가 서민 달래기용 깜짝 카드로 세금 인하를 검토하는 배경이다.
  • ▲ 서울환경연합 관계자들이 미세먼지 문제의 근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연합뉴스
    ▲ 서울환경연합 관계자들이 미세먼지 문제의 근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연합뉴스
    그러나 유류세 인하를 둘러싼 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유류세 인하가 그동안 정부가 보인 환경친화적 에너지 세제 개편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는 지난 7월 말 발표한 2018년 세법개정안에서 발전용 유연탄 개별소비세를 현행보다 ㎏당 10원 올리고 액화천연가스(LNG)에 물리는 세금은 68.4원 내리기로 했다.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 등 미세먼지와 관련한 환경 피해비용 비율에 맞춰 세금 부담을 조정한다는 게 개편이 뼈대다. 정부는 앞으로 유연탄 발전 비중은 41.2%로 0.5%포인트(P) 줄고 LNG 발전 비중은 23.1%로 0.5%P 늘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환경단체는 정부의 유연탄세 인상을 환영하면서도 경유세 인상 로드맵을 함께 제시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는 반응이었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국장은 뉴데일리경제와 통화에서 "경유차를 억제하는 방법은 낡은 경유차를 친환경차로 바꿀 때 보조금을 주는 것과 경유세를 올려 소비를 억제하는 방법이 있다"면서 "다른 나라와 비교해 경윳값이 휘발윳값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구조여서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었다.

    정부는 지난해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의 하나로 수송용 에너지 상대가격 합리적 조정방안(에너지 세제개편안)을 논의했다. 세제개편 공청회에서는 10여 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됐고, 2007년 휘발윳값 대 경윳값 대 액화석유가스(LPG) 값을 100 대 85 대 50으로 맞춘 에너지 상대가격을 100 대 125 대 75로 높이는 안도 포함됐다. 하지만 서민 증세 논란에 맞닥뜨리자 실효성이 낮다며 경유세 인상 계획이 없다고 불을 껐다. 대신 경유차를 줄이고자 경유차 폐차·말소 등록 후 새 승용차를 사면 개별소비세를 감면하는 지원책을 내놨었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이민호 활동가는 "환절기를 맞아 4개월 만에 미세먼지가 돌아왔다"며 "미세먼지가 심해지는 시기에 내수 진작을 이유로 자동차 사용을 늘리는 방향의 정책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경유세 인상에 반대해온 기재부가 (결국) 자동차 사용을 줄이지 못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며 "유류세 인하는 대기오염 감축에 나서는 상황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늘리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9월 정부가 산업통상자원부·환경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미세먼지 관리종합대책'을 보면 수도권 기준 국내 미세먼지 제1 배출원으로 경유차(23%)가 꼽혔다.
  • ▲ 미세먼지.ⓒ연합뉴스
    ▲ 미세먼지.ⓒ연합뉴스
    유류세 인하 혜택이 서민층보다 부유층에 더 크게 돌아간다는 것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인하 취지가 퇴색할 수 있어서다.

    지난 2012년 한국지방세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유류세 인하 효과는 서민층보다 부유층에서 6.3배 이상 큰 것으로 나타났다. 유류세를 내렸던 2008년 2분기 휘발유 소비량이 저소득층(1분위·소득하위 20%)은 월평균 13.1ℓ, 고소득층(5분위·소득상위 20%)은 82.5ℓ로 조사됐다. 당시 ℓ당 75원이 내린 유류세 월평균 인하 효과는 1분위가 880원에 그친 반면 5분위는 5578원으로 6.34배 차이 났다.

    휘발윳값이 1원 내릴 때 소비량도 1분위에서 0.0124ℓ 증가한 데 비해 5분위에선 0.0348ℓ 늘었다. 유류세를 내렸을 때 혜택과 소비증가가 모두 부유층에 집중됐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유류세 인하로 소비가 늘어 주유소와 정유업계만 배 불리는 것 아니냐는 견해도 나온다. 자영업자가 직접 가격을 책정하는 업계 특성상 주유소 판매가격이 찔끔 내리면 소비자가 체감하는 인하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